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

전자 레인지/김기택

시치 2006. 10. 27. 00:36

전자레인지 / 김기택

 

불도 없는데

생선비늘 들썩거린다

이글이글, 입에서 거품이 나온다

퍽, 퍽, 몸 안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 들린다

은비늘 하나 다치지 않은, 바다에서 막 나온 것 같은 생선,

김과 열을 뿜는 흰 접시가 전자레인지에서 나온다

 

불도 없는데

할머니 얼굴 쭈글쭈글해진다

등뼈가 휘어지고 오그라들고 굳어진다

거친 숨, 가는 신음이 몸 안에서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깊은 주름을 흔들며 이 빠진 아이처럼 깔깔거리는 할머니

성한데 없는 맑고 어린 웃음이 경로당에서 나온다

 

현대시 (200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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