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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문학동네신인상 시 당선작 / 변윤제 시인

시치 2021. 11. 20. 17:59

 
2021년 문학동네신인상 시 당선작 / 변윤제 시인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가만히 동호회 외 6편




가만히 멈춰라.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시작된 동호회.


가만히 멈추는 건 무엇인가요 멈추는 것과 가만히 멈춤은 무슨 차이일까요.
먼지떨이를 쓸어내리며 생각했습니다.
수백 갈래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고민했습니다. 먼지떨이로 사람을 때리면 회초리가 되고요. 먼지떨이로 반찬을 집으면 젓가락이 되는데.
가만히 멈추면 가만히가 무엇이 되지요?


요를 펴면서도 생각했어요.
이불로 나를 돌돌 말아 쥐는 사람아. 김밥 놀이를 시키며 내 숨을 사라지게 하는 사람아. 어머나.
오이의 기분은 희박하구나? 그래서 안쪽이 창백하구나.


그대여.
내게 가만히를 명령한 그대야말로 가만히의 명수.
타르트를 파는 저 세탁소를 보아요.
가루가 떨어져요. 옷걸이엔 밀가루 포대가 잔뜩 걸려 있답니다. 세제 대신 흰 가루 쏟아지고.


왜 우리는 항상 가는 곳만 가야 하나요?
이 세탁소에 온 손님은 아무도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렇게까지 새하얀 건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당신만이 매일 저 세탁소에 옷을 맡겨요. 검고 푸른 옷마저 희게 만드는 저 세탁소를.
완벽한 하얀색을.
가만히는 그렇게 꾸준한 일. 늘 하는 것을 늘상 반복하는 일. 그런데 제게도 가만히라니요?


가만히를 일생 기르면서 가만히를 가만히 가르치는 당신.
제자리에 멈춰 돌아가는 세탁기 군단.


진정한 의미의 세탁에 대해.
당신은 알고 있었고.
당신이 찾아온 옷가지는 타르트가 되었고. 포도 향이 나고. 어떨 땐 빳빳한 쿠키의 감촉이 제 목젖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오고.
가만히 있어.
그 말이 제 유년을 하얗게 탈색하는데.
발버둥.
토악질. 새하얀 구토물의 겨울. 가만히 동호회가 발버둥으로 완성되고야 마는데.


가만히에게 편지를 씁니다.
가만히야.
나는 한 번도 너 같은 종류의 가만히는 원한 적 없어. 나 혼자만으로 충분한 가만히 동호회.
가만히 부르는 순간 가만히 있던 그림자가 떨어져나가고.
제 털을 가만히 기르고 있던 먼지떨이가 부서져버리고.
벽에 가만히 스며들고 있던 내 등이 내 척추에서 떨어져나가서.
사방이 저로 가득한.
동호회라기보다는 가만히 의회에 가까워집니다. 가만히로 구성된 제국일지도 모릅니다. 가만히 가만히 다가오는 비명에 대해.
가만히 나라의 폭군으로서 명령합니다.


꺼져.
가만히 꺼져.
세상 모두가 일제히 발버둥친다면, 진정한 가만히가 완성되는 것?


시속 칠백 킬로미터로 달아나는 가만히 국민들.
도저히.
도저히.
결정적으로 나는 가만히 있게 되는 겁니다.


코끼리가 없는 코끼리 유치원이나 마찬가지예요.
코끼리가 들어오는 순간 알게 되는 거죠.
우리가 무엇을 동경했는지.
육중한 네 다리와.
유치원을 기둥째 뿌리 뽑는 압도적인 코.
우리 귀여움이 바라왔던 파괴적이고 절대적인 힘.


그대여.
가만히 멈추라고요?
가만히야.
나는 나의 가만히를 끌어안습니다.
가만히의 기다란 코가 내 목을 살며시 조릅니다.
아, 가만히.
그리하여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가만히 동호회.






