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영의 「사랑에 부쳐」감상 / 권정일
사랑에 부쳐
김나영
산도둑 같은 사내와 한 번 타오르지 못하고
손가락이 긴 사내와 한 번 뒤섞이지도 못하고
물불가리는 나이에 도착하고 말았습니다
모르는 척 나를 눈감아줬으면 싶던 계절이
맡겨놓은 돈 찾으러 오듯이 꼬박꼬박 찾아와
머리에 푸른 물만 잔뜩 들었습니다
이리 갸웃 저리 갸웃 머리만 쓰고 살다가
마음을 놓치고 사랑을 놓치고 나이를 놓치고
내 꾀에 내가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암만 생각해도 이번 생은 패(覇)를 잘못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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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수작』에서
▶김나영 / 1961년 경북 영천 출생. 1998년 《예술세계》로 등단. 시집 『왼손의 쓸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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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합니다. 이 일만 끝내면, 끝내면 하다가 정말 필요한 내 사랑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사는 일이 다 그렇다고 자신을 변명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합니다. 이 세상은 내게 딱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곧잘 잊고 삽니다. 때론 사랑이 자본 앞에서 굴복하고 마는 시간을 살기도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사랑 자체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늘 사랑을 비켜 갔습니다. 내 꾀에 내가 넘어가고 패를 잘못 쓴 시인처럼 내 잔꾀도 똑 같은 패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권정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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