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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찾다/문채인
ㅡ 공터에서 페트병을 물어뜯는 개를 본다, 나의 턱뼈가 얼얼해짐을
느끼는 저녁
뭐 이렇게 질긴 고기가 다 있을까 좀체 속내 보이지 않는 것이 의뭉스런 애인 같다 어딘가에 분명 뼈를 감추고 있을 거야 고기의 진미 희망의 정수 아아, 뼈다귀를 향하여 나아가는 일이란 대로에서 진종일 어미, 누이와 붙어있는 일보다 은밀하고도 즐겁게 느껴진다 페트병 한 개와 물어뜯는 시간, 나는 이것을 단순해지기 위한 노력이라 부른다 썩은 고깃덩이로 던져진 이 도시에서 단단한 무기질의 희망 얻기가 그리 쉬운가 누르기만 하면 입 발린 언약들 당장이라도 쏟아내는 자판기들아 웃을 테면 웃어라 욕창이 번진 몸에 비명까지 지르는 이 물체는 이제 고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심은 더욱 식욕을 부풀리고 나는 이것을 기꺼이 먹기로 작정한다 완강하던 페트병에 드디어 금이 가고 텅 빈 속살 들여다본 순간, 나는 속았음을 직감한다 어둠 속을 휘적휘적 걸어갈 때 앗! 저기 또 푸른 슬리퍼 한 짝이…… 내 야성의 턱뼈를 긴장시키고 있었다. 지붕 바라보기
햇살의 벗겨진 정수리를 밟으며 사내는 능숙하게 지붕에 오른다 헐벗은 어깨 삼싸며 기와들이 서로 웅성거린다 맨 처음 사내는, 누군가 실수로 밀어올린 배드민턴 공과 화석처럼 굳어버린 새똥같은 지붕의 누추와 집착의 무게를 하나씩 벗겨나간다
그 위에 푸른 페인트를 듬뿍 붓는다 어떤 추억의 그림자도 뚫고 나오지 못하게... 가끔씩 튀어나오는 상념들은 작업복을 붙잡고 늘어지지만 곧 심드렁하게 탈색되어 갈 것이다 갑작스런 변화에 몸을 떠는 지붕, 천천히 사내는 지붕을 달랜다 삐뚤어진 기와 바르게 누이고 구멍 난 자리도 빈틈없이 막는다 상처에 연고를 바르듯이,
아린 새 살이 바라볼 하늘을 훔쳐본 듯 사내의 두 볼이 환해지고 있다 해가 지도록 작업은 계속되고 어느덧 나는 깨진 무릎의 상처 위로 스물거리는 새 삶을 예감하고 있다
........................................................... ▶ 199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심사평 : 오생근(문학평론가·서울대교수), 이성복(시인·계명대교수) 새로운 예술가가 등장할 때마다 우리는 그의 눈을 통해 여지껏 눈치채지 못한 삶의 면목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번 신춘문예 시 응모작들을 대하면서 심사자들이 기대한 것은 바로 그 새로운 안목이었으며 우리의 기대는 과연 어긋나지 않았다. 예심을 통해 올라온 시들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은 시는 '메주'(이재춘)와 '공터에서 찾다'(문채인)였다. 조용한 목소리로 일상적 삶의 변두리에서 버림받은 것들을 불러 내고 그것들로부터 의미와 깨달음을 이끌어 내는 '메주'의 시인은 타고난 눈썰미와 오랜 연마를 짐작케 한다. 다만 그가 보여주는 안목이 크게 새롭지는 않다는 아쉬 움을 남긴다. 무엇보다 이번 심사의 큰 즐거움은 '공터에서 찾다'의 뛰어난 시인을 찾아냈다는데 있다. 또 한편의 수작 '지붕 바라보기'에서와 같이 이 시에서 시인은 범상치 않은 시선과 능숙한 어법으로 황폐한 세기말 풍경을 보여준다. 그는 현대 도시에서의 공 허한 삶을 피티병을 물어뜯는 개의 절망적이고 끈질긴 몸부림에 빗대어 표현하는 데, 그 표현방식이 또한 어찌나 절망적이고 끈질긴지 독자는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의 행과 행사이에 스며있는 그 팽팽한 긴장은 단어 하나하나에 중층 적 의미를 부여하며, 자칫 도를 지나친 절망이 상투화되는 것을 막아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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