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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행사선사(靑原行思禪師)(2)

시치 2019. 12. 3. 01:20

청원행사선사(靑原行思禪師)(2)


육조(六祖) 대사는 육신보살(肉身菩薩)로 도인 가운데서도 위대한 도인이신데, 이 육조 대사의 문하(門下)에서 선법이 크게 흥성하여 천하를 덮었다.

육조 대사 아래 많은 도인 제자가 배출되었는데, 그 가운데 으뜸가는 진리의 기봉(機鋒)을 갖춘 분이 남악 회양(南嶽懷讓) 선사와 청원 행사(靑原行思) 선사이시다.

오늘날 중국과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종풍(宗風)을 떨치고 있는 선법(禪法)은, 육조 대사의 이 두 상수(上首)제자의 법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청원 행사 스님이 육조 대사를 처음 참예(參詣)하여 예 삼배를 올리고 여쭙기를,

"어떻게 해야 계급(階級)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하니, 육조 대사께서 도리어 물으셨다.

"그대는 무엇을 닦아 익혀왔는고?"

"성인(聖人)의 법(法)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어떠한 계급에 떨어졌던고?"

"성인의 법도 오히려 행하지 않았거늘, 어찌 계급이 있겠습니까?"

 

진리의 눈이 열리면 이렇게 쉽다. 묻고 답하는 데 두미(頭尾)가 이렇게 척척 맞게 되어 있는 법이다. 그래서 육조 대사께서 매우 흡족히 여기시고 행사 스님을 제자로 봉(封)하셨던 것이다.

이후 청원 행사, 남악 회양 두 분 선사의 계파(系派)를 좇아서 선종(禪宗)의 오종(五宗)이 벌어졌다. 행사 선사의 문하에서는 조동종(曹洞宗), 법안종(法眼宗), 운문종(雲門宗), 회양 선사 문하에서는 임제종(臨濟宗)과 위앙종(潙仰宗)이 벌어져 중국 천하를 풍미했던 것이다.


행사 선사 밑으로 석두(石頭)-도오(道悟)-용담(龍潭)-덕산(德山) 선사로 쭉 이어져 내려왔고, 회양 선사 밑으로 마조(馬祖)-백장(百丈)-황벽(黃檗)-임제(臨濟) 선사로 이어져 내려왔으니, 임제의 '할(喝)'과 덕산의 '방(棒)'은 육조 문하의 양대 아손(兒孫)의 가풍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선종(禪宗)은 임제 선사의 선풍(禪風)을 이은 임제종인데, 20여 년 전에 향곡 선사께서 산승에게 이렇게 물으신 적이 있었다.

"너는 덕산 선사의 '방(棒)'의 살림을 소중히 여기느냐, 임제 선사의 벽력 같은 '할(喝)'을 소중히 여기느냐?

그래서 산승(山僧)은,

"두 분 다 이 주장자로 삼십 방(棒)을 맞아야 옳습니다."

라고 답했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이 양대 아손(兒孫)의 가풍을 알겠는가?

 

다시 거슬러 올라가 보건대, 청원 행사 선사께서는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진리의 체성(體性)을 전하셨고, 남악 회양 선사께서는 향하(向下)의 대용(大用)의 법을 전하셨다.

이 진리 자체에는 체(體)와 용(用)이 본시 둘이 아니어서, 체가 용이 되기도 하고 용이 체가 되기도 하여 둘이 항상 일체이다.

그래서 구경법(究竟法)을 깨달아 향상(向上)의 진리를 알게 되면 향하(向下)의 진리도 알게 되고, 향하의 진리를 알면 향상의 진리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둘이 아니면서 이름이 둘이다.

 

행사 선사와 회양 선사, 두 분이 쌍벽을 이루어 육조 대사의 고준(高峻)한 법을 널리 펴시는데, 행사 선사에게 제자를 봉(封)해 분가(分家)시켜야 할 인연이 도래하였다.

하루는 행사 선사께서 제자 석두(石頭) 스님을 시켜 회양 선사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르셨다.

"네가 회양 선사께 가서 이 편지를 전해 드리고 돌아오면, 무딘 도끼[돌斧子]를 주어 분가(分家)시켜서 다른 산에 주(住)하게 하겠다."

석두 스님이 여러 달을 걸어서 회양 선사 처소에 이르러 인사를 올리고는, 전하라는 편지는 올리지 않고 대뜸 여쭈었다.

"모든 성인(聖人)을 사모하지 않고 자기의 영(靈)도 중요시 여기지 아니할 때 어떠합니까?"

이렇게 고준한 일문(一問)을 던지니, 회양 선사께서 물으셨다.

"그대는 어찌하여 향상(向上)의 진리만 묻고 향하사(向下事)는 묻지 않는고?"

그러자 석두 스님은,

"수억만 년을 생사(生死)의 바다에 잠길지언정 모든 부처님과 성인의 해탈법은 구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자기의 소견(所見)을 고집하였다.

이 말 끝에 회양 선사께서는 돌아앉아 버리시고 상대하지 않으셨다. 양변(兩邊)을 다 들어야 하는데 일변(一邊)으로만 나가니 대화의 상대가 안 된다고 돌아앉아 버리신 것이다.

