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은 아름답다/김윤배
아우는 큰 몸뚱이를 수술대 위에 버리고
충혈된 눈을 부릅뜬 채 마취되어 있다
집도의가 가리키는 모니터에 아우의 내장이
속속들이 보인다 담낭이 제거된 자리가
검붉을 뿐 내장은 아름답다 연붉은 간덩이
사이로 흐르는 핏물은 불빛에 놀라 기포를 뱉으며 급히 몸을 숨긴다
집도의는 내시경을 움직여
내장 이곳저곳을 헤집는다
간 한 잎 뒤집으면 나타날 것 같던
만년 순경인 아우의 내심은 보이지 않는다
상사의 모멸과 질타의 말들도 피의자를 다루던
온갖 협박과 회유의 말들도 보이지 않고
서늘한 오기도 찾을 수 없다
내장은 아름다울 뿐 더러운 일상에
물들지 않았다 나는 내 가슴과 배를 쓰다듬는다
내장이 나의 손을 거부한다
담낭이 절개되고 돌들이 쏟아져나온다
강렬한 조명을 받아 돌들은 빛난다
그랬구나 내장 속에서 찾을 수 없었던
너의 내심 가슴에 맺혀
욕스러운 나날들 더욱 단단해지고
그렇게 견디어낸 아름다운 굴욕들
빛나는 돌이 되어 네 몸 속 환한
고통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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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 / 1944년 충북 청주 출생. 1986년 《세계의문학》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 『강 깊은 당신 편지』, 『굴욕은 아름답다』, 『따뜻한 말 속에 욕망이 숨어 있다』, 『부론에서 길을 잃다』, 『혹독한 기다림 위에 있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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