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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 이윤학

시치 2011. 3. 4. 12:27

짝사랑 / 이윤학

 

 

  둥근 소나무 위에 꼽혀 있는 칼

   두툼한 도마에게도 입이 있었다.

   악을 쓰며 조용히 다물고 있는 입

   빈틈없는 입의 힘이 칼을 물고 있었다.

 

   생선의 배를 가르고

   창자를 꺼내고 오는 칼.

   목을 치고 몸을 토막내고

   꼬리를 치고,

   지느러미를 다듬고 오는 칼.

 

  그 순간마다 소나무 몸통은

  날이 상하지 않도록

  칼을 받아 주는 것이었다.

 

  토막 난 생선들에게

  접시나 쟁반 역할을 하는 도마.

  둥글게 파여 품이 되는 도마.

  칼에게 모든 걸 맞추려는 도마.

  나이테를 잘게 끊어 버리는 도마.

 

  일을 마친 생선가게 여자는

  세제를 풀어 도마 위를

  문질러 닦고 있었다.

 

  칼은 엎어놓은 도마 위에

  툭 튀어나온 배를 내놓고

  차갑고 뻣뻣하게 누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