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남진우

시치 2013. 7. 2. 11:52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남진우




그 시절 밤이면 죽은 여인이 찾아와
내게 안아달라 말했네

두 팔을 벌려 껴안으면 죽은 여인은 눈 크게 뜨고
이제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네

자거라, 푹 자거라 낮은 음정으로 부르면
죽은 여인은 내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잠이 들었네

먼 옛날 문밖 하늘엔 큰 별들이 부딪쳐 우는 소리 자욱하고
벌판엔 쓰러져 죽은 전사들 사이 붉은 꽃들이 활짝 피어나던 시절

밤이면 밤마다 죽은 여인이 다가와
내 튼튼한 심자을 먹고 싶다, 조금만 다오 말했네

두 팔에 안긴 채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내 심장을 먹어가며
죽은 여인은 밤새도록 눈물을 흘렸네

새벽이면 멀리 떠나는 그녀를 배웅하며
나 다시 돋아나는 심장의 아픔엔 진저리 치곤 했네

그 시절 밤마다 찾아온 죽은 여인은 이 밤도 내 집 창가를 어른거리며
나랑 같이 떠나자, 멀리 떠나자 노래 부른다네

허나 눈멀고 머리 허옇게 센 나는 창틀에 기대어
심장 똑딱거리는 소리만 듣고 있네

똑딱거리다가
그마저 멈출 날 기다리고 있네




남진우
교수, 시인. 1960년 전라북도 전주 출생.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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