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상. 추천,당선작

2021년 하반기 《현대시》 신인상 당선작_ 신동재

시치 2021. 12. 24. 23:10

                                         
오디에이션* (외 4편) / 신동재



너는 교실에 혼자 앉아 있다 자작나무 의자들이 모두 다른 빛깔을 지녔다 일회용 용기에 남은 아메리카노의 높이가 다르다 일부러 말을 걸어보는 것이 좋겠지 어제는 얼음만 앙상한 일회용 용기를 남겼네 매일 음정이 다른 악기를 만드는 중


자작나무에서 연주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직 구멍을 뚫지 않았는데
틀릴 것을 걱정하니 시원히 볼 수 없잖아 그때는 교실이 악기처럼 행세한다
하나뿐인 출입문이 어떤 맵시를 뽐냈는지 너는 진종일 본다
음파들이 다른 데로 뿔뿔이 흩어졌다가 오후 세 시쯤 한 곳으로 집결한다
얼음이 줄어들 때마다 연주를 다르게 해본다 간드러진 음이 누그러들었다


                              *


너는 평소처럼 리코더를 분다 독주獨奏된 악기의 감정이 너에게 전해진다 의자 위에 리코더가 앉는다 고저음을 오가다가 까맣게 변해버린 자작나무들*을 밟고 한 걸음 뛰어오른다 리코더가 리듬에 따라 일어선다 불현듯 너는 허리가 지끈거린다 의자에 탈, 부착될 때마다 너는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다
너는 이리로 오라 손짓을 한다 한 번도 맞춰본 적 없는 콰르텟이 연주를 시작한다 커피가 찰방댄다 이 텅 빈 공간도 흔들린다


                             *


까치발로 선 네 개의 마디
이야깃거리가 고갈되면 우르르 무너져 버린다


교실 안이 젖어 있다 빳빳해진 종아리를 협주 악기로 삼는다
한 손에 쉽게 거머쥘 수 있다
버텨주기를 바랐지만 쉽게 견딜 수 없어 무력감을 불어대며 오후 시간을 보낸다
구멍마다 묘목들이 들어앉아 바람 넣어줄 시간을 기다린다
침을 머리에 맞으면 거름이라 여긴다 너는 창문 너머의 하늘로 계속 뻗어가고 있다
빈 밥그릇을 보니 침이 흐른다 뭘 그렇게 꿀떡꿀떡 삼킨 것일까?
잡을 것도 툭툭 내뱉을 것도 없는 텅 빈 공간
연주하는 동안 너의 키는 얼마나 자랐을까? 구중중한 곳에서 용솟음치고 있다


                              *


묘목들이 그새 어른이 되었다 너는 입속에 다양한 크기의 얼음들을 짤랑거리며 휘파람을 분다


                              *


등받이에 윈드웨어를 기대본다 자작나무처럼 곧고 흰 소리를 내고 싶어 발을 포개며 힘을 준다 화이트보드를 보며 약지로 더블홀을 오무락거린다면 소리가 하얘질지 몰라 키가 커지는 것처럼 고관절이 자꾸 따끔거린다 일회용 용기 속으로 바람이 자꾸 들어온다 손가락들이 얼음 속에서 허우적댄다


유연하던 너의 허리는 힘없이 흰색을 흘리지 않는다
엄지, 검지로 콧구멍을 문지른다 마카펜이 뛰며 점들을 찍는다
그것을 디딤돌로 삼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음역으로 도약할 수 없을까
쨍하게 너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징검다리를 만난 것은 여태 그때뿐이었다
누군가의 양 손아귀에 기꺼이 사로잡힌 때를 떠올릴수록 목에는 객담이 어리어 든다
너는 너 스스로 불린 적이 있었나


                              *


손가락이 삼죽마냥 마디져 있다 어쩔 줄 몰라 더듬거리다가 너의 정문頂門이 천장에 닿는다 이탈음인데 왜인지 듣기 싫지가 않다 너는 돌아가다가 천장을 친친 감아버린다
미닫이문이 열린 적 없는데 너 대신 너희가 앉아 있다




*과거에 들었던 음악을 내면에 떠올려 들을 수 있는 능력.






