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미당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 본심에 오른 후보작을 릴레이로 소개한다. 8월 한 달간 시인·소설가 20명의 작품을 10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미당·황순원문학상은 시인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와 소설가 황순원(1915∼2000)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중앙일보가 2001년 제정한 상이다. 최근 1년간 선보인 최고의 시 한 편과 단편소설 한 편씩을 뽑게 된다. 본심 후보작을 ‘올해의 명작 열전’으로 부를 수 있는 이유다. 최종 결과는 중앙일보 창간기념일인 9월 22일 무렵 발표된다.
악다구니처럼 싸운 자리
뭉근한 시선이 들어서다
시 - 김이듬 ‘데드볼’ 외 19편
문단 안팎에서 시인 김이듬(45)을 논할 때 주로 썼던 단어는 다음과 같다. ‘퇴폐적’ ‘난해한’ ‘과감한’…. 그의 시는 대중은커녕 평단도 선뜻 호의를 표하기 힘든 ‘별종’이었다.
그는 경남 진주에서 나고 부산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배우거나 스승에게 가르침을 얻어 시를 쓰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만난 김이듬(45) 시인은 “친절한 시가 아니다. 처음엔 아무도 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난 중심부에 있기보다 밀쳐놓은 사물, 버려진 존재에 눈이 간다”며 “어디를 가도 중간에 다정히 모인 사람들보다 끼지도 못한 당황스러운 사람에게 관심이 간다”고 했다. 지독한 변방의 감수성이다.
하지만 최근엔 김이듬에 대한 평가가 사뭇 달라졌다. 2012년에 이어 다시 미당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요즘들어 물이 올랐다”(조재룡 고려대 불문과 교수)는 평처럼 심사위원들은 그의 변화를 눈여겨보는 듯했다. 장석남 시인은 “근래 시에서 존재의 뿌리를 파고드는 방식이 예사롭지 않다. 독특한 개성이 자리를 잡았다”고 평했다.
김이듬은 “시가 시인을 변화시킨다”고 했다. 그는 “예전의 난 잘 울고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말리는 쪽”이라며 “시를 쓰다 보면, 관찰하다 보면 사랑하지 못할 대상이 없더라”고 했다.
김이듬은 서른 즈음에 쓴 시를 묶어 2005년 첫 시집 『별 모양의 얼룩』을 냈다. ‘막힌 주둥이의 하수구로 오줌과 정액이 역류하는 대로 다 삼켜’(‘욕조들’ 중에서)처럼 섬뜩한 상상력이 펄펄 날뛴다.
그리고 10여년. 한바탕 악다구니가 물러난 자리에 뭉근한 시선이 들어섰다. ‘벚꽃나무 아래 사과 파는 노파/죽은 듯 쪼그려 앉아 엉덩이가 바닥에 닿을락 말락/내려놓으면 될 것을/허망한 간극’(‘아우라보다 아오리’ 중에서) 같은 문장에서다.
지난해 여름에 발표된 탓에 지난해 가을 발표작부터 포함하는 미당문학상 후보작에 아쉽게 들진 못했지만, ‘시골 창녀’는 지난해 문단에서 화제가 됐다. 올 1월엔 웹진 ‘시인광장’이 뽑은 ‘올해의 좋은 시’에 선정됐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시적 화자의 마음의 풍경을 연을 바꾸어가며 리듬이 달라지는 ‘드라마’ 속에서 극적으로 펼쳐내고 있다”고 평했다.
그는 “요즘은 추악한 것을 볼 때 어떻게 추악해졌는지 그 연유를 먼저 생각한다”며 “그러다보니 시쓰기가 일종의 수행이나 참선 같다”고 했다. 그러고는 “시와 노는 존재로 있고 싶은데. 늙었나 봐, 큰일이야. 모든 게 용서가 돼”라며 웃었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이듬=1969년 경남 진주 출생. 2001년 계간 『포에지』로 등단.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히스테리아』(출간예정).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 등.

김이듬 시인은 시작(詩作)을 천지창조에 비유했다. “창조주의 감동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악다구니처럼 싸운 자리
뭉근한 시선이 들어서다
시 - 김이듬 ‘데드볼’ 외 19편
문단 안팎에서 시인 김이듬(45)을 논할 때 주로 썼던 단어는 다음과 같다. ‘퇴폐적’ ‘난해한’ ‘과감한’…. 그의 시는 대중은커녕 평단도 선뜻 호의를 표하기 힘든 ‘별종’이었다.
그는 경남 진주에서 나고 부산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배우거나 스승에게 가르침을 얻어 시를 쓰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만난 김이듬(45) 시인은 “친절한 시가 아니다. 처음엔 아무도 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난 중심부에 있기보다 밀쳐놓은 사물, 버려진 존재에 눈이 간다”며 “어디를 가도 중간에 다정히 모인 사람들보다 끼지도 못한 당황스러운 사람에게 관심이 간다”고 했다. 지독한 변방의 감수성이다.
하지만 최근엔 김이듬에 대한 평가가 사뭇 달라졌다. 2012년에 이어 다시 미당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요즘들어 물이 올랐다”(조재룡 고려대 불문과 교수)는 평처럼 심사위원들은 그의 변화를 눈여겨보는 듯했다. 장석남 시인은 “근래 시에서 존재의 뿌리를 파고드는 방식이 예사롭지 않다. 독특한 개성이 자리를 잡았다”고 평했다.

김이듬은 서른 즈음에 쓴 시를 묶어 2005년 첫 시집 『별 모양의 얼룩』을 냈다. ‘막힌 주둥이의 하수구로 오줌과 정액이 역류하는 대로 다 삼켜’(‘욕조들’ 중에서)처럼 섬뜩한 상상력이 펄펄 날뛴다.
그리고 10여년. 한바탕 악다구니가 물러난 자리에 뭉근한 시선이 들어섰다. ‘벚꽃나무 아래 사과 파는 노파/죽은 듯 쪼그려 앉아 엉덩이가 바닥에 닿을락 말락/내려놓으면 될 것을/허망한 간극’(‘아우라보다 아오리’ 중에서) 같은 문장에서다.
지난해 여름에 발표된 탓에 지난해 가을 발표작부터 포함하는 미당문학상 후보작에 아쉽게 들진 못했지만, ‘시골 창녀’는 지난해 문단에서 화제가 됐다. 올 1월엔 웹진 ‘시인광장’이 뽑은 ‘올해의 좋은 시’에 선정됐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시적 화자의 마음의 풍경을 연을 바꾸어가며 리듬이 달라지는 ‘드라마’ 속에서 극적으로 펼쳐내고 있다”고 평했다.
그는 “요즘은 추악한 것을 볼 때 어떻게 추악해졌는지 그 연유를 먼저 생각한다”며 “그러다보니 시쓰기가 일종의 수행이나 참선 같다”고 했다. 그러고는 “시와 노는 존재로 있고 싶은데. 늙었나 봐, 큰일이야. 모든 게 용서가 돼”라며 웃었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이듬=1969년 경남 진주 출생. 2001년 계간 『포에지』로 등단.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히스테리아』(출간예정).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