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관련

청원행사(靑原行思)스님

시치 2019. 12. 3. 01:18


청원행사(靑原行思)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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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힘을 써야 하는가?

 

淸源行思禪師 問六祖

當何所務 卽不落階級

祖曰汝曾作甚來

師云 聖諦 亦不爲

祖曰落何階級

師曰聖諦 尙不爲 何階級之有

祖深器之

 

청원행사선사가 육조대사에게 물었다.

“마땅히 무엇에 힘을 써야 계급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육조대사가 말하였다.

“그대는 일찍이 무엇을 하였는가?”

“성스러운 법도 또한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계급에 떨어졌는가?”

“성스러운 법도 오히려 하지 않는데 무슨 계급이 있겠습니까?”

육조대사가 깊이 그가 법의 그릇이 됨을 알았다.

 

해설


청원행사(靑原行思, ?∼740) 스님은 남악회양 스님과 더불어 남종선의 양대 산맥으로 우뚝하게 높이 솟은 스님이다. 본래 길주(吉州)의 안성(安城) 사람으로 속성은 유(劉)씨였다. 어려서 출가하였는데 항상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면 스님만은 잠자코 있었다. 나중에 6조 혜능 스님의 법석이 번성하다는 말을 듣고 가서 참례하고 위에 소개된 내용과 같이 물었다. 혜능스님은 청원스님을 매우 높이 보아서 회중(會衆)에 제자들이 아무리 많아도 언제나 스님을 상수(上首)로 삼았다.


하루는 혜능스님이 청원행사 스님에게 법을 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로부터 스승과 제자 사이에 가사와 법을 함께 전했으니 가사는 믿음의 표시였고 법은 마음으로 인가한 것이다. 나는 이제 깨달은 사람을 얻었으니, 어찌 뒷사람이 믿지 않을까 걱정하겠는가. 내가 5조 스님께 가사를 전해 받은 뒤로 오늘까지 이렇듯 여러 번 환란을 당했는데 하물며 후대의 자손들이야 어떻겠는가. 반드시 많은 싸움이 일어나리라. 가사는 산문(山門)에 남겨두고 그대는 힘에 따라 한 지방을 교화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라”라고 하였다.


청원스님은 혜능스님의 법을 얻은 뒤에 그 말씀을 따라 길주 청원산 정거사(靜居寺)에 머물면서 조계선의 현풍을 크게 드날렸다. 그러므로 호를 청원(靑原)이라 하고, 세상 사람들은 그의 문도를 청원하(靑原下)라 불렀다. 혜능스님으로부터 법의 그릇으로 인정을 받게 된 대화의 내용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는 것에 대해서 계급이 있고 없음의 문제였다.


계급이란 수행의 지위와 점차에 대한 문제다. 방편의 교설이 많은 경전에는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라는 네 단계가 있다고 하며, 또한 어떤 경전에는 18주(住)라고 하여 열여덟 단계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어떤 경전에는 10신, 10주, 10행, 10회향, 10지, 등각, 묘각이라는 52단계의 수행점차를 열거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편설이 난무하면서 선불교에까지 유입되어 점수(漸修)라는 점점 닦아서 어느 경지에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선불교는 불교의 완성이다. 불교가 이제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방편을 쓰지 않는 진실한 이치만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 혜능 스님은 청원 스님과 방편교설인 지위점차의 문제를 가지고 검증하면서 불교의 궁극적 경지를 밝힌 것이다. 어떤 분야든지 그의 능력을 인증을 할 때는 그가 지닌 최고의 실력을 검증하고 나서 인증한다. 선불교에 있어서 그의 불교적 안목을 알아보고 나서 법을 인정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간의 모든 불교가 지위와 점차인 계급을 많이 말하고 있는데 이 시험지의 답안은 본래로 부처이기 때문에 계급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합격이다. 불교의 목표는 성불이며 그 성불이란 모든 사람들이 한걸음도 옮기지 않은 상태에서 본디부터 완전한 상태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가도 가도 본래 그 자리요, 도착하고 도착해도 처음 떠난 그 자리(行行本處至至發處)”라는 고인의 말씀 그대로다. 이와 같은 불교 최궁극의 견해로써 그동안 오해하고 있던 불교의 상식을 바로잡아서 어려운 불교에서 쉬운 불교로, 복잡한 불교에서 단순한 불교로 자신을 교화하고 다른 사람을 교화하여야 하리라.

