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와 소설가 황순원(1915~2000)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미당·황순원문학상이 올해로 13년째를 맞았습니다. 올해 본심에 오른 후보작을 지상중계합니다. 지난 1년 동안 발표된 최고 수준의 시와 단편소설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작가 이름의 가나다 순서에 따라 모두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최종 수상자(작)은 본지 창간일(9월 22일) 전후에 발표됩니다.
추억 속에서 슬픔이 겹쳤다 흩어지네
시 - 강성은 ‘환상의 빛’ 외 16편

시인 강성은은 “빛을 좋아한다. 강렬한 빛이 나에게 오는 순간은 말을 잃을 만큼 좋다. ‘환상의 빛’이란 제목의 시는 앞으로도 계속 쓰게 될 듯하다”고 말했다.
강성은(40)은 초현실적 상상력으로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시인이란 평을 들었다. 그의 첫 번째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의 영향이다. 하지만 ‘환상의 빛’ 연작 등 2013 미당문학상 본심에 오른 그의 작품에는 서정이 짙게 배어 나온다. 최근 나온 시집 『단지 조금 이상한』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예심위원인 문학평론가 강계숙은 “부조리한 상황을 보여주면 아이러니가 앞서거나 기지와 위트가 결합하게 마련인데, 강성은의 시에서는 부조리 자체가 아름다움이 된다. 한국시에서 찾기 어려운 ‘서정적 부조리’의 세계가 보인다”고 평했다.

그의 시에 깃든 서정의 밑바탕에 깊은 슬픔이 흐른다는 지적도 있었다. ‘버려야 할 물건이 많다/집 앞은 이미 버려진 물건들로 가득하다//죽은 사람의 물건을 버리고 나면 보낼 수 있다/죽지 않았으면 죽었다고 생각하면 된다/나를 내다버리고 오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할 것만 같다’(‘기일(忌日)’ 중)처럼.
“슬픔의 정체가 뭔지 잘 모르는 채로 가고 있지만 살면서 축적된 것이 겹쳤다가 흩어졌다 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해가 지는 걸 보며 슬프고 그런 아이. 어른이 됐다고 해서 내 본질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거구요.”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며 잠과 꿈의 시간을 빌려 그가 펼쳐내는 세계에는 과거의 시간과 지나간 추억이 몽글몽글 떠오르며 형상화된다.
“과거의 시간을 꿈으로 불러오는 건 아네요. 그냥 과거의 시간이 쭉 함께 있는 것 같아요. 나이를 먹고 현실은 달라졌지만 나는 그 시간 위에 여전히 계속 서 있는 거죠. 어린 시절의 슬픔도 그 안에 있고. 과거를 재연하는 게 아니라 그대로 살아내는 거에요.”
과거가 여전히 현재이고 현재도 현재인 부조리. 그 어긋남과 어색한 조합은 잠과 꿈 속에서 시의 옷을 입고 자연스럽고 자유롭다.
“잠을 많이 자고 꿈을 많이 꿔요. 제겐 꿈과 잠이 중요한 일상인 거죠. 꿈을 현실의 반대라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다른 세계에요. 그 속에서 내가 등장인물인지 관찰자인지 모르겠지만, 남의 꿈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써요.”
그래서 그의 시는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 낯설다. 이 시처럼.
‘아직 이름이 없고 증상도 없는/어떤 생각에 빠져 있을 땐 멈춰 있다가/정신을 차리고 보면 다시 생동하는 세계와 같은//단지 조금 이상한 병처럼/단지 조금 이상한 잠처럼//마음속에서 발생하는 계절처럼/슬픔도 없이 사라지는//위에서 아래로 읽는 시절을 지나/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읽는 시절을 지나/이제는 어느 쪽으로 읽어도 무관해진/노학자의 안경알처럼 맑아진//일요일의 낮잠처럼/단지 조금 고요한/단지 조금 이상한’(‘단지 조금 이상한’)
글=하현옥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강성은=1973년 경북 의성 출생. 2005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당선되며 등단.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단지 조금 이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