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신라문학대전 시조 당선작
소녀상을 그리다 /최 예 환
호골산* 정상에서 만난 때 이른 진달래야
얇은 볕에 피었다가 넋까지 얼었구나
꽃 필 날 아직도 먼데 홀로 봄을 꿈꾸었나
열 서넛은 되었을까… 떨리며 톺던 동공
세태에 발가벗겨 파르르 깨문 입술
툭 하고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질까 애달프다
몰아치는 삭풍이 내 볼살 에는데
저리 여린 꽃잎은 잔설을 견뎌낼까
한살이 산다는 것은 홀로서는 아득한 길
* 호골산: 경북 봉화에 있는 야트막한 산
❒ 심사평
안정된 율격 운영과 치열한 역사의식 빛나
신라문학대상은 어느 장르로도 등단절차를 밟지 않는 진정한 신인을 뽑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공모전이다. 이런 기준으로 인해 올해도 최종심에 오른 응모자 중 일부는 이미 다른 장르로 등단을 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심사대상에서 아쉽게 제외되었다.
시조는 3장6구의 정형 율격에 밀도 높은 시상을 압축해 담아야 되기에 좋은 시조 창작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활달한 율격 구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말이 지닌 리듬적 특징과 매력을 이해해야 하며, 감동을 주는 작품을 빚기 위해서는 밀도 높은 서정을 압축과 절제미로 우려내야 한다.
등단 문인의 작품을 제외한 뒤 전체적으로 수준이 고른 응모작을 보내온 최예환 님의 「소녀상을 그리다」를 대상작으로 뽑았다. “호골산 정상에서 만난 때 이른 진달래”를 통해 일제에 끌려간 어린 소녀 위안부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다. 진달래의 붉은 이미지는 위안부의 아픔을 상징하면서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까지도 껴안는다. 함께 보내온 「설수雪水」, 「증언」 등의 시조도 신인으로서 앞으로의 활동에 믿음을 주었다.
등단으로 인정되는 만큼 이제 곁눈 팔지 말고 더욱 치열하게 좋은 시조 창작에 정진해주기를 기대한다. 시조는 가장 전통적인 그릇에 가장 현대적인 소재를 담는 장르다. 다음 년도에는 더욱 신선한 소재로 더욱 많은 응모자들의 참여가 있기를 기대해본다.
심사위원 : 정해송, 권갑하(글)
❒ 당선소감 : 시조 부문 최예환 당선자
깨달음
눈은 선한 전령사이고
나는 세상의 중심이다
서설과 함께 찾아온
신라 문학 후보 통보
오늘은
더 소복이 내려
날 만나주는
아침 눈雪
어제는 서설이 내려 왠지 설레더니 신라문학 대상 후보 5명 중 하나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것만으로도 나 스스로 대견하고 감사했는데 어제보다 더 도타운 눈이 하얗게 내린 오늘, 당선이라는 기쁜 소식이 왔다. 이미 하늘은 날빛으로 개어 맑은데 내 머리 속에는 아직도 흰 눈이 펄펄 축복처럼 쏟아졌다. 눈발 사이로 지나온 몇 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오로지 의학의 길로만 걸어왔다. 문학의 문 밖에 있던 나를 문학의 길로 이끌어주고 졸작에도 잘 썼다며 아낌없는 칭찬과 응원을 해 주신 선생님들이 먼저 생각났다.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가 보다. 몇 차례 낙방과 그로 인한 좌절도 있었지만 그 경험들이 한 걸음 더 정진할 수 있는 밑거름이었다.
“Never Give-up!”이라는 처칠의 모교 강연을 부흥강사님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말씀은 바로 나를 위한 것임을 가슴에 심어두고 꿈을 이룰 때 까지 포기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것이 내 인내의 힘이었고 인고의 시간을 건너 마침내 작은 고지에 올라서게 하는 동살이 되었다.
까치발로 기다리던 당선소식을 4번째 도전에야 듣고 나니 넘치는 기쁨 뒤에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다가온다. 이제 더 펜을 예리하게 갈아야 하겠다. 그저 좋아만 해서 달려왔는데 체계적이고 단단해져야겠구나 하는 기분 좋은 부담감이다.
부르고 싶은 이름이 너무 많다. 열정으로 이끌어주신 박영교 선생님, 김범선 선생님, 김점순 선생님. 처음 문예대학을 소개해주신 하만욱 회장님, 앞선 걸음으로 귀감이 되어주신 김경미 선생님, 목요일 밤을 불 밝히며 등 닿던 영주문예대학 문우 여러분, 묵묵히 뒤에서 기도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동문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의 자랑인 아버지 어머니, 날 믿어주고 자랑스러워하는 아내와 현지, 규상, 주은, 모강 오남매와 처가 식구들, 진심어린 응원이 지금 이 순간 너무 고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이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부족한 제 시조를 눈여겨 봐 주신 정해송, 권갑하 심사위원님께 고개 숙여 감사합니다. 더 분발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증진하겠습니다. 본 공모를 주최해 주신 신라문학대상 운영위원회에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최 예 환
최예환 프로필
경북 선산 출생, 봉화군 거주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졸업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박사 과정 졸업
영주문예대학 7기 수료
현) 봉화제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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