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얼음 도마/이정록

시치 2017. 10. 26. 22:26


얼음 도마/이정록

 

겨울이 되면, 어른들은  
얼어버린 냇물 위에서 돼지를 잡았다. 
우리 동네에는  
바다까지 이어지는 도마가 있었다. 
얼음 도마는 피를 마시지 않았다.  
얼어붙은 피 거품이 썰매에 으깨어졌다. 
버들강아지는 자꾸 뭐라고 쓰고 싶어서 
흔들흔들 핏물을 찍어 올렸다. 
얼음 도마 밑에는 물고기들이 겨울을 나고 있었다. 
(바닷가에서 노을을 볼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핏물은 녹아 내려 서녘 하늘이 되었는데  
비명은 다들 어디로 갔나?) 
얼음 도마 위에 누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돼지가 있었다. 
일생 비명만을 단련시켜온 목숨이 있었다. 
세상에,  
산꼭대기에서 바다까지 이어지는 도마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