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

[스크랩] 김륭 < 꽃과 딸에 관한 위험한 독법 > 외 19 편

시치 2009. 10. 2. 16:28

꽃과 딸에 관한 위험한 독법 
 
그러니까, 나는 딸에게 꽃을 선물한 적이 없다
아파트 베란다 마른 빨래처럼 널린 여자들에게 꽃을 안기고 물을 주었지만
쑥쑥 키 자라고 젖무덤 솟아오르는 딸에겐 그저 엉덩이나 두들겨주고
발갛게 달아오른 볼에 입을 맞춰주었을 뿐
 
딸을 꽃으로 읽었다 그러니까, 나는 너를 만나기도 전에
사랑해버린 것이다 고백컨대 내가 꾸역꾸역 삼킨 밥알에 관한 탐욕적인 묘사와
단 한 톨도 똥 덩어리로 밀려나지 않을 거란 눈물겨운 진술로 낳은
단 하나의 문장을 사랑니처럼 뽑아낸 것이다 

 

꽃은 늙지 않는다 그러니까, 딸은 바람의 문체로 완성한 꽃이다
딸이 꽃의 뿌리에 발을 담근 것인지 꽃이 딸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 것인지
햇살의 입을 열어 확인할 길 없지만 바람은 언제나
꽁꽁 꽃과 딸을 한데 묶어 피를 돌린다
 
나는 내 품을 떠난 딸이 보고픈 날이면 꽃이 미워진다 한없이
미워져 복사뼈 걷어차며 딸에게 떠먹인 살이라도 찾아오고 싶은 것인데
그건 곧 깨진 화분 같은 내 몸에서 끓고 있는
피에 관한 이야기

 

그러니까, 나는 널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는 말을 밥 먹듯 할 수 있는 것인데
꽃나무 발등 위에 떨어진 꽃잎처럼 주절주절 흩뜨려놓고 사는 것인데
그럴 때면 눈이 빨간 산토끼처럼 꽃밭에 쪼그려 앉아있는
내 성기를 발견하곤 한다

바람이 위험해질 때 새들은 구름을 물어온다 그러니까, 구름은
딸과 꽃이 심겨진 아주 오래된 꽃밭이거나 딸과 내가 함께 덮고 자는 이불이다
갈라선 아내가 키우고 있는 딸에게 모처럼 넣어본 전화를
꽃이 받는 순간 후닥닥 딸은 시든다 

그러니까, 나는 딸과 꽃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못다한 사랑은 그렇게 나이를 먹는다 턱밑에 붉은 밑줄을 긋고
잘못 살았다, 나는 제대로 늙기도 전에 미치거나 시드는 꽃을
눈물로 읽고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꽃과 딸에 관한 위험한 독법/김륭시인의 수정작

 

그러니까, 나는 딸에게 꽃을 선물한 적이 없다

아파트 베란다 마른 빨래처럼 널린 여자들에겐 꽃을 안기고 물을 주었지만

무심했다 딸에게는 둥둥 그저 엉덩이나 두들겨주었을 뿐

발갛게 익은 볼에 벌레 먹은 입이나 맞춰주었을 뿐

 

딸을 꽃으로 읽었다 그러니까, 나는 하나뿐인 너를 만나기도 전에

사랑해버린 것이다 고백컨대 딸에게 떠먹인 밥알과 꾸역꾸역 내가 삼킨 눈물에 관한

뽕짝메들리 같은 묘사와 젖무덤 가득 바람 부풀린 진술로 낳은

한마디 문장을 사랑니처럼 뽑아들게 된 것이다

 

꽃은 늙지 않는다 그러니까, 딸은 바람의 문체로 완성한 꽃이다

딸이 꽃의 뿌리에 발을 담근 것인지 꽃이 딸에게 수갑을 채운 것인지

햇살의 입을 열어 확인할 길 없지만 바람은 언제나

꽁꽁 꽃과 딸을 한데 묶어 피를 돌린다

 

나는 내 품을 떠난 딸이 보고픈 날이면 꽃이 미워진다 한없이

미워져 딸에게 이식한 복사뼈라도 찾아오고 싶은 것인데

그건 곧 깨진 화분 같은 내 몸에서 끓고 있는

피에 관한 이야기

 

