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시

〈2016년 제12회 한국시협 젊은시인상〉-달걀 (외 2편) /고 영

시치 2016. 3. 31. 23:39

〈2016년 제12회 한국시협 젊은시인상〉

 

달걀 (외 2편) /고 영

 

 

 

조금 더 착한 새가 되기 위해서 스스로 창을 닫았다.

어둠을 뒤집어 쓴 채 생애라는 낯선 말을 되새김질하며 살았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집은 조금씩 좁아졌다.

 

강해지기 위해 뭉쳐져야 했다.

물속에 가라앉은 태양이 다시 떠오를 때까지 있는 힘껏 외로움을 참아야 했다.

간혹 누군가 창을 두드릴 때마다 등이 가려웠지만.

 

房門을 연다고 다 訪問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위로가 되지 못하는 머리가 아팠다.

 

똑바로 누워 다리를 뻗었다.

사방이 열려 있었으나 나갈 마음은 없었다. 조금 더 착한 새가 되기 위해서

나는 아직 더 잠겨 있어야 했다.

 

 

 

저녁이 다 오기 전에

 

 

 

아무도 찾지 않는 강가를 걸었다

바람을 업고 포도나무 반대편으로 몇 걸음 떼었더니

당신이 젖은 손을 흔들던 쪽에서

꽁지깃이 유난히 붉은,

푸른 머리를 가진 새가 날아올랐다

 

새들은 모두 푸른 영혼을 가졌을 거라고

그래서 하늘이 푸른 거라고

일렁이는 손으로 강물 위에 새를 그렸더니

금세 물결이 데려갔다

 

내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나는 포도나무에 필 꽃들을 기다리고

영영 돌아오지 않을 소식을

영영 기다릴 수밖에 없는 폐허의 심정으로

천천히 저녁을 걸었다

 

포도넝쿨은

왜 한사코 서쪽으로만 뻗어 가는지

포도밭에서 건너온 노을이

흐르는 강물을 다 건너가기 전에

 

포도나무도 모르는

포도나무의 배후가 되고 싶었다

당신도 모르는

당신의 배후가 되고 싶었다

 

 

 

후회라는 그 길고 슬픈 말

 

 

 

아무 거리낌 없이

강물에 내려앉는 눈발을 맹목적이라고 허공에 쓴다

 

아픈 기억들을 불어내어 물 위에 놓아주는 강가

무늬도 없는 저녁이 가슴을 친다

하류로 떠밀려 간 새들의 귀환을 기다리기엔

저 맹목적인 눈발들이 너무 가엾고

내겐 불러야 할 간절한 이름들이

너무 많다

 

강물에 내려앉은 눈이 다 녹기 전에

아픈 시선 위에 아픈 시선이 쌓이기 전에

바람이 다 불기 전에

상처가 상처를 낳기 전에

 

너라는 말

자기라는 말

누구누구의 엄마라는 말

당신이라는 말

미안하다는 말

 

모두 돌려보내자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자

 

속수무책 쏟아지는 저 눈이 녹아

누군가의 눈물이 되기 전에

다시 하늘로 돌려보내자

 

후회라는 그 길고 슬픈 말을 배우기 전에

 

 

       —한국시협 젊은시인상 수상 시집『딸꾹질의 사이학』(201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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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 / 1966년 경기도 안양 출생, 부산에서 성장. 2003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산복도로에 쪽배가 떴다』『너라는 벼락을 맞았다』. 현재 《시인동네》발행인 겸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