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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종 법문 교실 > 사복불언(蛇福不言 - 말 안하는 사복)

시치 2019. 9. 11. 08:54

정토종 법문 교실 > 사복불언(蛇福不言 - 말 안하는 사복)

사복불언(蛇福不言 - 말 안하는 사복)   

작성자 온법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본문
사복불언(蛇福不言 - 말 안하는 사복)

서라벌 만선북리(万善北里)란 마을에 사는 한 과부가 남편도 없이 아들을 낳았다. 남 부끄러움 때문인지 과부는 마을 사람들과 별로 사귀는 일 없이 그저 혼자 열심히 일하며 아기를 키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들은 나이가 열두 살이나 되었는데도 설 줄도 모르고, 말할 줄도 모르고, 그저 누워만 있었다.

이 사실을 아는 마을 사람들은 모이면 쑥덕공론으로 과부집 이야기를 하였다. 그 중에서도 화제는 열두 살이 되어도 말 못한다는 일과 일어설 줄도 모르니 바보고 병신이라는 이야기였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가 십여 년 자랐어도 누워만 있다는 뜻으로 사동(蛇童,뱀아이) 또는 사복(蛇卜)이라고 하였으니 모두 일어설 줄 모르는 뱀 귀신을 타고 났다는 뜻으로 불러진 이름이다.

원효스님이 고선사에 계실 때에 사복의 어머니가 죽었다. 어머니가 죽으니 이때까지 누워만 있던 사복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복은 비틀비틀 걸어서 덕동(德洞 현재 경주에 있다)에 있는 고선사로 갔다. 원효스님은 문 밖에 나와 반갑게 그를 맞았으나 그는 반가운 기색도 없이 인사에 답례도 안하고, 난생 처음으로 더듬더듬 말했다. "전생에 그대와 나의 경(經)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죽었으니 우리 함께 장사 지내주는 것이 어떻겠나?" 하고 말했다. 원효스님은 "그렇게 하지." 하고 사복을 따라 초상집에 갔다. 사복은 원효에게 우선 포살(布薩 불교의식의 하나로 출가한 이에게 스님들이 보름마다 모여서 戒經을 들려주고 죄를 참회시켜 선을 기르고 악을 없애는 일)부터 시켜주라 하였다. 불교에서는 한달 중에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가져야 하는 날이 엿새가 있다. 8, 14, 15, 23, 29, 30일인데 이 날은 귀신들이 득세하는 날이므로 사람을 잘 해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날에는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부처님이 정해 주신 여덟가지 계율을 지켜야 화를 입지 않는다. 부처님이 정해 주신 여덟가지 계율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해설하는 것을 포살이라 한다.

원효는 시체 앞에 분향하고 단정히 앉자 "태어나지 말라. 죽는 것이 고통이니라! 죽지도 말라. 나는 것이 또한 고통이니라!" 하고 계(戒)를 설(說)했다. 그러자 사복은 원효를 보고 "그건 말이 너무 길다." 하고 짧게 줄여 줄 것을 청했다. 원효는 다시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고통이니라." 했다. 사복은 그제서야 만족하여 "이제 됐으니 출상하자."하며 상여를 메고 집을 떠났다. 마을을 지나고, 산 구비를 돌아 활리산(活里山) 동쪽 기슭에 이르렀을 때 원효는 "이 쯤이 좋지 않을까. 지혜있는 호랑이는 지혜 숲 속에 묻어 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하며 사복의 의견을 묻자, 사복도 머리를 끄덕이며 찬성하였다.

상여를 풀무더기 앞에 내려 놓고, 그 앞에 꿇어 앉아 합창하고 노래를 읊었다.

"그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사라상수 아래서 열반하셨는데
오늘도 그와 같은 이가 있어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에 들어가려 하옵니다."

하고 게송을 마치자 사복은 풀 무더기를 뽑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풀뿌리가 빠진 흙구멍으로 내려다보니 그 속에는 아주 아름다운 세상이 열려 있었다. 웅장한 산에는 기묘한 바위들이 솟아 있고, 계곡으로 맑은 시내가 흐르고, 시내는 가끔 폭포를 이루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풍치 좋은 바위를 배경으로 여러 곳에 전각(殿閣)이 있는데 모두 난간을 돌리고, 칠보로 장엄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아마도 이 세상 같지는 않았다. 사복이가 어머니 시체를 업고, 그 속으로 들어가니 땅은 합쳐지고, 남은 것은 메고 갔던 상여뿐이었다.

원효는 상여를 불에 태워 버리고, 혼자서 고선사 쪽으로 발을 옮겼다. 원효와 사복은 전생에 한 절에서 같이 공부하던 중이었는데 경전을 실은 수레를 암소에게 끌리어 여러 절로 운반하였다. 그 업보로 사복은 암소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은 경전을 끌고 다니던 암소를 극락세계에 보내어 다시는 인간 세상에 태어나 고생시키지 않게 하기 위하여 원효는 나는 것도 죽는 것도 괴롭다 하였던 것이다.

후세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금강산의 동남쪽에 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도장사라 했다. 해마다 3월 14일이 되면 점찰회(占察會-점찰경에 의한 법회)를 여는 것을 항규(恒規)로 삼았다. 사복이 세사에 영검을 나타낸 것은 오직 이것뿐인데, 세간에서는 황당한 얘기를 덧붙였으니 가소로운 일이다.

기리어 읊는다.

잠잠히 자는 용이 다 등한할까,
임종에 부른 한 곡 간단하기도 해라.
고통스러운 생사는 원래 고통이 아니 어니,
연화장(蓮花藏) 세계 넓게 보이네.

호랑이는 무상(無常)을 뜻하는 것이니 지혜있는 호랑이란 이미 무상을 깨달은 사복의 어머니란 뜻이고, 지혜의 숲은 연화장세계 즉 극락세계를 말하는 것이니 이미 인간세상의 무상을 깨달은 사복의 어머니이니까 극락세계에 보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니 사복이도 따라 가라는 뜻이다.

참고문헌 : 삼국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