그러니까, 나는 널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는 말을 밥 먹듯 할 수 있는 것인데

꽃나무 발등 위에 떨어진 꽃잎처럼 주절주절 흩뜨려놓고 사는 것인데

그럴 때면 눈이 빨간 산토끼처럼 꽃밭에 쪼그려 앉아있는

내 성기를 발견하곤 한다

 

바람이 위험해질 때 새들은 구름을 물어온다 그러니까, 구름은

딸과 꽃이 심겨진 아주 오래된 꽃밭이거나 딸과 내가 함께 덮고 자는 이불이다

갈라선 아내가 키우고 있는 딸에게 모처럼 넣어본 전화를

꽃이 받는 순간의 낭패감이 찡 눈을 찔러오곤 한다

 

그러니까, 나는 딸과 꽃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못 다한 사랑은 그렇게 나이를 먹는다 턱밑에 붉은 밑줄을 긋고

잘못 살았다 나는 제대로 늙기도 전에 미치거나 시드는 꽃을

눈물로 읽은 것이다

 

 

 

 

 

 

 

 

 

 

 

 

두루마리 화장지


공중화장실 벽에 걸려 있던 두루마리 화장지가

툭, 떨어져 바닥을 구른다


우두커니 서 있던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바닥칠 수조차 없던

나무의 나이테가 풀렸다

구른다, 또르르 삼겹살 몇 근으로 끊어내지 못한 나무의 뱃살이

수백 수천 장 푸른 손바닥에 새겼던 바람의 귀엣말이 신발처럼 벗겨진다

꼼지락꼼지락 발가락으로 움켜쥐고 살았던

혓바닥이 구른다


동그랗게 말린 바람의 혓바닥이 핥아 먹어버린 나무의 시간 속으로 천둥벼락이란 뒤 마렵던 구름의 말, 혀가 짧아 말이 되지 못한 새는 푸드덕 날개라도 풀어 쓰 -으 -윽 내 깊고 어둔 똥구멍 닦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도대체 나무는 급한 볼일을

얼마나 참은 것일까


두루마리화장지보다 함부로 풀어썼던 내 혓바닥이

펄쩍펄쩍 뛴다

 

  

  고독의 形式

미아삼거리 허름한 여관 세면대에서 양말을 빨았죠
팬티도 아니고 양말을 빠는데 거참, 물이 사람을 물고기로 봤는지
구중꾸중 꾸짖는 소리, 목 늘어난 넌닝구처럼 마구 쥐어짜는
물소리 한번 참 몰상식하데요

집나간 마누라행세를 하데요 발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당신
또한 구멍난 양말을 신고 다닌 바람이었는지 모르죠
입을 틀어막기엔 걸레보다 양말이 낫다며 덜덜 목이 부러져라 얼굴을 돌리는 선풍기,
뒤돌아보면 늘 목이 탔던 길이어서 킁킁 양말 속으로 코를 들이밀었겠지만 몸이 화끈 달아오르데요
콧구멍에서 생선가시로 변한 나무 몇 그루와 구름이 조금 흘러나왔지만
나비넥타이를 매고 살기엔 머리가 너무 무거워졌더군요
발가락이 숨을 할딱거리데요 어항 속을 뛰쳐나온 금붕어처럼 울긋불긋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달렸지요
내가, 내 몸을 벗어나기엔 사각 침대가
너무 깊더군요


 

칠순 애인과 라면 끓이기

퍼지면 맛이 없다
날계란 같은 설움도 쫄깃쫄깃해야 제 맛이 난다
당신은 아니라고 우기지만
그거야 질質보다 양量을 따지고 살아온 한평생을 부글부글
끓어 넘친 눈물 탓, 나는 잽싸게
밑이 새까맣게 탄 양은냄비 뚜껑을 열고
그녀를 집어넣는다

