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시

<2013,지훈문학상>흐린 날 미사일 (외 2편)/김영승

시치 2013. 6. 1. 12:02

<2013,지훈문학상>

 

흐린 날 미사일 (외 2편)/김영승

 

 

 

나는 이제

느릿느릿 걷고 힘이 세다

 

비 온 뒤

부드러운 폐곡선 보도블록에 떨어진 등꽃이

나를 올려다보게 한다 나는

등나무 페르골라 아래

벤치에 앉아 있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등꽃이 上下로

발을 쳤고

그 揮帳에 가리워

나는

비로소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미사일 날아갔던 봉재산엔

보리밭은 없어졌고

애기똥풀 群落地를 지나

 

롤러스케이트장 공원

계단 밑 老人들 아지트는

멀리서 보면 慶會樓 같은데

내가 그 앞에 있다

 

명자꽃과 등꽃과

가로등 雙 수은등은

그 향기를

바닥에 깐다

 

등꽃은

바닥에서부터 지붕까지

垂直으로 이어져

꼿꼿한 것이다

 

虛空의 등나무 덩굴이

반달을 휘감는다

 

急한 일?

그런 게 어딨냐

 

 

 

죽을 때까지

 

 

 

나는 이미

倒立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발길로 툭툭 치면

옆으로도 그러고

있다

 

아직

추워서 그런

것이다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다 기다리겠다 공부하겠다

하지 말고

그것도 좋지만

죽을 때까지는 일단 죽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밖에 생각은 다

雜念인데

 

생각은

잘 때나 하는 것

무슨 심사숙고며

天思 만려인가

 

생각은 잘 때나

죽을 때

잠깐 하면 된다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나

 

다들 뭔가를

궁리窮理하는 거겠지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死刑 직전도

다 그런 표정과 자세며

性交中에도 그렇다.

 

 

 

모를 權利

 

 

 

블랙박스

그런 것을 다 기록하다니

神의 領域이다

CCTV

神의 領域이다

虛像을 만든 罪

죽으리라

지나간 시간을

복원하는 죄

역시 죽으리라

 

그 시공을

재생하는 자

 

죽으리라

 

모를 權利도 있고

모를 義務도 있다

 

지운 것은 지운 것이며

숨긴 것은 숨긴 것이다

 

그리고

사라진 것은 사라진 것이다

 

학교가

교회가

沙金과 金剛石의 광산인가? 건물이

거리가 골목이

 

버스 안이

전철 안이

 

가령,

 

옛날

어떤 여자는 자기 자녀한테

매일 도시락에 편지를 넣어 도시락을

싸주고는

나중에 도시락 편지라는 책을 내기도 했는데

우리는 그 편지를

모를 권리와

 

의무가 있다

江 건너 은행나무와

은행나무의

바람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은행나무만 알고

 

연어는 알을 낳으러

母川을 거슬러 올라와서는

바다와 江과 계곡의 이야기를

지운다

 

땅속의 감자를

너구리굴 속의 너구리 새끼를

촬영하고

 

火星의 표면을

촬영한다

 

胎兒를 촬영하고

精子의 이동을

촬영한다

 

그냥 運柩車처럼

보는 게 낫다 책도

레일 近處 그림자도

 

빨판상어처럼

가마우지처럼

 

열심히

맛있는 것 잡아다가

바친다 그리고

 

돈을 벌고

作曲도 한다 그리고

 

煙氣는 풍요롭게

피어오른다

 

 

 

                      —시집『흐린 날 미사일』(201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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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 1958년 인천 출생. 제물포고등학교, 성균관대 철학과 졸업. 1986년 《세계의 문학》가을호로 등단. 시집 『반성』『車에 실려가는 車』『취객의 꿈』『아름다운 폐인』『몸 하나의 사랑』『권태』『무소유보다 찬란한 극빈』『화창』『흐린 날 미사일』. 에세이집『오늘 하루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