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관련

[스크랩] 양형진의 물리학을 통해보는 불교의 중심사상 (4)

시치 2006. 9. 5. 00:40

 
    (4) 무아와 무상, 공 인과성과 상의성의 의미를 지니는 연기론은 모든 존재가 그 자신의 변하지 않는 스스로의 성질 즉, 자성을 가지고 남과는 상관없이 그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요소의 끝없는 어우러짐에 의하여 비로소 성립되고, 또 서로가 서로에게 끝없이 의존한다는 것이다. 물리 세계의 경우 소립자들이 모여 양성자나 중성자를 이루고 그들이 모여 원자를 이루며 원자가 모여 분자를 이루고 그 분자들이 모여 생명체를 포함한 갖가지 물체를 이룬다. 또 그런 것들이 모여 천체를 이루고 그 천체들이 모여 우주를 형성한다. 이렇듯 여러 단계가 있고, 각 단계마다 실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은 어느 것 하나 불변하는 고정된 자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같은 양성자라도 어떤 때는 수소 원자가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산소 원자가 되기도 한다. 이를 불교에서는 '모든 사물이 다 무아' 즉,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한다. 여기서 '아'는 범어 '아트만[Atman]'을 음역한 것으로서 곧 불멸하고 불변하는 실체를 가리킨다. 이렇듯 우리 세계를 구성하는 (생명체를 포함하여) 모든 존재가 그 자신의 특수한 자성을 가지고 자기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본성이란 있을 수 없으므로 무아(無我)이다. 이렇게 무아이고 무실체적인 것들이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인연의 모아짐에 의하여 나타났다가 그 인연의 흩어짐에 의하여 사라지니, 우리 우주에 변하지 않고 항상 같은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란 없으므로 무상(無常)이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존재자는 공간적으로 무아요 시간적으로 무상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연기론의 관점이다. 이렇듯 일체의 현상과 사물이 본래 그 자리에 그런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제 요소가 화합 하는 인연에 의하여 나타나므로, 거기에 어떤 실체가 있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그 본성이 공하다. 그래서 모든 존재를 공(空)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연기는 곧 무아(無我)이고 무상(無常)이며 공(空) 이다. 여기서 존재자 즉, 색이 공하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공이란 무아무실체적인 것들의 인연의 어우러짐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이란 색이 아무 것도 아니라거나 혹은 색인 것으로 보여 무엇이 있는 듯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아무 것도 없다는 허무적 멸의 의미가 아니다. 또, 지금은 여기에 색으로서 존재하는 듯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국은 무화할 것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그리고 색이라는 현실 세계가 있고 이와 동떨어진 어떤 다른 세계를 상정하여 이를 공이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색이 공하다는 것은 모든 색이 오직 연기에 의한 것이므로 색의 성품 그 자체가 공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색성공(色性空)이라 한다. 무지개가 공하다는 것은 무지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고 무지개가 결국은 사라지리라는 것도 아니다. 무지개가 나에게 나타나지만 그것은 오직 인연의 어우러짐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므로 그 성품이 공하다는 것이다.[7] 이렇듯 색을 떠나 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색의 성품 그 자체가 공하고 따라서 색 그 자체가 공한 것이므로 이를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 한다. 색의 세계가 현실의 세계이고 공의 세계가 깨달음의 세계라는 등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불교를 크게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불교는 현실의 세계를 떠나 존재하는 초월적 실재나 초월적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영원한 본체, 상주하는 개체적 자아, 불멸의 영혼, 창조자 등을 상정하지 않는다. 오직 끝없이 전개되는 연기의 망이 있을 뿐이다. 참 고 문 헌 [7] 성철, {백일법문 상} 2장 5절, 장경각 (1993).
출처 : 옥련암
글쓴이 : 무이(원행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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