부르트도록 쳐다보니 슬며시 움츠러드는 복부들



   카페에서 앞사람의 뒤통수를 본다 앞사람이 랩톱 자판을 두드리는 것 같다 자박자박 발을 구르며 혼잣말을 쓰는 것 같다 모음과 자음의 뒤통수가 번갈아 보이는 기분 일기가 노래가 되어 구가되고 있다 앞사람의 혀가 뒤엉킨 것 같다


   카페에 오는 길에 앞서가던 차를 보았다
   부릅뜬 후미등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도장을 찍어 주고 싶었다
   돌아볼 엄두를 내기 전에
   납작하게 만들어 버려야지


   이들 가운데 무엇이 제일 편평할까요 버튼 하나를 빼서 앞차에 던진다 앞차의 운전자가 뒤돌아보려는데 뒤돌아볼 수 없다   내처 직진한다 나를 반추한 지는 먼 옛날입니다 고개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뒤차가 망치로 나를 찍어대고 있다
   어떻게 왔는지 나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
   뒷머리를 자꾸 만져본다 칼데라 같은 것은 없는데


   단체석에서 박장대소하던 아저씨가 아줌마의 뒤통수를 쳐다본다
   공부하고 있는 앞사람의 흐벅진 눈빛도 보아주었으면
   돌아보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정작 내 속에는 온데간데 보이지 않습니다


   평평한 자판 버튼, 앞사람의 납작한 뒤통수, 짜부가 된 자동차들
   앞사람의 등이 강하하고 있다
   그 등은 너무 정직하다 매달려 있기 부담스럽게
   아저씨와 아줌마는 김이 빠진 표정이다
   그분들의 등은 입보다 솔직하다


   꽉 막힌 도로에서 적색 신호등이 바뀌지 않는다
   다들 쪼그려 앉아 한 방향을 바라본다는 것은
   도대체 얼마나
   우직하기만 한 사건인가
   축 늘어진 형상들이 네모에 들어차 있다


   앞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면
   나는 그의 등에 피켈을 박고는
   거짓말처럼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뜻이 무엇인지 판단하지 말고
   속았다는 것을 알아도 내색하지는 마십시오
   아무런 소음이 없게 천천히 자판을 치십쇼


   앞사람은 자기 앞에 앉은 사람의 뒤통수를
   그 앞에 앉은 사람은 다시 그 앞에 앉은 사람의






  엎드리기, 숙이기, 일어서기



비가 내리고 있다 씨수말이 주위를 살핀다 나무 아래 숨는다
엉덩이에 비를 맞는다 계속 꿈틀대며 제자리에서 발을 굴린다


이야기할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누가 있을 때는 풀만 뜯을 거면서


경사면을 타고 내려오는 낙석들 말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펄쩍 뛴다


뾰족뾰족한 잎이 죄다 떨어진다 정수리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다


그것이 말을 패줄 것 같아 온몸을 바르르 떨어댔다


흙, 자갈과 어울려 사는 어떤 키가 큰,


딱딱하던 넓적다리 살이 말의 마음을 보여주지는 않았지


마면갑을 눌러쓰고 앉아 있다 속으로는 비웃으면서 모른 체한다
엉덩이에 계속 비가 떨어진다


말뿐인 것은 별로 무섭지 않아 이히히힝 의성어나 내는 짐승같이


언젠가 받을 막수 소리를 꿈꾸며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다시 불러볼까 비가 그칠 때까지라도


빳빳한 이파리들은 꿈을 타박이라도 하듯 하루 종일 타닥타닥거리지만


아까는 비가 내렸는데 지금은 소나기가 온다
나뭇가지들이 말 등 위로 떨어지고 있다


나무 아래 있으니
뿌리째 걷고 있는 것 같아


웅크린 채 들판의 모습을 떠올린다


가지 끝으로 뛰어오르고 싶다


몽글몽글 빗방울이 맺힌 다리, 씨수말이 내게 남기고 간 선물


씨수말과 나무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간다 둘이 같이 떠났던 유일한 원정 질주


달리지 않았을 뿐이야 말 같지 않은 말이라는 손가락질당할 일을 하지는 않았어


발굽으로 젖은 나무껍질을 매만지고 있다


발굽과 나무껍질을 숲속에 방치하면 둘 다 고독해서 금방 친구가 될 것이다
잎들이 말에게 째깍 소리가 된다 뛰지도 못하면서 엎드린 것들의 회중시계


말은 늪지대로 달려가 물에 잠긴 땅 위를 막 내달릴 수 있다


발굽 자국이 쌓여가는 흙 속에서 치츰 돌로 바뀌어 갈 수 있다


낙석이 멈추고 차가운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발굽 자국이 햇빛을 볼 때까지 그것들은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나? 그의 입에서 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돌이 떨어진다 발 구르는 속도보다 훨씬 빨리






노바—젤란디아



의자가 나에게 질문을 합니다
질문에 차근차근 대답합니다
새로운 땅이 보일 때까지 나는 등받이와 얘기하고 있습니다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단어들을 꿰맞추려 힘겹게 소리 내고 있습니다


등받이를 젖히고 천장을 봅니다
아직 다 그어지지 않은 가로선, 세로선이 만나고 있을지 모릅니다
‘미지’라고 발음하면 아는 것은 없어지고 모르는 것만 떠오릅니다
잉크는 넘치는데 그릴 수 없는 면적이 이렇게 넓습니다
정말로 지도는 잉크로 그리는 것이 맞습니까?