 

무비스님 / 조계종 전 교육원장[불교신문 2574호/ 11월14일자]


여릉의 쌀값은 어떠한가?”


미가수방귀천동 米價隨方貴賤同이나

윤회심식견난통 輪廻心識見難通이라.

욕궁사노귀원처 欲窮思老歸源處인댄

월재서혜일재동 月在西兮日在東이로다.


쌀값의 시세는 고장마다 같은데

헤매는 마음으론 보아도 모른다네.

행사 노장의 끝난 곳을 알려는가?

달은 서산에 있는데 해는 동쪽에 있네.


청원행사靑原行思 선사에게 어느 날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여하시불법대의如何是佛法大意닛고.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이에 청원이 대답하였습니다.

“여릉미자마가廬陵米作價오. 

여릉의 쌀값은 어떠한가?”


僧問。如何是佛法大意。

師曰。廬陵米作麼價。


청원행사 선사는 육조혜능 스님의 으뜸가는 제자입니다.  어릴 때 출가하여 나중에 조계의 법석이 융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서 인가를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길주吉州 청원산 정거사靜居寺에서 법을 펴고 있었습니다.


그 뒤 육조 스님이 열반할 무렵 희천希遷이라는 사미가 찾아와 육조 스님께 물었습니다.

“화상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누구에게 의지하리까?”

육조가 대답했습니다.

“생각‘사思’자字를 찾아가라.”


조사가 세상을 떠난 뒤에 희천은 매양 조용한 곳에서 단정히 앉아 죽은 듯이 고요하게 정진하니 제1좌가 물었습니다.

“그대의 스승은 이미 가셨는데 공연히 앉아서 무엇을 하느냐?”

“나는 유언받기를 생각‘사思’자字를 찾으라 하였소.”

“그대의 사형에 행사行思라는 이가 있는데 지금 길주에 산다. 그대의 인연은 거기에 있다. 조사의 말씀이 매우 바르거늘 그대 스스로가 미혹했을 뿐이다.”


희천이 이 말을 듣고 육조의 탑에 절하고는 물러나 곧바로 정거사로 오니 행사 스님이 물었습니다.

“어디서 오는가?”

“조계산에서 옵니다”

“무엇을 얻으려 왔는가?”

“조계에 가기 전에도 잃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조계에는 무엇하려 갔는가?”

“조계에 가지 않았던들 어찌 잃지 않을 줄 알았겠습니까?”


희천이 또 물었습니다.

“조계 대사께서도 화상을 아셨습니까?”

행사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그대는 지금 나를 아는가?”

“아는데 또 어찌 알아 보겠습니까?”

“여러 짐승의 뿔이 많으나 기린의 뿔 하나로 만족하다.”


이렇게 청원행사 문하에는 석두희천을 비롯하여 기라성 같은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여릉미가廬陵米價’즉‘여릉의 쌀값’이라는 공안도 그 당시의 어떤 납자와의 문답입니다.

여릉은 강서성 여릉현에 있으며 선사가 머물던 청원산과 가까운 곳으로 옛날부터 유명한 곡창지대입니다. 설사 곡창지대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쌀은 인간생활에서 가장 가까이 대하는 평범한 것입니다.

현실을 벗어나 밖에서 이상적인 불법의 대의를 찾아 헤매는 납자에게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구체적인 삶에서 불법의 대의를 찾아보도록 청원행사 스님은 지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원 스님뿐만 아닙니다. 경청鏡淸 스님 그리고 앙산仰山 스님 역시 그러합니다.


