한국인의 애송 동시

[스크랩] [애송 동시 - 제 48 편] 병아리-엄기원

시치 2008. 7. 13. 00:13

[애송 동시 - 제 48 편]

 병아리-엄기원


 

조그만 몸에

노오란 털옷을 입은 게

참 귀엽다.



병아리 엄마는

아기들 옷을

잘도 지어 입혔네.



파란 풀밭을 나가 놀 때

엄마 눈에 잘 띄라고

노란 옷을 지어 입혔나 봐.

길에 나서도

옷이 촌스러울까 봐



그 귀여운 것들을

멀리서

꼬꼬꼬꼬

달음질시켜 본다.


(1997)

▲ 일러스트 윤종태

시평

노오란 털옷 입은 '아기'가 사랑스러워

병아리, 염소, 강아지, 제비…. 엄기원(71) 시인의 시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이름들이다. 작고 여리고 귀여운 것, 무엇보다도 '아기'들과 눈높이를 같이할 수 있는 어린 동물들은 그가 가장 선호하는 소재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아기와 염소〉만 보더라도 그렇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가/ 염소 앞에 갔습니다.// 풀을 뜯던 염소가/ 아기를 보았습니다./ 염소는 아기가 귀여운 모양입니다.// 염소는/ 턱밑의 긴 수염을/ 흔들어 보였습니다./ 아기는 까르르 웃었습니다."(〈아기와 염소〉) 아기와 염소 사이에는 아무런 경계가 없다. 아기는 염소를 친구 대하듯 하고 염소 역시 엄마의 마음으로 아기를 바라본다. 그들은 친구이자 모자간이다.

이 동물친화적인 세계는 이 시에서도 빛난다. 병아리들이 꼬꼬꼬 소리내며 떼 지어 몰려다닌다. 누가 저 '노오란 털옷을 입은' 짐승을 미워할 수 있을까. 병아리들은 다만 귀엽고 또 '귀엽다'. 이 시의 화자는 병아리를 단순히 하나의 동물로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병아리에게서 아기를 본다. 이 마음은 엄마의 마음이다. 그래서인지 엄기원 시인은 한 번도 닭을 닭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닭은 다만 '병아리 엄마'일 뿐이다.

이 병아리 엄마가 지어준 노란 옷을 입고 병아리들은 파란 풀밭에 나가 논다. 그런데 그 색은 귀엽긴 하지만 조금 촌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그 마음을 알아서일까. 병아리 엄마는 '그 귀여운 것들'을 꼬꼬꼬 달음질시켜 빨리 몰고 간다. '노오란 병아리'를 보고 사람들이 촌스럽다고 하기 전에 재빨리 그 어린 것들을 몰고 가는 것이다. 닭이나 사람이나 자식 흉보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골목길〉이 당선되면서 문단활동을 시작한 엄기원 시인은 오랜 교직 생활을 통해 간파한 어린이들의 심성을 그들의 시선으로 묘사해낸 시들로 유명하다. "'엄마, 문열어!'/ 아기가 대문을 꽝 차면/ 엄마는 얼른 문을 열어 주신다.// '엄마, 배고파!'/ 아기가 소리치면/ 엄마는 얼른 밥을 차려 주신다.// 아기는 대장/ 엄마는 졸병."(〈대장과 졸병〉) 이처럼 그의 시에는 아이와 엄마를 둘러싼 사랑과 교감이 흘러넘친다. 졸병이면 어떠랴. 세상 모든 엄마들의 마음은 한결같다. 그들은 영원히 아기의 졸병이기를 꿈꾼다.


신수정 문학평론가/조선일보,2008.7.5
 
출처 : 골든모티브
글쓴이 : 솔체꽃{모티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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