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의 제목 / 오정순
책 한 권에는 몇 그루의 나무가 산다. 바람과 새소리와 들꽃, 천둥 번개와 추위의 문양이 숨결처럼 퍼져 있는 활엽 그늘의 주름은 넓고 깊다. 책을 펼치면 한 장 한 장마다 터져 나오는 메아리 나무가 자랐던 숲이 활자로 촘촘히 박혀 있다. 굳은살 박힌 글자들이 문신 같다. 베어질 때마다 천둥소리 같은 울음이 파고들어 침엽의 뾰족한 지침들이 푸르다.
누군가 침을 묻혀 책장을 넘기면 멀리서 씨앗의 이름을 기억해내는 까만 활자들.
상수리의 페이지에서 도토리가 굴러 떨어진다. 침엽이라는 말에서 북풍이 분다. 목책이 되었다가 흰 연기의 예각을 불러오는 모닥불이 들어 있기도 한 책 한 권. 나무는 단단한 표피를 꿈꾸며 긴 시간의 이야기를 채워간다. 다 쏟아 부은 창백한 얼굴이 가시처럼 날카롭다. 우듬지마다 팔랑거리는 책을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
숲, 각자 제목을 단 나무들이 빽빽이 꽂혀 있다. 어지러운 나이테의 문양을 걸어 누군가 한 그루의 나무를 대출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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