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애송 동시

[스크랩] [애송 동시 - 제 47 편] 옹달샘-한명순

시치 2008. 7. 13. 00:10

[애송 동시 - 제 47 편]

옹달샘-한명순

 

 

조그만 손거울

숨겨 두고


하늘이 날마다

들여다본다.


산속에 숨겨둔

옹달샘 거울


가끔씩 달도

보고 간다.

(2005)

▲ 일러스트 양혜원

시평

하늘이 감춰둔 거울

한명순(56)은 인천에서 태어난 아동문학가다. 1990년 아동문예신인상에, 다시 1995년 눈높이아동문학상에 동시가 각각 당선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 시인은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동물과 나무와 풀들을 의인화해서 대상 세계에 접근하는 시를 써왔다. 그동안 동시집으로 《하얀 곰 인형》, 《콜록콜록 내 마음은 지금 0℃》, 《좋아하고 있나봐》 등을 펴냈다.

한명순의 시 세계는 대체적으로 자연친화적인 상상력이 돋보인다. 〈옹달샘〉에서도 그 흔적이 엿보인다. '옹달샘'은 하늘이 산 속에 감춰둔 거울이다. 맑고 고요한 이것은 시인의 작명법에 따르자면 "작은 손거울", 즉 크고 깊은 것이 제 속에 감춘 미시-우주다. 옹달샘이나 우물물, 혹은 맑은 물을 거울로 상상하는 것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최치원은 강물을 거울로 상상해서 "거울 속 인가는 푸른 봉우리와 마주했네./ 외로운 돛단배는 바람 싣고 어디로 가는가"고 노래했다. 윤동주는 〈자화상〉에서 "논가 외딴 우물"을 거울삼아 제 얼굴을 비춰보고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간다고 썼다.

옹달샘은 큰물로 나아가는 작은 시작의 자리다. 작은 물은 마침내 큰물을 이루고, 약한 물은 끝내 세상의 굳센 것들을 이긴다. 그래서 노자는 물의 덕(德)을 찬양하며 "가장 높은 도는 물과 같다"고 썼다. 우리는 심산(深山)의 정일(靜逸)에 감싸인 '옹달샘'에서 고요의 성찰적 순간과 만난다. 소음과 혼탁에 지친 범속한 이가 문득 청정해지는 느낌을 갖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세속을 피해 산 속에 숨은 청정도량과 같이 맑은 물과 더불어 고요를 안고 숨어 있는 '옹달샘'. 이 고요는 비활동성의 결과가 아니라 텅 빈 충일, 혹은 자기심화의 표징이다.

'옹달샘'은 고요로 수평을 이루고 만물을 비춘다. 진짜 비춤은 덧없는 외관이나 현상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진리와 원리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옹달샘'은 외따로 있지만 만물에게 자기 성찰의 방법적 도구로 쓰인다. 그러기에 낮엔 하늘이 이 거울을 들여다보고, 밤엔 달이 들여다보고 간다. 사는 일이 고달프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 홀연히 찾아가 안 보이는 제 속내를 비춰도 보고, 더러는 맑은 물로 시끄러운 속을 달랠 수 있는 그런 청정도량을 하나 갖고 싶지 않으신가.

 

장석주 시인/조선일보,2008.7.4

 
출처 : 골든모티브
글쓴이 : 솔체꽃{모티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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