 

대중은 알겠는가?

 

만약 당시에 회양 선사께서,

"이 담판한(擔板漢)아, 판자를 지고 천리 만리 잘 돌아다녀 보게."

라고 한 마디 던지고 돌아앉으셨더라면, 석두 스님에겐 크나큰 활기(活氣)가 되었을 것이다.

 

석두 스님이 그 길로 행사 선사께 돌아가니, 선사께서 물으셨다.

"편지는 잘 전했느냐?"

"편지도 전하지 못하고 신(信)도 통하지 못하였습니다."

석두 스님이 회양 선사 처소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씀 드리고는,

"편지를 전하고 오면 무딘 도끼를 주어 분가시켜 주신다고 하셨으니 도끼를 주십시오."

하였다. 그러자 행사 선사께서 아무 말 없이 발(足)을 들어 보이셨고, 거기서 석두 스님은 큰 절을 하였다.

행사 선사께서는 여기에서 석두 스님에게 법을 전하여 남악산(南嶽山)에 주(住)하게 하셨다.

고인들께서는 제자에게 법을 전하실 때, 이렇게 세밀하게 다루어 보고 마음에 흡족해야 법을 부촉(付囑)하셨다.

이 법은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을 것 같으면, 만인의 눈을 멀게 하고 불조(佛祖)의 정안(正眼)을 그르치는 고로, 고인들께서 법을 전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세밀하고 세밀하셨던 것이다.

 

무딘 도끼를 달라고 하는데 왜 한 발(一足)을 들어 보였을까?

또, 발을 들어 보이는데 왜 일어나서 큰 절을 했을까?

이 대목은 천고(千古)에 알기 어려운 법문이다. 여기에 무진(無盡) 법문이 다 들어 있다.

 

대중은 알겠는가?

(한참 묵묵히 계시다가 이르시기를,)

 

요지향상구(了知向上句) 기부지향하사(豈不知向下事)

향상의 진리를 요달해 안다면 어찌 향하사를 알지 못하리오.

 

향하사(向下事)여!

(주장자(주杖子)를 한 번 치시고,)

바로 이것이니라.




신회 스님이 육조 대사 회하(會下)에서 다년간 수행하다가 하루는  청원 행사(靑原行思) 선사를 참예(參詣)하니, 행사 선사께서 물으셨다.

"그대가 어디서 오는고?"

"조계(曹溪:중국 광동성에 있는 지명으로 육조 혜능이 이곳에서 선풍을 드날렸기 때문에 혜능의 별호로 칭해짐.)에서 옵니다."

"조계에서 온다면 조계의 참 소식은 가져왔는가?"

이에 신회 스님이 앉아 있다가 몸을 털고 일어서자, 행사 선사께서

"그것은 조계의 참소식이 아니다. 깨진 기왓장 조각에 불과하다."

하셨으니, 조계에 계시는 부처님의 진금(眞金)덩어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에게 진금을 주신 일이 있습니까?"

"설사 있다고 한들, 그대가 어느 곳에서 취하려 하는고?"

여기에서 신회 스님은 그만 말문이 막혀 꼼짝을 못 했다.

 

신회 스님은 이후에 하택종(荷澤宗)의 개조(開祖)가 되어 지해(知解)의 종(宗)을 하나 만들었는데, 오늘날까지 그 사상이 전해 내려와 그 종도(宗徒)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정법정안(正法正眼)으로 보건대는, 지해(知解)의 종(宗)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부처님의 정법정안을 이은 육조(六祖)의 정맥(正脈)은 '몰록 깨달을 것 같으면 몰록 다 닦는다'하는 돈오돈수(頓悟頓修)의 법이다.

그런데 신회 스님으로 인해서는 돈오점수(頓悟漸修)의 법이 펼쳐졌으니, 그렇게 철저하지 못한 소견(所見)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면서 후학자로 하여금 정법(正法)에 바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가 되어온 것이다.

 

그러면, 행사 선사께서 "설사 진금 덩어리가 있다고 한들 그대가 어느 곳에서  취하려 하는고?" 하셨을 때 신회 스님이 아무런 대꾸도 못 했는데, 만약 그 때 행사 선사께서 신회 스님을 철저하게 다스려놓았더라면, 오늘날까지 점수(漸修)의 폐습이 남아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산승(山僧)이 당시의 행사 선사의 입장에 있었더라면, 신회의 말문이 막혔을 때, 거기에서 쉬어 버리지 않고 주장자로 삼십 방(棒)을 때려서 산문(山門) 밖으로 내쫓았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였더라면, 점수(漸修)의 폐습을 완전히 쓸어 없애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대도(大道)의 활로(活路)를 당당하게 걷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산승(山僧)이 만약 당시의 신회 스님이었더라면, 행사 선사께서 "그대가 어느 곳에서 진금을 취하려 하는고?"하셨을 때 고개를 숙이고 두  팔을 흔들며 나갔을지니, 거기에는 행사 선사의 날카로운 기봉(機鋒)도 어찌하지 못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