경청鏡淸 선사가 영운靈雲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행각行脚하는 큰 일을 지시해 주십시오.”

이에 영운이 대답했습니다.

“절강성 지방의 쌀값이 어떤가?”

이에 선사가 대답했습니다.

“만일 제가 아니었다면 쌀값이란 견해를 지을 뻔하였습니다.


앙산仰山 스님이 어떤 납자에게 물었습니다.

“어디서 오는가?”

“유주幽州에서 옵니다.”

“내가 마침 유주의 소식을 알고 싶었는데 쌀값이 얼마인가?”

“제가 떠날 때 까닭 없이 시장을 지나쳐 오다가 돌다리를 차서 부러뜨렸습니다.”

이에 앙산 스님은 말을 그만두었습니다.


장사長沙 스님께서“쌀값은 싸고 나무는 많으니 두루 풍족하다.”고 한 말이나 조주 스님의“소금은 비싸고 쌀은 싸다.”라는 선문답을 통해서 우리는 당시의 생활을 엿볼 수 있으며  상심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설봉의존雪峰義存 스님은 동산양개洞山良价 화상의 회상에서 공양주를 오래 살았습니다. 그래서 선사의 법문에는 쌀이 자주 등장합니다.


설봉이 어느 날 밥을 하고 있는데 양개 선사가 물었습니다.

“오늘 쌀을 얼마나 삶는가?”

“두 섬입니다.”

“부족하지 않는가?”

“그 중에는 밥을 먹지 않는 이도 있습니다.”

“만일 다 먹는다면 어찌 하려고 그러는가?”

이에 설봉은 더 이상 대꾸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운거도응雲居道膺이 말했습니다.

“만일 다 먹더라도 부족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또 설봉 선사가 어느 날 시중示衆하였습니다.

“밥 광주리 곁에 앉아서 굶어죽은 이가 수數도 없고, 물가에 앉아서 목말라 죽은 이가 무수하도다.”

그러자 이를 듣고 있던 현사사비玄沙師備가 말했습니다.

“밥 광주리 속에 앉아서도 굶어죽은 이가 수도 없고, 물 속에 빠져서도 목말라 죽은 이가 무수합니다.”

이에 운문雲門 선사가 말했습니다.

“온 몸이 밥이요, 온 몸이 물이니라.”

그 스승에 그 제자들이라 하겠습니다.


어쨌거나 청원행사 스님에게 불법佛法의 대의大意를 물으니 도리어‘여릉의 쌀값은 얼마냐’고 되묻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골바가지가 꿰뚫어져도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눈 밝은 납자라면 청원 선사에게 다시 물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말해보십시오. 어디에서 물어야 되겠습니까?


여릉미가금다소 廬陵米價今多少오

월원시대결시소 月圓時大缺時小로다

갱유강변독성인 更有江邊獨醒人하여

개안주몽도천효 開眼做夢到天曉로다


여릉의 쌀값이 얼마나 되는가?

보름에는 달이 크고 그믐에는 적다네.

또 강변에 혼자 깬 사람 있어

눈을 뜨고 새벽까지 꿈을 꾸고 있다네.


석두(石頭 : 700 ~ 790)선사는 영남(嶺南)의 광동(廣東) 고요현(高要縣)사람이다. 속성은 진(陳)씨이며, 법명은 희천(希遷)이다. 두 선사는 원래 6조 혜능(慧能)선사의 문하에서 사미 시절을 보냈다. 혜능에게 법을 이어받지 못하고 혜능이 세상을 떠나며 청원에게 의탁하라고 했다. 이때 선사의 나이는 겨우 14세였다. 개원(開元)16년(728)에 구족계를 받은 후 청원행사(靑原行思)의 법을 잇고 마침내 일대의 선사가 되었다.


6조 혜능 대사가 입적할 때 석두가 물었다.

"스승님께서 입적하신 뒤에는 누구를 의지해야 합니까?"

"청원을 찾아가거라."