저 객담 너머에는 무엇이 있나 몇 번이나 그렸는데 거스러미들만 벗겨져 있습니다
암스테르담에 보고서를 보내야 합니다
나는 별을 측정하러 말석으로 갔습니다
새로 찾은 땅에 내 이름을 또박또박 붙여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의자 중 하나가 나를 지목합니다
바퀴가 굼뜨게 생긴 접이식 같구나
등받이를 박차고서 가버릴까
기댈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의자가 나를 뱅글 돌립니다
갤리온이 기울고 있습니다
나는 육각 렌치같이 힘주어 섰습니다


마스트가 지탱해야 하는 삼각돛의 무게, 의자는 날 수 없나요
나는 쉴 새 없이 주먹을 돌리며 원주민들이 보낸 부메랑같이 날아갔습니다
의자들보다 내가 일찍 선교에 앉았습니다
나는 지나가던 불청객입니까
수군거리던 의자에게 질문할 차례입니다






켤레



입 속에 머금고 있는 맥주는 네덜란드 산(産)이다
목구멍을 넘어갈 때는 인니 산이 되었지만


                              *


핸드폰으로 듀얼 화면을 본다 천장에는 조명들이 돌아가고 무대에는 열창하는 가수가 고음 파트에서 왼 주먹을 불끈 쥔다 보라색이었다가 노란색이 된다 천사의 사다리가 하늘에 닿는 것과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듯 관객들은 읊조린다 우리를 들어올리지 못하는 노래라면 아래로 꺼져버려라 안면의 좌우를 포지하는 렌즈와 점점 이마까지 차오르는 격한 기분, 공연 리플릿에는 나와 있지 않은 음역이 전면에 들어차 있다 노래를 곰곰이 들을수록 돌이 발등을 내리찍는 느낌이 들었다 쫙 하면서 반으로 갈라지고 있다 반은 네모형이고 반은 활형인 암석들이 마구 바스러지고 있다 관객들은 기립해서 손뼉을 치고 위아래 화면 모퉁이에 다음 영상이 떠 있다 모서리 정도는 내줘도 좋았다 화면이 나에게 울퉁불퉁한 비위를 건네주었다 뒤집어도 노래가 떨어지지 않았다


                              *


남자 초등학생이 뛰어가고 있다 돌파하고서 때린 슛이 골대를 갈라버린다 깨어 있어야 해 안 그러면 멍이 들 것 같으니 구석에 작은 상자가 생기고 있다 나는 굴러가지를 못하는 사람이야 뒤로 가기를 누르지 못해 이것을 증후군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다음 귀퉁이가 알려주겠지 나는 전범이지 옳고 그름을 나누는 선이 명확해서 왼눈과 오른눈에도 다른 색깔의 피가 흐르도록 제작됐어 어떤 색인지는 밝혀주고 싶었지만 결코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입을 꾹 다문다 판정을 받지 않고 살아온 이유는 무엇이었나 말하기도 전에 목이 쉬어버렸다 집으로 가는 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온다 광경의 왼편은 보라색으로 오른편은 노란색으로 떨린다 골대가 흔들리는 것은 식상한데 사람들은 골대가 흔들릴 때마다 환호한다 내 눈덩이에는 아주 선명하게 피멍이 들었다


                              *


피멍을 달래준다면 갈라진 과거의 일은 삼켜버릴 것이다


                              *


어느 쪽이 위인지 알 수 없다
거꾸로 매단다면 검은 것은 역류하겠지만 힘껏 노래를 부르는 자는 주먹을 더욱 불끈 쥔다


                              *


들숨과 날숨은 너무 무거워서 목울대의 한가운데에 멈춰 서 있다
눈을 질끈 김고 목울대를 찢어 공기를 모두 떠나보내려 한다
해리 현상을 앓는 것처럼 목구멍을 끙끙대고 있다
머리를 휘돌리면서 보면대를 꽉 붙잡는다 익숙한 것같이 위를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 허리가 잘록해져 있다 파스칼의 공처럼 힘을 주어도 터지지 않는다
날씬해질수록 속이 훤히 보이는 낱낱의 유리창이 되고 있다
고음역을 내지 않고도 볼 수 있다면 기꺼이 다음 모퉁이가 될 것이다
손아귀에 힘을 준다 남아 있는 맥주를 송두리째 알루미늄 양동이에 붓는다
모든 거품이 2의 배수로 묶인다 가죽 벨트가 냅다 위를 죈다
우리는 분수가 아닌가 상체와 하체로 된
그리고 날쌔게 석촌 호수를 뛰고 있다 서호의 호(呼)였다가 동호의 흡(吸)이 된다
풍경을 문지르고 있다 우리의 내면을 사진으로 찍어놓은 것 같다
내면에서 소리가 생기지 않는다 서로 털어놓을 소회가 많은데 고운 가루만 들이붓고 있다
나는 맛보고 너는 삼켰다