최류자들 /






인도에서 온 아디타


냉장고에 넣은 여권은 기한이 줄어들지 않는다 믿는다. 아디타의 여권은 늘 차가운 곳에 케밥을 파는 그는 자신을 터키 사람이라 소개한다. 며칠째 팔리지 않는 양고기에 기름을 덧바르면서. 화전하는 걸 보면서. 주전자에서 끓고 있는 건 편지. 수증기가 올라오자 종이 접히는 소리. 당신 불법으로 온 거 맞잖아. 유통기한 지난 거라고. 배탈이 났다는 남자가 아디타의 뺨을 갈겼다. 두어 번 더 후려갈겼다. 노래를 부르며 양고기에 기름을 바르는 아디타. 기름기름. 고기고기.


안부의 나라


손님이 정말 많은 시장이었대요. 아무도 없어요. 어떤 날엔 제 가게에만 비가 내려요. 일인용 먹구름, 일인용 우울, 일인용 불법 체류, 일인용 범법자.
단 한 명도 앉힐 수 없는 비좁은 가게. 흰 앞치마를 입고 행주를 위로했어요. 돼지고기 전단지를 위로했고. 뚝뚝 떨어지는 기름방울을 위로했고. 위로를 위로했습니다.
제가 부친 돈은 잘 갔나요. 전화를 걸면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제 소식을 걱정하기엔 그곳이 너무 행복해져서. 찬란이 영영 안부가 되어서.


일자리 소개소의 창가


우표로 쓰기에 적합한 증명사진들. 시장 골목마다 내가 데려다놓은 체류자들. 휴지에 항공권을 그리고 선물해주었다. 오랫동안 비행기를 타고 온 한 사람은 앉아서 잠들었다. 힐을 벗겨주었고. 패딩을 벗겨주었고. 또각또각 그 사람의 구두가 그자를 버리고 가는 걸 보았다. 비행기는 대체로 어항 속을 날고 있다.


대필


아디타는 돈을 많이 벌어요. (받아 적는 척한다.) 어제와 그제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어요. 눈 내리는 식혜 속을 함께 거닐고 싶어요. (ⵈⵈ) 오늘은 물론 항상 기분이 좋아요. 잘 안 보이던 눈도 제대로 보이고요 (그는 머뭇거린다.) 정말이에요. 제 걱정은 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에요.


소개소 창가엔 언제나 뿌연 안개. 제대로 쳐다보면 빼곡히 흰 우표가 붙은 창문. 걱정과 염려가 실질적으로 이곳의 눈을 가린다.
괜찮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입속에 어두운 복도가 보이고. 괜찮습니다. 다시 들려오는 소리 속에 복도에 구멍이 뚫리고. 그 복도를 오려내는 건 빛나는 가위. 편지를 부치지 않는다.


유통기한


어느 날 세계지도가 그려진 거울이 배달되어왔다. 지우개로 가장 먼 나라부터 지우기 시작했다. 한 체류자가 그 거울을 냉장고에 집어넣으려 하는 것을 보았다. 말리지 않았다. 그들이 안타깝게 여겨질 때 그들을 더욱 이용한다.






기분의 중력과 부력 /






혀를 질끈 깨물면 햇살의 방향이 달라지고
좋아
좋구나, 라고 발음하는 일만으로 기분에 부력이 돈다
정신병원에 갇혔던 스무 살 병상이 꼬리 치며 사라지는 뒷모습


그때, 꼬리는 의지랑 무관하게 헤엄쳤다
몸통이 꼬리에 매달려
수많은 물속을 여행 다녔지, 포식자를 피해 온 가족이 도망간 외할머니의 수조, 쉬는 시간이면 몰려와 날 때리는 물고기들, 어항을 빙빙 도는 정신병에 걸렸던 스무 살 폐쇄병동, 나를 둘러싼 부모의 동공, 그 물살과, 지느러미 사이로, 힘차게 헤엄쳐 다녔지
꼬리 짓이 더욱 세게, 왜 나에게? 몸통의 의문과 꼬리의 운동은 먼 곳, 온몸이 경쾌한 리듬을 그리다가