펄펄 끓는 물에 4-5분 더
라면공장 조리법은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목구멍을 조여 놓기 위한
고도의 상술 꼴까닥, 바닥난 성욕까지 우려낼 가능성이 높고
불과 물이 함께 허리 비틀며 뒤엉키는 시간은
십중팔구 불륜이다
면발보다 굵은 그녀의 주름살이 거품을 무는 순간
고물냉장고 문을 연다

훅- 너무 뜨거우면 숨통을 놓치는 법!
찬밥 한 덩이 먼저 마는
칠순 애인의 쭈그렁 이마 위로 식은땀을 내딛는
바로 그때다
강원도 어느 산간지방을 달음박질해온
초록빛 발소리 용두질로 묵힌 홀아비 총각김치 한 조각
덥석, 베어 물고 휘휘 젖는다

울컥
목덜미 근처로 팔다리 감아오는 그녀
식으면 맛이 없다
맛이 없는 건 라면이 아니라 고래심줄보다 질긴 세월이라고
라면 봉지 속에서 혓바닥이 뛴다
펄쩍펄쩍, 칠순 홀어머니
덩달아 뛴다

 

   살부림  

 

  그대를 사랑한 후 알았다 단말마의 고통을 위해 필요한 건 칼이 아니라

꽃이다, 칼보다 먼 곳에 살던 꽃이 쓰윽 걸어들어 오면서

내게도 급소가 생겼다

 

  모든 칼은 한때 꽃이었다 바람의 발바닥을 도려내던 머리맡에서 피보다

진한 눈물을 발굴했다 나는, 그대 몸 가장 깊숙한 곳에서 방금 태어났거나

이미 죽어버린 구름이다

 

  해바라기 꽃대에 목을 꿴 그대 눈빛을 보고 알았다 바람에 등을 기댈 수

없는 꽃은 칼이 된다 악연이다 우리의 사랑은 구름 속에 꽃혀있는 나를

뽑아 나무의 허리를 베고

  새의 날개를  토막-치면서 시작된 것이다

 

  칼로 물 베기란 붉은 살을 가진 물고기 비늘에 필사된 천지검법의 하나,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상대를 바닥에 눕히는 필살기 죽어도

사랑한다는 독침이 꽂혀있는

  애무의 마지막 초식이다

 

  변태가 불가능한 체위다 지상의 모든 사랑은 꽃의 신경조직과 무당벌레의

눈을 가졌다 늘 손잡이 없는 칼을 품고 다니며 축지법에 능통한 법

훌쩍, 한손의 고등어처럼

  그대와 내가 다녀온 하룻밤의 별을 식히는 동안 절정을 맞는 것이다

 

  피바람 몰아치는 무림천국을 흥미진진한 동물의 세계로 잘못 알고 뛰어든

멧돼지나 노루가 검은 아스팔트 바닥에 꽃을 피워 올리듯

 

  목 잘린 태양이 태아처럼 뒹구는 21세기 칼끝에 맺힌 핏방울처럼 흘러 내리는

발가락과 천둥번개를 먹고 자라는 머리칼 사이로 우리는 오늘도 어제나 내일처럼

  식상하게 태어나거나 새롭게 죽어갈 것이다

 

  그대 잠시 한눈파는 사이 급소가 사라졌다 한번 더 목숨을 버릴 때가 온 것이다

적의 급소가 곧 나의 급소다, 장미 한 다발 하나 사들고

  칼 받으러 간다

 

  꽃을 굽는 여자 

꽃은 조개가 더 좋아한다며 찡긋 눈웃음치는 여자
포장마차 아줌마 빨간 매니큐어 칠한 손톱에 기죽은 칼끝을
꽃잎처럼 물고 한사코 죽음을 손사래치던
조개, 연탄화덕 위에 가만히 올려놓으면 너무 오래 기다렸다는 듯
왈칵, 몸 열어준다
뻘구덩이에 처박혔다 가는 생生이 어디 조개 캐는 아낙들뿐이랴
조개 또한 단 한순간이라도 뜨겁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비린내나는 목숨이나마 꽃피우고 싶었던 것이다
속살 깊숙이 음악처럼 묻었던 끼룩끼룩 갈매기 소리 한 접시
파도 소리 한 접시 따로 담아
낯붉히는 조개구이
입 다물면 알 수 없는 속내 시커멓게 타버리면
그게 바로 꽃이라고 속삭이는 조개  
썩지도 않는 바다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지지도 않는
바다, 염낭게 겁탈하던 밤바다를 지글지글
꽃피우고 있다
못 다한 사랑을 불지르고 있다
징글징글하다, 이놈의 바다
온 바다가 된통
꽃밭이다