그 후 혜능 대사가 입적하자 바로 청원산(靑原山) 정거사(靜居寺)로 청원선사를 찾아갔다.


청원선사가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조계(曺溪 - 혜능이 주석하던 곳)에서 왔습니다."


청원 선사가 등을 긁는 기구인 소양자(搔痒子)를 들면서 물었다.

"거기에도 이런 것이 있던가?"

"거기뿐 아니라 서천(西天)에도 없습니다."

"그대는 서천에 가본 적이 있는가?"

"갔었다면 있는 것입니다."

"틀렸으니 다시 말하라."

"화상께서도 반쯤은 말씀하십시오. 어째서 저 더러만 말하라고 하십니까?"


석두의 이 말에 청원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조계(曺溪)에 있었다는데 무엇을 얻어 가지고 왔는가?"


석두가 즉시 대답했다.

"조계에 가기 전에도 잃은 것이 업습니다."

"그럼 뭣하러 조계에 갔었는가?"

"제가 조계에 가지 않았더라면 어찌 잃은 것이 없은 줄 알겠습니까?"


그리고는 도리어 청원선사에게 물었다.

"스님께서는 일찌기 조계에 게실 때에 큰 스님을 아셨습니까?"

이 말에 청원 선사가 되받아 물었다.

"그대는 지금 나를 아는가?"

"압니다."

"알기는 무엇을 알아?"


석두가 청원선사에게 물었다.

"스님께서는 영남에서 나오신 뒤, 여기에 얼마나 머물러 계셨습니까?"

"나도 모른다. 그대는 언제 조계를 떠났는가?"

"저는 조계에서 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대가 온 곳을 안다."


이때 석두가 한마디 쏘았다.

"스님께선 어른이신데 경솔한 말씀 마십시오."


청원 선사는 석두가 예사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자신의 문하에 머물게 하고 후일 석두에게 법을 이어주었다.


어느날 한 스님이 석두 선사에게 와서 물었다.

"어떤 것을 해탈이라고 합니까?"

"누가 너를 속박했더냐"

"어떤 것이 정토(淨土)입니까?"

"누가 너를 더럽혔더냐?"

"어떤 것이 열반입니까?"

"누가 너에게 생사를 주었더냐?"


태전(太顚)스님이 석두선사에게 말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있다고 하는 것이나 없다고 하는 것이나 다 틀려먹었다.'고 하니 스님께서 이 틀린 것을 제거해 주십시오."


이때 석두 선사가 말했다.

"한 물건도 없는데 제거한다는 것은 무엇을 제거한다는 말인가? 목구멍과 입을 통하지 말고 속히 말해보라."


태전은 대답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문 안에 들어왔느니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본래의 모습입니까?"

석두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어째서 나한테 묻는가?"

"스님께 묻지 않으면 어찌 얻겠씁니까?

"언제 잃었기에 얻겠다는 것인가?"


어떤 스님이 석두 선사를 찾아왔다.

선사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강서(江西)에서 옵니다."

"강서라면 마조(馬祖)선사를 보았는가?"

"보았습니다."


선사는 곁에 있는 큰 말뚝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조가 어찌 저 말뚝과 같겠는가?"

이 느닷없는 말에 그 스님은 무슨 뜻인지 몰라 눈만 끔뻑거리고 있다가 떠나갔다.


그 스님이 마조 선사에게 가서 앞의 이아기를 하며 그 뜻을 풀어주기를 청하자, 마조선사가 물었다.

"그대가 본 말뚝은 얼마나 크던가?"

"몹시 컸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힘이 장사구나."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대가 남악(南嶽)에서 큰 말뚝 하나 지고 예까지 왔으니 어찌 장사가 아니겠는가?"


어느 날 석두 선사가 약산(藥山)스님에게 물었다.

"너는 거기서 무엇하느냐?"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가만히 앉아 있느냐?"

"가만히 앉아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무엇을 하는 것이 됩니다."

"너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하니, 하지 않는 그것은 무엇인가?"

"일체의 성인들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