어느 날 바라던 바처럼 땅으로 걸어올라와
두 팔, 두 다리로 살게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지, 밤마다 창밖서 끈적이는 즙이 흘러들고


천장에 아가미가 달렸어, 어느새 주억거리는 소리 속
수없이 많은 비늘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그때의 몸을 걸어나갔고, 결국 꼬리에게, 왜 그랬어, 그런 여행을 왜 떠나게 했어, 파문이 되돌아오는 결 속
평범하게 잠이 들었지만


그러나 그날엔
커튼을 순식간에 젖힌 아침인데도
볕이 주춤거리며, 일렁거리며, 망설이는 파도처럼 밀려들었지
동틀녘 육지에 올라온 생선이
제 안의 초점을 조금씩 되찾는 모습을 보았듯이


이제 헤아릴 수 있어
물고기였던 사람의 기분엔 언제나 중력과 부력


침대에 누워 또 한번 혀를 깨무는 거야
그러면 침대 속 남아 있던 물결이 출렁거리고
좋은 게 뭔데? 까먹고 살면 안 돼? 그런 중얼거림도 꼬리 칠 수 있지


죽어가던 비늘이 태양을 향해 솟구치고, 보여
우릴 둘러싼 것 중 가장 강한 중력을 가진 저 별
태양 곁엔 늘 쏟아지는 비늘
눈부신 물결 속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등을 마주대고 잔 밤과, 그런데도 무사히 졸업하던 날의 기억, 강박당한 나를 둘러싼, 다정한 폐쇄병동 환자들, 어느새 꼬리가 그곳을 헤엄치고
잊고 있던 기분의 중력이 나를 계속 끌어당기면


아니야, 역시 오늘은 기분이 좋아
발음하며
날 뒤덮은 비늘을 하늘로 솟구치게 해
그들은 하늘에 침잠하고, 짙푸른 아침 물살의 색을 빚어내지
창공, 내 기억으로 출렁이는 수면
다시 혀를 질끈 깨물면






민트초코가 유행이라서 /






치약을 넣고 라면을 끓입니다
유행이라면 뭐든 해보고 싶으니까요
제겐 적당한 동질감이 필요할 뿐
치약에게도 따뜻함은 필요하지 않겠어요?
국물까지 마셔도 죽진 않을 거예요
한때 흰 국물 라면이 유행일 때도 있었잖아요
이 면을 마지막으로 저도 퇴장할게요
꿈이 생기고 말았잖아요
민트초코의 결정타를 날리겠다는 야심까지가,


라면을 들고 지하철에 탈 거예요
가스버너에 불을 지피고 역무원이 출동할 때까지
흰 연기 피어오르는 눈앞에서
도시 괴담처럼 살아남는 거죠
화가 날 때마다 저는 이를 닦던 사람
칫솔과 치약에게 성을 내던 사람
민트초코가 유행이라니
치약에게 용서를 구할 기회가 온 게 고마울 따름
이제 위장은 잘 닦인 치아처럼 번쩍일 테고
참신하다는 말은 모욕적일 뿐
치약 라면이라 해서 칫솔을 들 필요는 없죠
논리적일 필요가 없는 곳에서
젓가락을 들고 치약 거품 속으로
하얀 구멍 구멍의 더 구멍 아래로
자꾸 그렇게 곁눈질하지 말아요
세상에 대한 안목이 생겨버릴 것 같잖아요?
한 가락도 나눠주지 않을 거예요






귀신고래의 마을 /






애초 증조모가 내게 맡긴 일은 고래의 귀지가 될 만한 파도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그녀와 같이 고래 귓속을 걸으면 천장의 선홍빛이 귀지에 내려앉고.
부스러기마다 불이 들어와 밤에도 사방이 어둡지 않았다.


고래 귓속에 무엇이 들어올 때마다 새로운 장소가 발견되곤 하였다.
씨앗이 닿아 초원이 된 고막.
귓바퀴 소용돌이를 하릴없이 걷자 트랙이 되었고.
그녀와 함께 그곳을 종일 걸으면 사지에 소용돌이 문양이 돋기도 했다.


