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용문역 / 홍성란
산문(山門)에 와 배웠다 모르는 건 죄라고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듣지 못하였으니
간다고
갈 줄 몰랐으니 가다 올 줄 알았으니
앉을 데 앉은 금박(金箔) 은행잎 꽃무덤을
던져 올린 순간 쏟아지는 환호(歡呼)
여기 와
없는 죄를 사하고 말려 올라간 하늘이다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신사동 편액
하루는 도올 선생이 마누라하고 만해마을에 왔어
교수고 한의사고 동경대 하버드대 박사라는데 논리로서는 당할 수가 없는 거야. 신문을 보니까 도올이 세계의 심장에 혈을 꽂겠다며 미국 갔다 왔다는데 몽둥이를 칠까, 대갈통을 깨뿔까 하다가 세계의 심장이 어디냐 물었지. 즉답이 나와야 하는데 오 분이 지나도 대답이 없어. 그래 내가 "네 마누라 배꼽이 세계의 심장이다"하고 할망구 배꼽을 가리켰더니 도올이 파안대소 허리를 굽혔다 폈다 나랑 통한 거야
그담에 '나는 오현 그님이 좋다'고 저 난(蘭)을 쳤잖아
-《불교와문학》, 2021, 겨울호.
매혹魅惑
산야에 구르다 얹혀
물가에 구르다 앉아
콧대도 낯빛도 문드러지고 문드러져
비운 듯
기운 듯 말가니 늙은 돌 안 있나
-《시조문학》, 202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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