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수심
김중일
거울 속이 바람으로 빈틈없이 가득 차자 머리카락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당신의 머리카락이 수평선 너머로 흘러간다.
너울지며 나부끼는 머리카락 속은 시커멓게 깊다.
누군가가 검은 머리카락 속에 손을 쑥 집어넣어 커다란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아채며 내게 손짓한다.
이리 와서 이 물고기 좀 봐라, 네 키보다 더 크다.
물의 깊이.
당신의 깊은 마음 속으로
괜찮다며 내리는 비.
당신의 머리카락 속으로, 나는 눈코입을 막고 뛰어든다.
당신의 깊은 수심 속으로 한없이 빠져든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
더 이상 숨을 참을 수 없는 순간, 누군가가 내 목덜미를 잡아채며 당신에게 손짓한다.
이리 와서 이 물고기 좀 봐라, 네 키보다 더 크다!
수심 깊은 당신의 얼굴로 가득 찬 거울 속에 손을 뻗어
오늘도 누군가는 물고기를 잡아 올린다.
매일 깊은 밤에 나는 당신의 깊은 수심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그렇게 매일 물고기처럼 빠져 죽는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는 당신의 걱정.
당신은 매일 얼음장처럼 찬 거울 속에 손을 넣어 씻는다.
⸺계간《포지션》201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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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일 / 1977년 서울 출생. 2002년 〈동아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국경꽃집』『아무튼 씨 미안해요』『내가 살아갈 사람』『가슴에서 사슴까지』.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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