 

고스트헬멧

 

울지마 당신 덜그럭, 턱뼈가 웃음을 찍어낸다니까

사는 게 지겹다며 죽은 듯 잠든 분들 머리맡에서 덜그럭덜그럭

달을 가지고 놀다보면 알게 된다니까

서울역이나 수원역 대합실은 난리도 아냐

어젯밤에도 누군가의 꿈이 달빛에 찔렸는지 사고를 쳤더군

야윈 뼈마디에 달라붙은 살을 발라먹고 쪽쪽 피까지 빨아먹고

달랑 해골만 남겼더군

흔해빠진 집이나 마누라, 골 때리는 대통령선거 따위가 무슨 상관이야

악어가죽구두 내지르는 당신이나 질질 슬리퍼 끄는 나나

바람 빠진 타이어처럼 징글뒹굴

한 세상을 굴러먹는 셈인데

쯧쯧 밥은 먹었냐? 암만, 귀신도 밥은 먹어야 산다

추석이나 설이 가까워지면 밥그릇 엎어 무덤 지은 어머니 생각에

잇몸 시리겠지만 울지마 제발, 틀니까지 달아난다니까

노숙자 무료급식 따위로 오래 전에 굶어죽은 당신이

죽지 못해 산다는 말 따윈 되새김질 하지마

잔칫상에 올라앉은 돼지머리 하나 떠올리면 살맛이 난다니까

저기, 꽃샘추위에 얼어 죽은 분에게 잠시 빌려 써도 돼

이 바닥을 굴러먹기엔 가장 안전하고 속 편한

헬멧이야 배기통 터진 오토바이처럼 붕붕

떠오를 수 있다니까

 

팔다리를 날려도 우는 법이 없다니까 해골은

전생에 돼지머리 눌린 듯 킬킬

웃고 산다니까

 

 -창작과 비평,  2007 겨울호

 

나무들도 전화를 한다


앞마당 빨랫줄에 앉았던 새 한 마리
갸웃갸웃 삼십 촉 알전구보다 작은 머리에
불이 들어 왔나보다
전화 왔나보다
눈도 못 뜬 새끼들 배고파 운다고
동네 시끄러워 낮잠 한숨 못 자겠다고
나무에게 전화 받았나보다
포동포동 살찐 배추벌레 한 마리 입에 물고
날아간다 꽁지 빠지도록
새끼들 찾아간다
벨소리 그치지 않는 공중전화 한대 놓인
나무의 가장 따스한
품속, 둥지 찾아 날아간다
나무들 가슴 새까맣게 타도록
다이얼을 돌린다
전화를 한다

 -계간 <시와동화> 신춘문예당선작가 신작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 · 2 

 
1.
 고향집과 논밭을 깔아뭉갠 15층 아파트 거실 소파에 누워 있는데 구름이 찾아왔지 어디서 구했는지 내 그림자를 이불로 덮어씌우더군 어디 아픈 데는 없다고 말 건넬 틈도 없이 오래 전에 갈라선 아내처럼 겨드랑이 사이 새 떼들은 어쩌고 거기 구겨져 있냐고 구시렁거렸지 훌쩍, 세상이 너무 많이 변했다고 하늘을 발가락으로 눌러 끈 나는 벽돌보다 좀더 무거운 침묵을 준비했지만 옷걸이에 걸어두지 못한 두터운 바람 한 권이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더군 하늘이 한 평 밭뙈기보다 쓸모없는 줄은 몰랐어
 
