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打麥行 (보리타작)/丁若鏞

시치 2017. 2. 16. 22:39



                     打麥行 (보리타작)/丁若鏞

 

新蒭濁酒如湩白(신추탁주여동백) 새로 걸른 막걸리는 젖빛처럼 뿌옇고

大碗麥飯高一尺(대완맥반고일척) 큰 사발에 보리밥, 높기가 한 자로세

飯罷取耞登場立(반파취가등장립) 밥 먹자 도리깨 잡고 마당엘 나서니

雙肩漆澤飜日赤(쌍견칠택번일적) 검게 탄 두 어깨 햇볓 받아 번쩍이네


呼耶作聲擧趾齋(호야작성거지재) 옹헤야 소리 내며 발 맞추어 두드리니

須臾麥穗都狼藉(수유맥수도랑자) 삽시간에 보리 낟알 온 마당 가득차내

        雜歌互答聲轉高(잡가호답성전고) 주고받는 노랫가락 점점 높아 지는데

但見屋角紛飛麥(단견옥각분비맥) 보이느니 지붕위에 보리티끌뿐이로다


觀其氣色樂莫樂(관기기색락막락) 그 기색 살펴보니 즐겁기가 짝이 없네

了不以心爲形役(료불이심위형역) 마음이 몸의 노예가 되지는 않았도다

        樂園樂郊不遠有(락원락교불원유) 낙원 낙교가 먼 곳에 있는것이 아니라

何苦去作風塵客(하고거작풍진객)무엇하러 벼슬길에 헤매고 있을까보냐


茶山 丁若鏞(1762~1836)은 南人으로서 不利한 位置를 극복하고 벼슬길에 올라 正祖의 寵愛를 받았으며,文體反正에 同助하여 稗官雜書 小說類를 排擊했던 立場을 後에도 變함 없이 간직 하였다.그러나 純祖가 卽位하자 바로 몰려나

18年동안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에 現實을 다시금 認識하였으며,當時 학문의 모든 領域에서 批判的인 論理를 構體化하는 課業의 하나로 文學하는 姿勢도 철저하게 가다듬었다.經學에 힘써 上古時代 儒學 本來의 精神으로 돌아가자면서 批判의 據點을 마련 하였고, 牧民心書 같은데서는 現實의 病弊와 是正 方案을 仔細하게 다루었으며, 監司論에서는 監司야말로 큰 盜敵이라 했고,田論을

지어 土地는 共同으로 所有하고 耕作해야 農民이 살 수 있다고 주장 하였다.

詩를 文學 創作의 가장 重要한 領域으로 生覺한 點에서는 傳統的인 文學觀을 이어갔다.

詩를 짓되 까다로운 規範을 버리고 느낌이 떠오르는 대로 바로 나타내야 한다고도 주장 하였으며,中國 詩歌가  아닌 朝鮮詩를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 하였으며, 그 동안 實學派의 詩가 漢詩에서 벗어나 우리 말 노래에 接近하고자 勞力해온 點은 높히 評價해야  할 것이다.


 

餘村  http://blog.daum.net/39kkki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