나는 불이 들어온 귀지를 들고 고래의 외이도를 탐험했다. 파도 무늬 그려진 귀지.
처음엔 푸른빛이나, 점차 황금빛이 감도는.
혈색이 닿으면 핏줄아 돋는 그것에게.
내가 부스러기에 얼굴을 가까이 대면 두 볼에 붉은 기운이 선명해졌다.


광대 안쪽이 마그마가 흐르는 것처럼 뜨겁다가, 이내 온몸이 싸늘해졌다.
증조모는 그럴 때 내 목덜미를 낚아채 고래 귀 바깥으로 집어던졌다.
그 밖은 노을의 너머와 맞닿은 곳, 나는 지평선 아득한 곳에서 집까지 헤엄쳐왔다.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며 매타작이 쏟아지는 집.
지붕을 휘감은 넝쿨이 허름한 집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는.


증조모를 만나고 왔단 얘기에 부모가 고개를 저으면.
그들 귀에서 귀지가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부모의 안쪽에도 누군가 걸어가고 있을까.
내가 아직 보지 못한 나의 아이라거나.
그들 귓속엔 회초리 소리가 몰아치는 숲. 칼날 서걱이는 정원이 있을지도 몰랐지만.


다만 그들의 귀지를 모아 고래 귓속에 데려가보고 싶었다.
그러면 고래는 어떻게 될까. 나를 받아들인 고래가 처음 만든 장소가 어디였을까.
기억나지 않는 그곳이 무척 궁금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귀지가 필요해졌다.
고래 귓속에서 증조모는 더 깊숙한 곳으로 걸어가고. 내 몸은 커져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늘었기에.


좁은 곳에 몸을 밀어넣을 때. 이런 소리가 들렸다.
겨울이 왔다. 고래 귀지에 꽃이 피는 계절이야.
이파리가 무성할 때. 고래는 숨을 거두고 대신 심해 깊숙한 곳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단다.


고래가 가라앉은 바다에 빛이 들어오리라 생각했다.
선홍빛이 유자형을 그리며 내려앉고. 물살이 불이 붙은 것처럼 환해질 때.
멀리서 보면 물결 사이 새로운 핏줄이 생긴 듯, 빛이 들어오리라고.
나는 더이상 들어갈 수 없는 고래 귓속으로 내 큰 몸을 힘껏 밀어넣었고.






알파카 부인의 안데스 /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아뇨, 전 주방세제가 다 떨어진 날에 태어났는데요. 행주를 비빌 때 나는 마찰음. 푸른 열 자국에서.
수세미에 불어터진 살갗이 벗겨질 때. 밑에 발굽이 보일 때에. 그릇 두드리면 과일 향 번지고.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아챌 때.


이토록 목이 길고 귀는 쫑긋 서 있고. 침을 잘 뱉는 내가 누구인가를 마주볼 때.
핥으면 죽는 과일인데요. 먹어보겠어요. 그저 과일을 흉내낸 냄새. 눈을 감았다 뜨면.


어쩌면 부엌은 가짜들의 골목. 줄기가 자라버린 그릇. 사과 냄새 매달린 접시까지.
그러니 탄생이 가능합니다.
두 팔을 두 다리로. 온몸에 털이 자라고. 부엌의 바닥. 아니. 거의 맨틀이라 볼 수밖에 없는. 지옥이라 불러도 될 지하에서. 땅이 융기하면.
더 가능해지는 네 개의 다리.


사이에서 남미식 키친에 당도한다면. 얼룩을 지우고 있는 자. 얼룩을 사라지게 하는 자.
그러니까 불가능해지는 얼룩. 희미해지는. 투명이 되는 얼룩. 그것은 바로.
더욱더 오세요. 그게 나. 우리가 사람이었다고요? 그렇게 살았으면서도 그렇게 믿어요?


그런 말은 알파카나 줘버리라고요. 목젖 뒤에 거리가 있고 거기까지 넘어오세요. 오세요. 눈에서 연기를 뿜으며.
가능해지세요. 이 부엌은 골목의 봉우리. 솟아올라 도시를 산맥으로 만들 정상. 능선을 잇댄다면. 당신의 어깨 곁에.
우리들의 모든 손목 능선에. 이 능선이 가닿는다면.


