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

[스크랩] 모과 - 민구. 손택수

시치 2010. 9. 30. 00:30

 

 

 

 

모과 / 민구 



  처음 달을 만진 손에서 단내가 지워지질 않습니다

  달에 중독된 새들은 모두 다 눈이 멀어 날개를 꼭 짜서 굴참나무 가지에 널어둡니다 가지와 가지가 엉킨 채 서로 발목 잡는 캄캄한 밤입니다 이 시간, 달이 차오를 때를 기점으로 순록들이, 너무나 많은 순록들이 나무에서 내려옵니다 강으로 유유히 걸어가서는 흐르는 물에 더러운 뿔을 씻습니다 바람은 계절 한가운데 못을 박고 밤마다 내리는 비를 처마 밑에 받아 적습니다 어서 저 짐승의 턱에 삽을 물려야 합니다

  저 강 어딘가에 고인 물이 다시 흐른다면 나는 쪼개진 달로 도약해서 흐르는 물결의 발을 걸 것입니다 달에 취한 새들이 코르셋을 벗고 신나게 목욕을 하나요? 볼품없는 두상을 드러내며 히죽히죽 웃는 무덤들을 보세요 죽은 사내가 봉분 밖으로 팔을 내미는지 풀포기들이 몸을 부비며 벗겨진 모자를 찾고 있습니다

  글라스에 차오른 달로 한 모금 목을 축입니다 순록들이 앞다퉈 나무 위로 기어오릅니다 굴참나무 가지에 널어둔 날개를 걸치고 새 한 마리가 우리 집 마당 모과나무에 앉았습니다

  마당 한가운데 모과나무에 모과는 없고
  달빛에 부식된 금귀고리만 주렁주렁 

 

 <시에> 200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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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 / 손택수

 

아파트 화단에 떨어져 있던 모과를 주워왔다

올 겨울엔 모과차를 마시리라,

잡화꿀에 절여 쿨룩이는 겨울을 다스려보리라

도마에 올려놓고 쩍 모과를 쪼개는데

잘 익은 속살 속에서

애벌레가 꾸물거리며 기어나온다

모과 속살처럼 노래진 애벌레가

단잠을 깨고 우는 아이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애벌레에게 모과는 인큐베이터 같은 것

눈 내리는 겨울밤

어미 대신 자장가를 불러줄 유모의 품과 같은 것

이미 쪼개버린 모과를 다시 붙여놓을 수도 없고,

이 쌀쌀한 철에 애벌레를 업둥이처럼 내다버릴 수도 없고

내가 언제부터 이깟 애벌레 한 마리를 두고 심란해 했던가

올 겨울 나는 기필코 모과차를 마시리라,

짐짓 무심하게 아내를 바라보는데

아직도 책장 어딘가에 애벌레처럼 웅크린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간직하고 있는,

놓쳐버린 아기의 태기를 놓지 못하고 있는 모과

속을 드러낸 거죽에 검은 주근깨가 숭숭하다

수술실에서 나올 때 흐느끼는 내 어깨를 말없이 안아주던 너

칼자국 지나간 몸 더 거칠어가는 줄 모르고

바깥으로만 바깥으로만 떠돌던 날들이 있었는데

날을 세운 불빛에 움찔거리는 애벌레처럼 허둥거리는 한때

빈속에 쟁인 울음이 아리디 아린 향을 타고 흘러나온다

 

 

출처 : 마산대학 시창작반
글쓴이 : 카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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