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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상-나를 파괴하라! 장미여-김왕노 시인

시치 2017. 12. 26. 01:03

제11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은시상

      나를 파괴하라! 장미여-김왕노 시인






    올해로 11회째인 웹진『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상 수상자로 김왕노 시인이 선정되었다. 2018년도 올해의 좋은 시 500선에 오른 시인들의 추천에 의해 최종 본선에 오른 10편을 놓고 지난 18일에 웹진 시인굉장 우원호 발행인과 김신용 주간과 김백겸 주간이 심사를 거쳐 선정했다.

   유난히도 올해에는 어느 시인의 시를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없을만큼 윈로와 중진, 신예의 작품들을 굳이 비견하는 일이 의미가 없었으며 에선과 본선에 오른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 어느 해보다도 모두 작품성이 뛰어나다 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번 심사위원장인 김신용 시인광장 편집주간과 심사원원 일원으로 본인과 함께 참여했던 김백겸 전임 편집주간은 이구동성으로 그 점에 동의했다.

 

    다수의 의사가 반영되는 다수결의 방식이 반드시 옳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의사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시인광장엔선 지난 2008년 1회부터 좋은 시 100선 선정과 올해의좋은시상 수상자 선정 과정에서 가장 공정하고 합리적인 이 민주주의 방식을 채택하여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고수해 나갈 방침으로 있다.

 

   “나를 파괴하라! 장미여”라는 시는, 시인 특유의 유장한 호흡과 남성적인 발화(發話)로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획득하고 있다. 요즘 보기 드문 이 남성적인 긴 호흡과 언어의 리듬은 아마 시인의 타고 난 기질에서 연유되는 것으로 보인다. ‘장미’라고 호명된 시적 대상은 나는 ‘사랑’으로 파악했다. 그 시적 주체가 시인 특유의 은유와 직설적 화법을 통해 숨 가쁘게 변화하고 충돌하고 화해하고 싸우며 때로는 요설에 가까운 시행도 만들어 내지만, 그 호흡과 긴 리듬은 마치 폭포처럼 흘러내려 읽는 이을 압도한다.

 

    또 그 화법은, 장미로 명명된 사랑, 혹은 사랑의 상처에 자신이 불타고 재가 되어 해체되어도 좋다는, 일종의 피학성까지 드러내며 사랑의 숭고함을 노래하고 있다.

 

    요즘은 보기 드문 이 남성적인 목소리가 어쩌면 이 시와 마지막으로 경합을 했던 “석류”를 제치고 당선작이 된 이유인 듯하다.

 

    수상자인 김왕노 시인은 내 시력 25 년에 첫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아침이면 광교호수 5 키로 를 도는데 돌면서 가끔 상이라는 것은 받을수록 의미가 있고 좋다고는 하지만 문학상이란 내 시의 객관적 평가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치열한 심사과정과 객관적 평가로 정평 나 있어 더욱 권위가 있는 올해의 좋은 시 수상자가 되다니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젊은 시인과 아니 모든 시인이 받고 싶어 하는 올해의 좋은 시상을 받게 되어 내 생에 큰 행운이 찾아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그는 경북 포항(옛 영일군 동해면 일월동)에서 출생하였으며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꿈의 체인점〉으로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황금을 만드는 임금과 새를 만드는 시인』, 『슬픔도 진화한다』,『말달리자 아버지(문광부 지정도서)』,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중독-박인환문학상 수상집』, 『그리운 파란만장(세종도서 선정)』,『사진속의 바다-해양문학상 수상집』,『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게릴라』 등이 있고. 2003 년 제 8 회 한국해양문학대상, 2006 년 제 7 회 박인환 문학상, 2008 년 제 3 회 지리산 문학상, 2016년 제 2회 디카시 작품상 2016년 수원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201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문학창작금 등 5 회 수혜했고 현재 시인축구단 글발 단장이며 계간 『시와 경계』 주간이다.

