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스크랩] 깊은 수심 / 김중일

시치 2019. 2. 13. 00:45

깊은 수심

 

   김중일

 

 

 

거울 속이 바람으로 빈틈없이 가득 차자 머리카락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당신의 머리카락이 수평선 너머로 흘러간다.

너울지며 나부끼는 머리카락 속은 시커멓게 깊다.

누군가가 검은 머리카락 속에 손을 쑥 집어넣어 커다란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아채며 내게 손짓한다.

이리 와서 이 물고기 좀 봐라, 네 키보다 더 크다.

 

물의 깊이.

당신의 깊은 마음 속으로

괜찮다며 내리는 비.

 

당신의 머리카락 속으로, 나는 눈코입을 막고 뛰어든다.

당신의 깊은 수심 속으로 한없이 빠져든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

더 이상 숨을 참을 수 없는 순간, 누군가가 내 목덜미를 잡아채며 당신에게 손짓한다.

이리 와서 이 물고기 좀 봐라, 네 키보다 더 크다!

 

수심 깊은 당신의 얼굴로 가득 찬 거울 속에 손을 뻗어

오늘도 누군가는 물고기를 잡아 올린다.

 

매일 깊은 밤에 나는 당신의 깊은 수심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그렇게 매일 물고기처럼 빠져 죽는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는 당신의 걱정.

당신은 매일 얼음장처럼 찬 거울 속에 손을 넣어 씻는다.

 

 

              ⸺계간포지션2018년 겨울호

------------

김중일 / 1977년 서울 출생. 2002동아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국경꽃집』『아무튼 씨 미안해요』『내가 살아갈 사람』『가슴에서 사슴까지.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메모 :

'必死 筆寫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풀리다/이병률  (0) 2019.03.20
법성암/공광규  (0) 2019.02.17
[스크랩] 빵이라는 말 / 주영중  (0) 2019.02.13
[스크랩] 납작한 파동 (외 1편)/ 신철규  (0) 2019.02.13
[스크랩] 푸른 늑대 / 송찬호  (0) 2019.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