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

김성규 시 보기 (4편)

시치 2010. 2. 23. 13:36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 마법사.外 / 김성규

눈보라가 괴물의 울음 소리를 내며 몰려오고 있었다 내가 죽자 바람이 멈추고 눈송이는 창문에 달라붙어 나늘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사진속에서 걸어나와 내 몸을 껴안고 우셨다 나는 천정으로 날아올라 누워있는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파랗게 식어가는 내 손을 쓰다듬고 있었다

차라리 잘되었다 이제 아침을 거르지 않아도,
하루 한 끼만 먹으며 지나치게 마법을 부려 힘이 빠지지 않아도,
돈 없어서 집에만 쳐박혀 있지 않아도……

나는 어머니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어머니는 공기 중을 떠다니는 내 얼굴과 누워있는 시체를 번갈아 바라보셨다 어머니의 눈동자에서 작은 눈송이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남의 마법을 흉내 내다 괴로워 하지 않아도,
나만의 마법을 찾으려 울지 않아도,
누구의 연락을 기다리며 외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그때 찬바람이 방안으로 몰아치고 문이 열렸다 어머니는 서둘러 사진 속으로 걸어들어가 눈물을 닦았다 나는 방안으로 들어온 주인집 노파와 경찰에게 혀를 내밀었다 시체 1구 발견, 시체 1구 발견, 방안에 널려있던 종이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경찰은 무전을 쳤고 눈보라가 점점 울음소리를 크게 내고 있었다 월세도 내지 않고 죽어버리다니 노파는 구시렁 거렸다 천장까지 밀려들어온 찬바람이 내 몸을 밀어내고 있었다

눈보라 속으로,
팔을 벌리자 하늘 끝 눈보라 속으로,
내 몸이 나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

 

가슴을 풀어헤친 여인,

젖꼭지를 물고 있는 갓난아이,

온몸이 흉터로 덮인 사내

동굴에서 세 구(具)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시신은 부장품과 함께

바닥의 얼룩과 물을 끌어다 쓴 흔적을 설명하려

삽을 든 인부들 앞에서 웃고 있었다

사방을 널빤지로 막은 동굴에서

앞니 빠진 그릇처럼

햇볕을 받으며 웃고 있는 가족들

기자들이 인화해놓은 사진 속에서

들소와 나무와 강이 새겨진 동굴 속에서

여자는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고

 사내는 짐승을 쫓아 동굴 밖으로 걸어나갔으리라

굶주린 새끼를 남겨놓고

온몸의 상처가 사내를 삼킬 때까지

지쳐 동굴로 돌아오지 못했으리라

축 늘어진 젖가슴을 만져보고 빨아보다

동그랗게 눈을 뜬 아기

퍼렇게 변색된 아기의 입술은

사냥용 독화살을 잘못 다루었으리라

 

입에서 기어다니는 구더기처럼

신문 하단에 조그맣게 실린 기사가

눈에서 떨어지지 않는 새벽

지금도 발굴을 기다리는 유적들

독산동 반지하동굴에는 인간들이 살고 있었다

 

                    

   구름에 쫓기는 트럭


구름이 낮게 가라앉아 도로를 덮는다
차를 세우고 운전사는 덮개를 꺼낸다
대기를 가늘게 쪼개며 비가 쏟아진다
일제히 속도를 늦추는 차량들, 덮개를 펴기도 전에
짐칸에 누워 있던 종이상자가 눈을 감는다 사방을 둘러본다
빗방울이 수직으로 튀어오른다 도로를 점거하던 빗물이 배수구를 찾아다닌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소리지른다
방패같이 잘 짜여진 방음벽, 달아날 곳 없는 사람들이 바닥에 뒤엉킨다

모 두 안 전 하 게 살 수 있 어 군인들이 비명을 쓸어담으며 대열을 맞춘다
모 두 안 전 하 게 살 수 있 어 골목을 찾아 사람들이 뛰어간다

너풀거리는 덮개를 밧줄로 묶는다 머리카락에서 빗물이 떨어진다
이불을 덮은 듯 말없는 상자들, 운전석으로 돌아간 사내는 머리를 닦는다
물기의 일부분이 수건으로 옮겨갈 뿐 머리는 쉽게 마르지 않는다
유리창에 김이 서린다 라디오를 틀고 가속기를 밟는다
수건의 결이 넘어지듯 음악소리가 여러번 구부러지다 창밖으로 흘러내린다
갓길에서 벗어나며 백미러를 본다

모두 안 전 하 게 살 수 있 어 빗방울이 공중에 호외를 뿌린다
모두 안 전 하 게 살 수 있 어 군복을 입은 사내들이 무릎 꿇은 청년들의 어깨를 밟는다

불빛이 눈을 번뜩이며 사내를 노려본다 오래전 꾸었던 꿈을 따라가듯
사내는 무언가 떠오를 듯해 음량을 줄인다 빗물을 쓸어내며 와이퍼가 유리창을 뛰어다닌다
아스팔트에 넘어져 뒤엉킨 사람들 앞질러가는 차량의 바퀴처럼 얼굴이 일그러진다
유리창 밖으로 빗물이 흘러내린다 두툼한 구름이 음악소리를 추적하며 도로 끝으로 트럭을 몰고 간다 



   누가 달에 이불을 널어놓는가


어린아이 서넛이 달에서 동아줄을 끌어올린다!

책가방을 메고 나간 소녀가 오줌을 지린다
노란색 반바지가 젖는다
아파트 베란다에 목을 늘어뜨린
사내의 몸이 젖은 빨래처럼 흔들린다

노파에게 자주 빵을 사주던 사내의 손가락이
밀가루로 빚은 듯 노랗게 보인다
아침마다 오줌에 절은 옷을 감추는 노파
날마다 이러시면 어떻게 살아요, 어머니!

가족들은 노파의 방문을 잠그고
바퀴벌레는 밤낮없이
노파의 방에서 먹이를 찾아다닌다
노인들은 왜 아이처럼 오줌을 싸는지
사내는 왜 부스럼 같은 울음을 토해냈는지
천체망원경을 보던 아이가
우주비행사처럼 손을 흔드는
사내를 보고 놀란다

한 사내가 동아줄에 매달려 올라간 후
그늘에 구워진 웃음소리가 밤마다 달에서 떨어진다

 

김성규 시인
1977년 충북 옥천 출생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너는 잘못 날아왔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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