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시

미당문학상최종후보작(2)김명인

시치 2006. 9. 8. 13:02
미당·황순원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② [중앙일보]
밀도·긴장 대신 빈 틈의 여유
밝아지고 분명해진 삶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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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의 일이다. 중앙 신인문학상 최종 심사가 이틀이나 남았을까. 오전 9시도 안돼 휴대전화가 울렸다. "김명인입니다. 정말 죄송한데, 심사를 못 할 것 같습니다." 시인은 신경림 시인과 함께 최종 심사를 맡기로 돼 있었다. 이런 난감할 데가! 그러나 시인의 사정을 듣고나서, 오해를 금세 씻어낼 수 있었다. 시인의 선친 묘소가 밤새 들이친 비바람에 떠내려간 것이었다. 이미 시인은 동해안 작은 마을의 고향집으로 차를 모는 중이었고, 황망한 마음 겨우 추슬러 전화라도 한 통 넣은 참이었다.



심사는 예정보다 사흘 늦게, 그러나 무사히 치렀다. 각오했던 것보다 피해가 덜했기 때문이다. 당시 시인의 심정을 고이 옮긴 시가 있다. 물론, 이번 후보작 중 하나다. '수습이 더뎌질 거라 지레 짐작한 탓에/비에 섞인 형님의 목소리 길 위에서 받았습니다/불행 중 안도했습니다 걱정만큼/아버지는 자식들을 성가시게 만들지 않았습니다/폭풍우가 후벼놓은 낭떠러지에 매달려/끝끝내 버티고 계셨습니다'('세상 모르고 날았네'부분)

시인의 지난 횡액을 지금 와서 다시 꺼내든 이유가 있다. 그 일을 겪고난 뒤로 시인의 시적 변모가 읽히기 때문이다. 무릇 김명인의 시라 하면, 무언가 꽉 들어찬 기운이 일어야 했다. 한두 번 읽어선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어야 했다. 그래서 문단은 김명인의 시학을 "사물을 상식에서 다루지 않는 데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밀도와 긴장의 시인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어딘가 빈 틈도 보이는 듯싶고, 강인한 힘도 좀체 느껴지지 않는다. 그 변모의 도드라진 예가 '머뭇하다'란 작품이다. 시는 어느 늦가을 한가로운 시골 풍경을 노래한다. 첫째 연을 보자. 바람건반을 밟듯이 사뿐사뿐 날던 새 한 마리가 방향을 바꿔 나를 향한다. 나에게 날아오는 모양이 꼭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그런 줄로만 알았더니 홱 고개를 돌려 시퍼런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둘째 연도 비슷한 심상이다. 이번엔 새끼염소들이 내 앞에서 멈칫대다가 흩어져 버린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선, 머뭇대는 가을 풍경 위에 시인 자신을 살그머니 포개놓는다.

김명인의 시는 여태 명도(明度)가 낮았다. 삶의 어두운 그늘을, 시인은 두 눈 부릅뜨고 응시했다. 감춰 놓은 그늘을 애써 찾아내려 했기에 그의 시는 쉬이 읽히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한참 밝아졌고, 분명해졌다. 이토록 감미로운 노래를 부를 줄 아는지 몰랐다. 이토록 섬세하게 삶을 어루만지는 시인인지 미처 몰랐다.

또 다른 후보작 '분서(焚書)-책을 태우다'를 보자. 중간 대목이다. '여기 어느 책갈피도 들춘 적이 없어 나는/실패한 형제들의 교과서를 아궁이에 찢어 넣는다/버린 것일망정 헌책을 태워 온기를 얻으려니/평생을 문자에 기대 여기까지 온 나의 분서갱유가/우스꽝스럽구나'

삶에 대한 반성과 회오가 아궁이 속 불처럼 환하다. 평생을 짊어지고 온 무거운 무언가를, 시인은 이제 내려놓으려 한다. 쉬워졌다고 해서 허술한 건 아니다. 시인은, 마음의 한쪽을 열어놓은 것이다. 자유로이 내왕하시라고, 슬쩍 터놓은 것이다(문태준 예심위원).

그러고 보니 시인은 막 환갑이 지났다. 전화를 넣었더니, 노모 모시고 고향에 내려왔다고 말했다. 물어볼 것 많았지만 물어보지 못했다. 시인은 "할 말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허허허, 한참을 웃었다.

손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