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시간을 그리다 외/강현숙
로 보이는 겨울 나뭇가지에 매달린 얼굴, 하늘로 덮여 추억도 없이, 단발마의 비명도 없이 자연건조 중이다 은 이른 새벽 초승달로 걸리고 수만 킬로 떨어진 그곳으로부터 시간의 비늘들이 차갑게 툭 떨어진다 르륵 떨어지는 작은 그릇들, 살의는 금이 가고 유물로 남고 비명은 녹이 슬고 대나무 숲 속으로 바람이 되어 불어가고 걷는다 당신은 무한히 늘려진 시간의 원통 안과 밖으로 떠도는 구름 위를 걸어간다 명한가를 묻기 위해 링 위로 오르는 여자,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가 시작된다 햇살 위에 다시 햇살이 실리고 모자를 쓰고 양산을 든 여자, 잔잔한 강물 수면 위를 반짝이며 내려가다 되돌아오는 눈동자를 지닌 너
작품이 있다.
사라지고 있다 엉성한 울타리, 무너진 성곽 주위로 달은 차오르다 얼른 잊혀진다 아침이면 가족들이 태양의 부스러기를 담으러 떠날 것이다 잎들이 다 떨어져 내린 숲속에 아비가 벌거벗은 채 아랫도리를 떨며 서 있다 죽을 벗어버리고 뼈를 앙상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 아비의 이름으로 뼈대만 남아 떨며 서 있는 것이 두려운 것인지도 모른 다 무거운 몸을 지친 듯이 끌며 숲에서 오래 머물 궁리를 하고 있다 그가 내게 오늘 단풍으로 붉게 물든 숲을 보여주려 했 다 묻은 자들의 숲에 오래전부터 짐승들의 뼈들도 함께 묻혀 숲에서는 구름도 시간처럼 함부로 흐르지 않는다 아무도 이 의 미를 묻지 않고 말하지 않는 이곳에 몇 개의 부도들만 정연하게 숲을 지키고 있다
어항 속 금붕어가 타이탄아룸을 먹어 치운다 되돌아 나오다 길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가끔 하루가 사라지는 날이면 미로에 갇힌 미노타우로스**의 말을 흉내 내며 숨 바꼭질을 한다 흩어지고 생식기가 잘려나간 시간들이 짚단 속으로 스며든다 메마른 땅바닥을 핥은 적이 있던가, 아니 없던가, 눈 내리는 낯선 아침, 은빛 토끼는 언제나 벡터를 노렸지 냉혹한 자신의 모습을 더 오랫동안 고립되어 들여다보아야 되겠다 서, 한 번도 믿어 본 적 없는 사랑이 바람 부는 들판에 서서 깜빡깜빡 점멸 중이다 항 속 금붕어가 뻐끔뻐끔거린다
야생동물 보호구역 당당한 포즈의 마네킹을 짓누르고, 드러난 엄지발가락이 바깥 추위로 시리다 옷감들이 화려한 색들을 접은 채 빛바랜 조 화들을 무심히 쳐다본다 꽃대가 부러진 백합 한 송이, 찬란하던 시절이 꽃다발이 마르는 시간을 훌쩍 지나 조명 아래 바 스러질 듯 진열된다 햇빛 방향 따라 무성히 자란 알로에의 지치지 않은 푸른 빛깔이 가끔 여주인의 눈에 비친다 날 것 그대로, 꾸며도 숨겨지지 않는 그대로 생존의 시간을 견디다가 끔찍해서 눈감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녀는 지금 야 생동물보호구역인 황야를 천천히 걸어가는 중이다 과 경계가 보호가 되기도 하고 때론 구속이 되기도 하여 자신의 냄새로 경계를 지워버린 뒤 저 황야의 사냥터로 어슬렁거 리며 걸어간다 그녀는 끝까지 황야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겪어내는 것이다 때로 비참하고 서글프기도 하지만 초원을 향해 나아가는 맹수의 여유로움을 전하는 것이다 모두 괜찮다며 닳아가는 심지를 마른 얼굴 위로 드러내며 퍼석, 보이지 않는 웃음을 혼자 짓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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