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전봉건문학상》수상작- 에코의 초상 외 2편/김행숙
에코의 초상/김행숙
입술들의 물결, 어떤 입술은 높고 어떤 입술은 낮아서 안개 속의 도시 같고, 어떤 가슴은 크고 어떤 가슴은 작아서 멍하니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 같고, 끝 모를 장례행렬, 어떤 눈동자는 진흙처럼 어둡고 어떤 눈동자는 촛불처럼 붉어서 노을에 젖은
회색 구름의 띠 같고, 어떤 손짓은 멀리 떠나보내느라 흔들리고 어떤 손짓은 어서 돌아오라고 흔들려서 검은 새떼들이 저물
녘 허공에 펼치는 어지러운 군무 같고, 어떤 얼굴은 처음 보는 것 같고 어떤 얼굴은 꿈에서 보는 것 같고 어떤 얼굴은 영원히
보게 될 것 같아서 너의 마지막 얼굴 같고, 아, 하고 입을 벌리면 아, 하고 입을 벌리는 것 같아서 살아 있는 얼굴 같고,
인간의 시간/김행숙
우리를 밟으면 사랑에 빠지리
물결처럼
우리는 깊고
부서지기 쉬운
시간은 언제나 한가운데처럼
빛/김행숙
악몽이란 생생한 법입니다
몇몇 악몽들이 암시했고 별빛이 비추고 있었습니다
저녁노을의 빛과 새벽노을의 빛 사이에 별이 못처럼 꽝꽝 박히고 새파란 초승달이 돋아난 가장 어려운 각도로 서 있습니다
휘청하는 순간처럼 달빛이 검은 천막을 찢고 있었습니다
별이 못이라면 길이를 잴 수 없이 긴 못, 누구의 가슴에도 깊이를 알 수 없이 깊은 못입니다
오늘 밤하늘은 밤바다처럼 빛을 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꿈이 아니라면 이제부터 진짜 악몽이라는 듯이 동쪽에서 번지는 새벽노을이 얼룩을 일그러뜨리며 뒤척입니다, 어디에 닿아도
빛을 비추며 아이를 찾아야 했습니다
서로서로 빛을 비추며 죽은 아이를 찾아야 했습니다
어디서 날이 밝아온다고 아무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김행숙시인】
1970년 서울 출생.
고려대 국어교육과 및 같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99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사춘기』『이별의 능력』『타인의 의미』. 현재 강남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
'수상한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년 제48회 한국시인협회상〉-빠따고니아 (외 2편) / 최문자 (0) | 2016.03.31 |
---|---|
[제 17회 수주문학상 당선작]-쓸쓸함의 비결/ 박형권 (0) | 2016.01.21 |
〈2015년 제15회 고산문학상>-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외 2편)/안상학 (0) | 2015.11.09 |
〈2015년 제1회 전봉건문학상>-아담의 농담 (외 2편)/김행숙 (0) | 2015.11.09 |
제10회(2015년) 지리산문학상-희생 외 4편/류인서 (0) | 2015.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