直指

[스크랩] 무비스님의 直指〈78〉■ 남양혜충 국사 ⑥ 시방국토가 모두 법신불

시치 2010. 6. 18. 16:03

시방국토가 모두 법신불

 

〈78〉남양혜충 국사 ⑥

 

忠國師 因僧問 敎中 但見有情作佛 不見無情受記 且賢劫千佛 孰 是無情佛耶 師云 如皇太子 未受位時 唯一身耳 受位之後 國土盡屬於王 寧有國土 別受位乎 今但有情 受記作佛之時 十方國土 悉是遮那佛身 那得更有無情受記耶

 

혜충 국사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교학 가운데는 다만 유정이 성불한다는 것은 보이지만 무정이 수기를 받는다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현겁천불 가운데 누가 무정불입니까?”

혜충 국사가 대답하였다.

“예컨대 황태자가 아직 왕위를 받기 전에는 오직 일신뿐이었으나 왕위를 받은 뒤에는 전 국토가 모두 왕에게 귀속이 된다. 어찌 국토가 따로 왕위를 받는 일이 있어서이겠는가? 지금 다만 유정이 수기를 받고 성불할 때에 시방의 국토가 모두 비로자나 법신불이 된다. 어찌 다시 무정들이 수기를 받는 일이 있어서이겠는가?”

 

불교의 진면목 이해하려면

비상한 견해 · 안목 갖춰야

해설 : 짧은 대화지만 불교의 높은 견해가 표현되어 있다. 불교인들의 상식으로는 성불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좀 더 크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유정들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통례다. 그래서 혜충 국사에게 질문한 그 스님의 생각은 지극히 타당하다. 그러나 불교의 궁극적 이치는 상식을 넘어서 있다. 격외(格外)의 일이다. 불교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차원이라면 석가세존이 굳이 부모와 처자를 버리고, 심지어 왕위까지 버리고 출가하여 피나는 고행을 하고 성도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진면목을 이해하는 데는 비상한 견해와 안목을 갖춰야 한다.

유정과 무정이 모두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는 내용을 혜충 국사가 비유를 들어 설명하신 것은 매우 명쾌하다.

불교에서는 일체가 오직 마음으로 되었다고 한다. 깨달은 사람의 마음에는 사람도 동물도 산천초목도 모두가 깨달은 사람의 영역이다. 모두가 부처님 세계며, 따라서 모두가 부처님이다. 깨닫지 못한 사람의 마음에는 보통 사람과 동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부처님까지도 생멸하고 변화하는 무상한 존재인 중생의 미혹한 세계다. 마치 기차를 타고 빨리 달릴 때는 건물도 움직이고 산도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무심(無心)

忠國師 因靈覺僧 問發心出家 本爲求佛 未審如何用心 卽得 師云 無心可用 卽得成佛 曰無心可用 阿誰成佛 師云 無心自成 佛亦無心 曰佛有大不可思議 爲能度衆生 若也無心 阿誰度衆生 師曰無心 是眞度衆生 若見有生可度者 卽是有心 宛然生滅

 

혜충 국사에게 영각이라는 스님이 물었다.

“발심하여 출가하는 것은 본래 부처가 되기 위한 것입니다. 어떻게 마음을 써야 성불할 수가 있겠습니까?”

“마음 쓸 것 없는 것이 곧 성불이니라.”

“마음 쓸 것이 없으면 누가 성불합니까?”

“마음 쓸 것이 없으면 저절로 성불이니 부처도 또한 무심이니라.”

“부처님은 대단히 불가사의한 분이라 능히 중생을 제도하시니 만약 무심하다면 누가 중생을 제도하겠습니까?”

“무심이 참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니라. 만약 제도할 중생이 있다고 보면 곧 이것은 유심이니 완연한 생멸이니라.”

 

해설 : 불교수행의 목적은 성불이다. 모든 불자들은 승속을 막론하고 성불을 제일 큰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자나 깨나 성불을 꿈꾸기 때문에 불자들은 서로 만나면 그 인사까지 성불하시라고 말한다. 아주 작은 공덕을 지어도 고맙다는 인사가 “성불하십시오”라고 할 정도다. 여기에 등장하는 영각스님도 혜충 국사에게 성불하는 길을 물었다. 혜충 국사는 무심(無心)이 성불이며, 성불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일까지 무심이 중생제도라고 하였다. 중생이 제도 되어진 경지가 곧 무심의 경지며, 무심이 곧 부처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첨부파일 78남양혜충국사6.wma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文殊法供養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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