 

    역대 수상자로 웹진『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賞 제1회 수상자 김선우시인(2008년), 제2회 수상자 박형준 시인(2009년), 제3회 수상자 이장욱 시인(2010년), 제4회 수상자 김명인 시인과 심보선 시인 공동 수상(2011년), 제5회 수상자 유지소 시인(2012년), 제6회 수상자 김신용 시인(2013년), 제7회 수상자 김이듬 시인(2014년), 제8회 수상자 김행숙 시인(2015년), 제9회 수상자 김중일 시인(2016년), 제10회 수상자 송종규 시인(2017년)이 수상한 바가 있다.

 

    한편 시상식은 2018년 1월 6일 토요일 오후 5시에 대학로의 에술가의 집에서 가질 예정이다.





나를 파괴하라! 장미여 / 김왕노
  

 
  장미가 된 너를 창을 열고 불이 나서 구해 달라 요청하는 것처럼 불러도
  대답도 그렇다고 나타나지 않는다. 장미여 오라. 장미의 침실로 나를 이끌
  장미로, 장미는 따져보면 나와 격이 맞지 않는 꽃인가
  내게 맞지 않는 꽃말을 가진 꽃 짐승인가. 꽃구름인가. 해슬피 우는 장미소인가.
  오지 않는 장미여! 나의 먼발치나 종착역 연안부두 대합실에 멍하니 섰는가.
  장미는 장미가 없는 장미빌라처럼 장미모텔처럼 섰는가. 밤에만 핀 장미인가.
  장미가 아니라 아우라지 목매 부르는 장마처럼 서성이는가.
 
  장미가 없는 밤 장미 기억이나 슬며시 찾아온다.
  장미가 없는 내 눈동자가 장미 없는 어둠에 젖는다.
  장미를 모르는 쥐똥나무 까만 열매도 젖는다.
  장미는 죽음 다음에 오는 것처럼 후발주자라도 와야 한다.
  죽음과 죽음 사이에 갈피처럼 피어나야 한다.
  장미는 부드러우나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강렬한 은유
  하얀 장미와 노란 장미 붉은 장미 푸른 장미로 조직될 장미의 나날
 
  장미는 기어코 온다. 팜므파탈로 장미의 입술로 장미의 음부로
  장미의 습관으로 장미의 걸음걸이로 장미의 오기로 이슬 머금은
  장미의 유혹으로 장미의 애액으로 장미의 고갱이로 장미의 절단으로 와야 한다.
  전에도 장미를 끝없이 불렀지만 지금 정신없이 바빠도 장미를 불러야 하는 것
  장미가 오지 않는 날은 혁명이 오려는 골목처럼 피의 바람이 분다.
  우산을 뒤집듯이 그리움을 뒤집으며 장미는 와야 한다.
 
  장미는 와야 한다. 뛰는 심장 쿵쾅거리는 소리로 배냇저고리 있는 곳
  탯줄을 묻는 고향으로 돌아오듯 역사의 저 먼 곳, 징용 가서 남양 군도서 죽어
  백골로 돌아오듯 눈물로 이슬로 젖은 장미는 와야 한다.
  오늘 장미의 궁전이 무너져도 다시 장미의 왕조가 들어선다 해도
  장미 전쟁이 발발한다 해도 장미는 와야 한다. 바람에 등 떠밀리듯이 그렇게라도
  장미는 몇 시 방향에서 올까. 장미 꽃잎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핏방울 떨어뜨리면서 수난 없이 아름다운 장미는 없다면서 사슴이 먹고
  되새김질 하는 장미 냄새로 진동하며 와야 한다.
  세상은 언제부터 장미와 나와의 관계에 질투했는지 재를 뿌리려는지
  오지 않는 장미는 와야 한다. 가임의 장미가 와 나와 태몽 깊은
  장미의 마을로 가야 한다. 장미의 솟대가 붉게 우는 마을로 가야 한다.
  장미의 초례청으로 붉은 뺨의 장미가 와야 한다.
 
