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허수경
극장을 나와 우리는 밥집으로 갔네
고개를 숙이고 메이는 목으로 밥을 넘겼네
밥집을 나와 우리는 걸었네
서점은 다 문을 닫았고 맥줏집은 사람들로 가득해서 들어갈 수 없었네
안녕, 이제 우리 헤어져
바람처럼 그렇게 없어지자
먼 곳에서 누군가가 북극곰을 도살하고 있는 것 같아.
차비 있어?
차비는 없었지
이별 있어?
이별만 있었지
나는 그 후로 우리 가운데 하나를 다시 만나지 못했네
사랑했던 순간들의 영화와 밥은 기억나는데
그 얼굴은 봄 무우순이 잊어버린 눈雪처럼
기억나지 않았네
얼음의 벽 속으로 들어와 기억이 집을 짓기 전에 얼른 지워버렸지
뒷모습이 기억나면 얼른 눈 위로 떨어지던 빛처럼 잠을 청했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당신이 만년 동안 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들여다보고 있었네
내가 만년 동안 당신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붙들고 있었네
먼 여행 도중에 죽을 수도 있을거야
나와 당신은 어린 꽃을 단 눈먼 동백처럼 중얼거렸네
노점에 나와 있던 강아지들이 낑낑거리는 세월이었네
폐지를 팔던 노인이 리어카를 끌고 지하도를 건너가고 있는 세월이었네
왜 그때 헤어졌지, 라고 우리는 만년 동안 물었던 것 같네
아직 실감나지 않는 이별이었으나
이별은 이미 만년 전이었어
그때마다 별을 생각했네
그때마다 아침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던
다리 밑에 사는 거지를 생각했네
수수께끼였어,
당신이라는 수수께끼, 그 살肉 밑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잊혀 진 대륙들은
회빛 산맥을 어린 안개처럼 안고 잠을 잤을까?
-「한국대표시 70인- 시, 사랑에 빠지다」(미디어 다음)에서
[시 읽기]
허수경을 기억한다. 1964년에 태어나서 1987년에 『실천문학』으로 등단하여 1988년에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를 펴낸 시인. 20대 초반에 중년 여인 같은 목소리를 낸 여자. ‘문디 같아 반푼이 같아서 기다림으로 너른 강에 불씨 재우는 남녘 가시나/ 주막이라도 차릴거나/ 승냥이와 싸우다 온 이녁들 살붙이보다 헌출한 이녁들/ 거두어나지고/ 밤꽃처럼 후두둑 피어나지고’(「진주 저물녘」). 이 시를 읽으며 진주남강 가에 앉아 막걸리 한 잔 하고 싶다. 경상도 사투리의 억양이 섞인 주모와 농지꺼리를 주고받고 싶다.
「진주낭군」이라는 민요가 있다. ‘울도 담도 없는 집에 시집 삼년을 살고 나니/ 시어머니 하시는 말씀 아가 아가 메느리아가/ 진주낭군을 볼라거든 진주 남강에 빨래를 가게/ 진주 남강에 빨래를 가니 물도나 좋고 돌도나 좋고……’ 이 노래는 남편의 박대에 신음하는, 가부장제 아래서의 서민여성의 고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진주남강은 논개가 왜장의 목을 안고 투신했던 촉석루와 의암이 있는 곳이다. 허수경은 그러한 전통을 타고 난 것 같다. 지금은 독일에 살고 있다지만, 현대문명 덕분에 언제든지 그녀의 시를 접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허수경의 시는 후일담처럼 읽힌다. ‘안녕, 이제 우리 헤어져/ 바람처럼 그렇게 없어지자’ 이런 구절에선 이야기의 줄거리가 생성된다. 한 때 사랑하던 남녀가 있었다. 그들의 세계가 전부인 줄 알았다. 영화도 보고 밥도 먹었다. 어떤 어려움으로 그들은 헤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먼 곳에서 누군가가 북극곰을 도살하고 있는 것 같아’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상한 것은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는 점이다. 「진주 저물녘」에 등장하는 ‘승냥이와 싸우다 온 이들’처럼 만큼이나 자연스럽다. 이 둘은 지구의 끝과 끝이라 할 간극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 처한 위험이 동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연결돼 있다. '나비효과'에 따르면 중국 북경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뉴욕에서 허리케인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한다. 작은 변화가 결과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각기 다른 삶을 살기 때문에 똑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세계는 비슷한 정치·경제·환경적 위기를 겪고 있다. 극지방의 얼음이 녹아 북극곰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일은 우리에게도 심각한 위협이다.
그래서 ‘왜 그때 헤어졌지, 라고 우리는 만년 동안 물었던 것 같네’ 라는 구절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존재들은 한 순간에 태어나서 사라지지 않는다. 돌고 돈다. 돌고 돌아서 어지럽다. 어지러움은 두려움과 동일한 감정을 불러온다. 그 두려움은 곧 무지(無知)에 대한 깨달음이다. 인간은 평생 ‘당신이라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을 풀었다면 그는 곧 진리를 통달한 사람이 될 것이다. 허수경은 멀리 떠나있지만 항상 진주남강에 있는 사람이다. 그는 오늘도 주막을 차리고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릴 것만 같다.
'좋은시 다시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거리의 불가지론/권혁웅 (0) | 2010.11.21 |
---|---|
왕궁의 불꽃놀이/김백겸 (0) | 2010.11.21 |
문학적인 선언문 /김이듬 (0) | 2010.11.21 |
지금은 自慰 중이라 통화할 수 없습니다/ 김이듬 (0) | 2010.11.21 |
물 속의 사막/ 기형도 (0) | 2010.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