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햇빛 속에 호랑이 / 최정례

시치 2013. 5. 29. 23:42

햇빛 속에 호랑이 / 최정례



나는 지금 두 손 들고 서있는 거라

뜨거운 폭탄을 안고 있는 거라


부동자세로 두 눈 부릅뜨고 노려보고 있는 거라 빠빳한 수염털 사이로 노랑 이그르한 빨강 아니 초록의

호랑이 눈깔을


햇빛은 광광 내리퍼붓고

아스팔트 너무나 고요한 비명 속에서


노려보고 있었던 거라, 증조할머니 비탈밭에서 호랑이를 만나, 결국 집안을 일으킨 건 여자들인 거라,

머리가 지글거리고 돌밭이 지글거리고, 호랑이 눈깔 타들어가다 못해 슬몃 뒤돌아 가버렸던 거라, 그래

전재산이었던 엇송아지를 지켰고, 할머니 눈물 돌밭에 굴러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그러다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식의 호랑이를 만난 것이라


신호등을 아무리 노려봐도 꽉 막혀서


――다리 한 짝 떼어놓으시지

――팔도 한 짝 떼어놓으시지


이젠 없다 없다 없다는데도

나는 증조할머니가 아니라 해도


――머리통 염통 콩팥 다 내놓으시지

――내장도 마저 꺼내 놓으시지


저 햇빛 사나와 햇빛 속에 우글우글

아이구 저 호랑이 새끼들



- 시집『햇빛 속에 호랑이』(세계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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