  * 르네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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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재 / 1987년 출생. 경인교육대학교 초등교육과 국어심화 졸업.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졸업.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수료. 2021년 하반기 《현대시》 신인상 당선.






   | 심사평 |


   이번 2021년 하반기〈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 공모에는 지난번보다 좀 더 늘어난 250여 명의 응모자들이 작품을 제출하였다. 백신 접종에도 불구하고 연일 코로나19 확진자가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는 시국에서 응모자들의 문학에 대한 열정이 여전히 뜨겁다는 사실은 고무적이었다. 이번 응모는 저마다의 안정된 시적 기량을 가진 작품들은 많이 있었지만, 이러한 점이 도리어 기시감이 느껴지거나 텍스트의 내적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모나지 않게 잘 만들어진 시도 좋지만 조금 거칠더라도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자신만의 시적 스타일을 창조해 나가는 것 또한 중요할 듯하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응모자는 아래와 같다.


      권기문, 권숙희, 김주원, 박다래, 신동재, 신윤하, 이아라, 임원묵, 정미주, 한윤희, 한현주


   이 중에서 본심 심사위원들은 박다래, 권숙희, 정미주, 신동재 네 분의 작품에 주목했다. 먼저 박다래 씨의 작품은 그동안 〈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 본심에서 계속 보아왔던 시편들보다 한 단계 진일보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어 반가웠다. 편편의 시에서 다소 막연하게 잡혔던 시상이 선명하게 감지되면서 문장 단위의 인상적인 표현도 눈에 띄게 많이 보였다. 다만 익숙한 시적 분위기에 기대어 나온 듯한 일부 시편들이 마지막까지 확신을 주지 못하였다. 권숙희 씨의 작품은 소박하게 일상을 담아내는 시에서도, 환상에 기대어 현실을 재구성하는 시에서도, 여성 서사를 담보하고 있는 시에서도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성취와 매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작품 간의 편차가(수준치라기보다는 성향차)가 커서 어디에 구심점을 두고서 시 세계를 파악해야 할지가 망설여졌다.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보다 어느 하나라도 더 강렬하게 밀고 나가는 고집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정미주 씨의 작품은 마지막까지 추천작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미덕이 많이 보였다. 무리 없이 편안한 화법으로 생경한 세계를 그려내는 솜씨가 눈에 띄는 가운데, 시상을 끌어가기 위해 동원한 이미지들 역시 적재적소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문장과 문장의 연결, 장면과 장면의 연결이 엇갈리면서도 부드럽게 처리하는 솜씨 역시 돋보였지만, 편편의 시를 읽고 난 후 이것이 과연 최선의 완결일까 했을 때, 아직은 충만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를 마무리하고 있다는 인상이 남았다. 한 편의 시에 대한 장악력이 조금 더 단련될 필요가 있다는 판단 아래, 지금보다 더 충만해진 시편들로 다시 만났으면 하는 아쉬움과 바람을 함께 남겨둔다.


   신동재씨를 시인으로 추천한다. 그의 작품은 만화경처럼 색색의 허다한 장면으로 채워가는 화법이 인상적이다. 장면에서 장면으로 옮겨가는 속도감이 굉장히 경쾌한데, 속도감에 얹어서 독특한 미감을 발산하는 문장들이 누적으로 시를 직조하는 솜씨가 돋보였다. 문장 단위에서 느껴지는 묘한 이질감과 문장에서 문장으로 넘어갈 때 발생하는 속도감이 시적 특징을 이룬다고 할 때, 이것이 압도적으로 읽히면서도 다르게는 한 편의 시가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과잉된 장면으로 채워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논의 끝에 적정한 수준의 완결성보다 문장 단위의 돌출성에 조금 더 힘을 실어서 보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더 비틀리고 어긋나는 시선으로 이 세계의 이면이자 심연을 발굴하듯이 선보여줄 것인가, 이런 궁금증과 기대감이 마지막까지 그의 작품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했다. “모든 것들이 만건곤”한 가운데서도 “우직하”게 밀고 나가 우리 시단에 또 하나의 사건이 되는 시 세계를 펼쳐주기를 기대하며, 신동재 씨의 작품을 2021년 하반기 현대시 신인 추천작으로 내보낸다. 신동재 시인께 축하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김언)

심사위원 : 원구식 오형엽 김언 조강석 안지영


               ⸺월간 《현대시》 2021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