식칼을 쓰며 나는 손을 베였습니다. 사실 안 쓸 때도 베였습니다. 당신을 마주볼 때.
극장에서. 거리에서. 동사무소. 뒷골목에서. 카페에서. 개가 짖는 노을 옆에서 꽃무늬 담벼락과 들쳐지는 바지와.
막말을 내뱉는 택시와 식당에서. 곁과 곁.
물에도 날이 달린 이 도시에서. 당신은 왜 그렇게 목이 긴가요? 침을 왜 뱉나요? 왜 그렇게 우나요?
나의 털 속으로. 서슴없이 파고든 무수한 손가락.


이런 건 안 좋은 습관이라니까. 깨끗하게 부엌을 관리해야지.
퉤퉤- 이 침 뱉기는 설거지를 위해 쓰입니다. 뱉는 소리와 함께 쓰레기봉투 벗겨지고. 내가 알파카가 아니라면?
아닌 거죠, 뭐.
다시 퉤, 소리에 맞춰 씻겨나가는 것. 내 방식대로 깨끗해지는 것.




*세사르 바예호




망고가 아닌 모든 이유 /






망고를 태운 부드러운 재.
칠흑의 가루 곁에 누워 생각한다.


세상의 어떤 별은 망고에 매달려 그대로 과육의 색이 되지만. 그 빛이 과일의 유일한 색인 것처럼 한사코 맺혀 있지만.


태웠을 때는 검구나.
태양이 어떻게 끝날지 알 것도 같다. 이건 우주 한 알의 색.


귓속에 어두운 설탕이 쏟아진다. 한 번도 닿은 적 없지만, 영원히 오고간 어떤 지옥이.


검은색. 오히려 남국의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적도 아래. 혀를 내밀면 자오선 녹아내리고. 소금기와 물빛. 혀뿌리부터 옮겨 적히는.


바다 밑엔 늘 몇 점의 어둠이 가라앉아 있다. 내 머릿속 꼭 세 개나 네 개 이상은 들어 있는 누군가의 해골처럼.
그때 나의 기분은,
두통약이 밀려들어올 때 내 두통의 마음. 백사장에 닿아 꺼져가는 포말의 심경.
망고를 온 가지에 매달고 썩히는 나무를 본 적도 있지. 지나치게 익은 과실은 뚝뚝 물을 흘리고.
처음 보는 종의 개미떼는 항문이 노랗게 젖어 있다. 줄지어 잇닿는 행렬은 마치 벌레가 되었다고 할 수밖에.


버켄스탁으로 긴 줄을 짓밟을 때. 저마다 다른 명도로 빛나는 솜털만큼의 볕이.
바삭바삭 부서질 때.


심장은 뛰고. 두근거림에 맞춰 몸에서 무언가 새어 나왔다. 파도처럼 흩어지는 벌레떼.
그때 벌레는 부드러운 물. 그래. 과육의 성질.


망칠수록 익어가는 부위는 어디에나 있었어.
망고 나무가 내 정수리에 자신의 물을 흘리고 있을 때. 순간 달콤해지는 고민들에게.


불을 붙일 수 있었다. 머리칼 한 올 한 올 타들어가는 게 느껴지고 달콤하고 유려한 재가 되어갈 때.
두피마저 부드럽고 따뜻한 재로 변해갈 때.


그건 내가 내 생각들에게 적어 내린 답장.
결심이라 말하진 않겠다.
평범한 사람의 불행이 내게 닿지 못한다는 것. 평범한 사람의 행복도 결코 내가 맛볼 수 없다는 얘기.
머릿속엔 온통 망고 굴러가는 소리. 나 자신이 타오르는 한 그루 망고 나무 일 적에. 이건 망고가 아니어야 하는 모든.










*변윤제: 1990년생. 서울예대를 졸업, 현재 동국대학교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