  장미는 안녕하면서 내게 와 안녕한 나의 속을 썩여야 한다.
  장미는 짓밟혀도 장미로 늘 안녕하고 청정의 장미, 꿈의 지느러미가
  파닥이는 장미, 부활의 장미, 죽음직전에 살아난 장미
  내 숨통을 가시로 찌르는 장미, 장미전쟁으로 오래 나를 젖은 구두로 전선에 세우는
  장미, 장미는 재가 될 수 없고 장미는 내 순결한 목덜미를 물어뜯는
  장미란 짐승, 내 청춘을 사그리 태워버리는 불가사리, 장미는 붕새, 극락조, 가르빈가
  하여튼 장미는 와야 한다. 해일처럼 와야 한다.
  붉은 장미의 문장을 앞세우고 지축을 울리는 장미의 군대, 장미의 천군만마로 와야 한다.
 
  하여튼 장미는 오지 않고 철길을 따라 오지 않고
  넌출거리는 파초 잎을 스치며 오지 않고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를 읽어도 오지 않고 몇 옥타브 높게 노래를 불러도
  내 속을 거대한 우주선 같은 슬픔이 지나가도 오지 않고 장미는 오지 않고
  반어법으로 가라 제발 가라해도 오지 않고 사랑의 우림으로 데려갈 장마 같은
  장미는 오지 않고 적의 저격수처럼 장미의 언덕에 장미로 위장했다가
  나를 사살하는 장미는 오지 않고 죽어도 좋은데 장미는 와야 하는데
  난 장미의 기둥서방, 장미의 파락호. 장미의 레즈비언이 되어도 좋은데
  장미는 오지 않아 장미야! 오라. 더러운 나를 걷어치우면서
 
  장미가 오지 않으므로 강물을 이루는 눈물, 가랑잎처럼 마르는 혀
  내게 치명적인 장미는 와야 한다. 나를 독살할 장미는 와야 한다.
  옥합을 깨뜨리듯 장미의 약속을 깨뜨리고 일탈의 장미로 와야 한다.
  스치기만 해도 제초제를 뒤집어 쓴 듯 내 영혼이 벌겋게 타며 오그라들도록
  장미는 와야 한다. 장미가 장미로 나를 후려치면서 장미 가시로
  피 벌건 몸이 되어도 좋으니 장미는 와야 한다. 장미는 그냥 장미로만
  장미의 독을 나도 모르게 내 술잔에 밥에다 타도 좋으니
  나에게 폭력적이어도 좋고 비파괴로 나를 죽여도 좋으니 야비해도 좋으니
  장미의 공화국을 위해 장미의 뿌리를 적시는 한 줌 거름이 되도 좋으니
 
  장미는 와야 한다. 내 꿈을 섬멸하는 총을 난사하며 수류탄도 던지며
  그리움의 뇌관을 터뜨려 나를 바위처럼 산산 조각내며 정을 정수리에
  땅땅 박으며 장미의 처분에 맡긴 나날이라, 단 한번 장미의 키스로
  죽더라도 장미의 가격으로 피 걸레가 되더라도 넝마가 되더라도
  장미와 암수한몸으로 사랑의 융합으로 가지 않아도 설마 장미가 이 밤에
  하면서 문을 열지 않아도 장미의 빗장을 열고 발기한 꿈을 끄덕거리지 않아도
  장미는 와야 한다. 와서는 원수인 듯 나를 가해해도 좋다. 내 등에 새파란 장미의
  낫을 박아도 좋다. 장미의 이름으로 하늘에 닿는 거대한 장미의 가지에 매달아
  처형해도 좋다. 장미야! 와서는 나를 파괴하라. 파괴되지 않는 나는 장미의
  사랑이 될 수 없다. 온전한 나는 장미를 사랑할 수 없다. 장미의 밥이 되게 하라.
  장미가 신앙이 될 수 없다. 네가 오고 내가 철저히 부서져야 장미의 나날이다.
  장미의 분노를 죽창으로 깎아 꼬나들고 몰염치한 내 배를 푹 찔러다오,
 
