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문학상 수상작과 후보작들

[스크랩] 2015 미당문학상 후보작 (3)/ 정끝별, 최정례, 함기석

시치 2015. 8. 13. 01:03

 

 

   정끝별

 

 

 

내가 맨발이었을 때 사람들은 내 부르튼 발아래 쐐기풀을 깔아놓고 손가락 휘슬을 불며 외쳤다

 

춤을 춰, 노랠 불러, 네 긴 밤을 보여줘!

 

봄엔 너도 피었고 나도 피었으나 서로에게 열리지 않았다 나는 너의 춤과 노래가 되지 못했고 너는 투덜대며 술과 공을 찾아 떠났다

 

가을에도 우리는 쌓이지 않았다

 

가까이 온 발자국은 너무 크거나 무거웠으며 멀리 간 발자국은 흐리거나 금세 흩어졌다

 

헤이, 춤을 춰, 네 발을 보여줘! 여름내 우는 발은 지린 눈물냄새를 피웠고 겨우내 우는 발은 빨갛게 얼음이 박혔다

 

중력에 맞서면서부터 눈물을 흘렸으리라

 

두 발이 춤 아닌 날갯짓을 했을 때 보았을까 발아래가 인력의 나락이었고 애초에 두 발이 없었다는 걸

 

너를 탓할 수 없다 따로 울지 않으려 늘 우는 발을 탓할 수도 없다 대개가 착시였고 업으로서의 대가였다

 

바닥의 총합이 눈물의 총량이었다

 

 

                  —《유심》2014년 9월호

 

 

  개천은 용의 홈 타운

 

     최정례

 

 

 

  용은 날개가 없지만 난다. 개천은 용의 홈 타운이고, 개천이 용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날개도 없이 날게 하는 힘은 개천에 있다. 개천은 뿌리치고 가버린 용이 섭섭하다? 사무치게 그립다? 에이, 개천은 아무 생각이 없어, 개천은 그냥 그 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을 뿐이야.

 

  갑자기 벌컥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용은 벌컥 화를 낼 자격이 있다는 듯 입에서 불을 뿜는다. 역린을 건드리지 마, 이런 말도 있다. 그러나 범상한 우리 같은 자들이야 용의 어디쯤에 거꾸로 난 비늘이 박혀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있나.

 

  신촌에 있는 장례식장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햇빛 너무 강렬해 싫다. 버스 한 대 놓치고, 그 다음 버스 안 온다, 안 오네, 안 오네…… 세상이 날 홀대해도 용서하고 공평무사한 맘으로 세상사 대하자,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문득 제 말에 울컥, 자기연민? 세상이 언제 너를 홀대했니? 그냥 네 길을 가, 세상은 원래 공정하지도 무사하지도 않아, 뭔가를 바라지 마, 개떡에 개떡을 얹어주더라도 개떡은 원래 개떡끼리 끈적여야 하니까, 넘겨버려, 그래? 그것 때문이야? 다행히 선글라스가 울컥을 가려준다 히히.

 

  참새, 쥐, 모기, 벼룩, 이런 것들은 4대 해악이라고 다 없애야 한다고 그들은 믿었단다. 그래서 참새를 몽땅 잡아들이기로 했다지? 수억 마리의 참새를 잡아 좋아하고 잔치했더니, 다음 해 온 세상의 해충들이 창궐하여 다시 사해는 해충의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 않니, 그냥 그 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어, 영원히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린다 해도 넌, 벌컥 화를 낼 자격은 없어. 그래도 개천은 용의 홈 타운, 그건 그래도 괜찮은 꿈 아니니?

 

 

                  —《현대시학》2014년 11월호

 

 

  로즈가 로즈로 살던 집 로즈

 

    함기석

 

 

  로즈는 장미가 아니어서, 지붕이 불탄다

  울타리가 타고

  울타리라는 울타리로부터 불길이 솟고

  잠든 로즈가 탄다

 

  잠이 타고 살이 타고

  심장의 고동도 목소리도 맥박도 다 타 재가 되고

  입술은 날개가 되어

  가시 끝에 말라붙어 소리 없이

  탄다

 

  이름이 타고

  귀가 타고 눈이 타고 손발이 타고

  이제 아무도 너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뜻을 새기지 않는다

 

  마른 육체에 남은 시간이 타고

  모든 기억들이 타고, 로즈의 뿌리는 죽은 자의 발이 되어

  땅 속에 축축이 묻힌다

 

  로즈가 로즈로 살던 집 로즈, 기둥이 타고

  숨 막히던 숨이 타고

  뒤틀린 꽃잎들은 한마디 비명도 외침도 통곡도 없이

  대기의 침묵 속으로 날아간다

 

  이제 가까스로 나는 검은 자유에 근접한다

  검의 새의 몸에 피처럼 스민다

  아무도 본 적 없는

  부리도 꼬리도 발도 날개도 없이 유랑하는 새

 

                   

                —《문학. 선》2014년 가을호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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