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법/이규리
방과 후 날마다 비유법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이 계셨다*
비유법을 밥처럼 먹던 시절 있었다
비유는 하나로 여럿을 이해하는 일이야
노을이 철철 흘러 뜨거워서 닫아거는 저녁에
우리는 서쪽 창가에 앉아 흰 단어들을 널었다
나뭇가지에 서늘한 시간이 척척 걸리곤 했다
그 놀이에 탐닉하는 동안
놀이 끝에 서서히 슬픔이 배어나고 있었다 아파서
좋았다
그 찬란에 눈이 베이며 울며 또 견디며
아직 비유법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이 계실까
선생님들은 다 어디 갔을까
비유법을 모르는 추운 꽃밭, 죽어가는 나무, 무서운 옥상들
뭐 이런 시절이 다 있어,
이건 비유가 아냐 방과 후가 아냐
제 생이 통째 비유인 줄 모르고,
저기 혼자 지는 붉은 해
눈 먼 상처들이야 자해한 손목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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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석시인의 초등학교시절 회고담 중에서 취함
—《문학과 의식》201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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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리 / 1955년 경북 문경 출생.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앤디 워홀의 생각』『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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