  장미여! 오라 슬픈 내 아랫도리를 한 입 물고 빨지 않더라도 사내 혼 다 빼놓고
  내숭떨며 속을 다 들어먹는 장미여도 좋고 색골이어도 좋고 밤꽃 향기 휘날리면
  끓어오르는 속으로 사내를 그리워하는 무수리나 궁녀가 아니어도 이름난 기생처럼 와
  고관대작 홀려 정사를 온통 흔들어 놓지 않더라도 작두를 타듯 아슬아슬
  출신 성분도 뭐도 없는 장미로 교태와 암내를 질질 풍기는 장미로 승무를 추는
  버선발 고운 고깔을 쓴 장미로 외간 사내와 눈 맞아 야반도주한 바람났더라도
  쥐뿔도 뭐도 없는 장미로 장미여! 와서는 백정처럼 내 뼈에서 능숙하게 살을 발라내는
  발골을 하여도 좋고 얌전하다가 술만 취하면 내게 행패를 부르는 연애에 실패한 오동나무
  집 분이처럼 와도 좋고, 불구로 절뚝이면서 와도 나의 장미니
 
  나는 왜 장미에 꽂혔는가. 장미에 빙의된 듯 왜 장미의 말로 노래하고
  장미를 사기 위 영혼까지 팔고 싶은 것일까. 난 왜 발정 난 암캐 같은
  장미를 기다리며 질 나쁜 남자로 살려는 것일까. 내 더러운 피는 장미를 오늘도 원하고
  장미에 중독된 듯 장미에만 미쳐 간다. 장미는 나의 약이다. 끊을 수 없는 약이다.
  끊을 수 없는 담배다. 장미는 끊을 수 없는 술이다. 버릴 수 없는 야사다.
  난 장미의 볼모이다. 장미의 하수인이다. 장미의 끄나풀이다. 장미를 얻고 내 육체와
  정신이 썩어도 좋은 장미의 맹신자다. 장미의 자궁 속에가 동면하고 싶은
  미친 짐승이다. 장미의 홍동가로 떠돌고 싶은 쓸쓸한 남자다.
  장미의 매독으로 살을 뼈를 도려내도 좋고 장미로 생이 망가져도 좋다.
 
   어느 먼 도시에서 장미의 축제가 열리는 밤이다. 장미에 취해 순결을 잃는
  밤이다. 하나 장미는 오라. 축제고 뭐고 뒷전에 두고 징집된 듯 뿌리를 놓쳐버린
  장미로, 근본도 없는 장미로 시골장터에 팔려나온 강아지처럼 순진무구한 눈으로
  장미의 뜨거운 입김으로 김이 서리는 차창을 보며 장미의 족보를 따지지 말며
  장미로 그냥 장미로 평범한 장미로 에이즈처럼 암처럼 나에게 전이되어 나를 파괴하라.
  내 죽음의 불야성을 장미로 밝히게 하라. 장미의 우황이 든 소 한 마리로
  밤새 장미를 앓아도 된다. 장미로 눈이 충혈 되어 미친 듯 날뛰어도 좋다.
  하여튼 장미는 오라. 애벌레 같은 나를 밟는 청동의 발걸음으로 와도 좋다.
  난 너무나 장미가 절실해, 장미의 붉은 클리토리스를 죽음으로 만지작거리고 싶어
  장미를 몬도가네 식으로 먹어치우는 식육의 밤을 즐기고도 싶어. 인간 같지 않는
  죄가 발각되어 치는 돌에 맞아죽어도 좋아. 난 장미에 미친 장미의 광인
  눈이 장미 같이 불타올라. 장미에 결박당해 장미의 소굴로 던져져도 좋아
  지금 나는 장미의 금단증세로 침을 질질 흘려. 오줌을 질질 싸. 초점 흐린 눈은
  장미를 찾아 허공을 걷고 있어. 장미여! 와서 나를 파괴하라. 나를 어둠의 계곡으로
  데려가라. 장미여! 장미의 가시 돋친 문장으로 내 똥구멍을 틀어막아다오. 내 남근을
  사포처럼 문질러다오. 장미의 문장으로 식도를 온통 막아 장미의 꿈이 역류하지
  못하도록 해다오. 나는 장미의 테러대상. 나의 처신을 장미에게 맡기니 그리고
  장미여 때가 되었다. 삼족을 멸하듯 나를 멸하라. 파괴하라. 나를 치워라.
  장미여! 나는 내 삶의 주도권마저 장미에게 맡기려는 자. 장미 족이 되려는 자.
  장미여, 서둘러 서둘러서 득달같이 달려와 나를 파괴하라. 짓밟아라. 나를 봉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