2.
 뜬구름을 타고 다닌 건 사실이야 하늘을  땅처럼 짚고 헤엄칠 수 없다는 게 문제였지 문득 나도 몰래 죽은 나를 찾아내고 말았지 잘 살고 있냐고 내게 전화 한 통 때리거나 동영상 한 번 띄울 수 없는 휴대폰은 무용지물이지 새처럼 날려보낼 때가 되었더군 인생을 과학으로 재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은 미신이야 살다 보면 알게 되지 사람 뒤통수를 때리는 물건은 돌보다 단단한 벽돌이 아니라 구름이라고, 그렇다고 구름을  걸레처럼 쥐어짜진 마 구름이란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는 생각 같아서 평수가 넓지
 
3.
 언젠가 알게 되겠지 사람이 사람을 깔아뭉개거나 맥주거품처럼 슬쩍, 쏟아 부어버리기에 구름만한 곳이 없더군 구름은 장소가 아니라 시간이지 입을 틀어막아 버린 내 안의 우물이 바닥을 내보일 때까지 울어주는 악기라고 환장하겠더군 생선 지느러미처럼 토막쳐진 팔다리가 스르르 돋아나더군 고백컨대 나는, 나에게 너무 오래 감시당했는지 몰라 죽음보다 감미롭고 부드러운 음악처럼 우울증을 앓고 있는 당신 뒤통수까지 손을 뻗진 않았지만 조심해! 천둥번개마저 사산死産할지 모르니까


꽃등심

 

보증 잘못 서는 바람에 집 날리고

아내와 갈라선 후,


보증금 삼백에 월 십만 원 반 지하 단칸셋방에서

노란냄비 하나 품고 살다

슬리퍼 질질 끌고 나서는 문밖, 늦은 봄 햇살이 킬킬

꽃들에게 문병問病이나 가잔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팔짱낀 거리 동해횟집 지나 사거리 신선정육점 앞에서

울컥, 몸이 물처럼 맑아져 토해내는

붉은 잎사귀!

 

심장이 칼을 물었다

꽃피우지 못한 생의 등뼈 깊숙이

음매음매 소 한 마리 살고 있다는 동영상 메시지가 떴다

 

병명病名 없이 게워내는 선홍빛 각혈인줄 알았더니

칼질 급한 영혼의 비곗덩어리인줄 알았더니

쫄깃쫄깃하다

 

설움이란, 혓바닥 자근자근 깨물고 맛보는

내 삶의 꽃등심!

도대체 몇 근이나 될까?

 

어둔 목구멍 가득 숯불 피워놓고

히죽 웃다


 

 

개구리밥


개굴개굴 밤새도록 볶는다

 

프라이팬에 식은 밥 볶듯

개구리들, 무논 가득 울음을 볶는다

 

지글지글 달빛 끓어오를 때까지

 

밥에 속지 말자고

더 이상 밥에 몸 팔지 말자고

 

울음을 볶는다

달달 목숨을 볶는다

 

뱀이 딱 먹기 좋게 볶아

스스로 밥이 된다

 

 

 

고사리 꽃을 보다

 

읍내 장에 나물 팔러 나온

지리산골짝 할머니 두 분, 장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퉁퉁 불어터진 막국수 한 그릇씩 말아먹고

눈 깜빡할 새 지나간 생生을 둘러보는

길, 늦은 봄 햇살이

여기저기 만발한 저승꽃 뿌리를 잘못 건드렸는지

한순간 번쩍, 눈에 쌍심지 켠다.

 

제상祭床 보러 나온 새댁이 불씨를 지폈다.

이 못된 할망구야!

귀신이 물어갈 할망구야!

얼굴 빨개진 새댁, 팔 한 짝씩 붙잡고 늘어진다.

내가 먼저 봤다고 날 찾아 온 손님이라고

어물전 박씨며 신발가게 최씨며

장바닥 뜨내기들까지 불러 모아 울타리치고 

진저리친다. 

 

오래 전에 죽은 영감까지 불러내겠다는 심산이다.

장바닥 환하게 박이 터진다.

단 한번도 꽃 피우지 못한 한평생의 꽃대가

칠금방울처럼 흔들린다.

훠이 훠이 독毒처럼 품고 있던

목숨이 향기다. 아이쿠!

고사리 꽃을 피우는

할머니 두 분,


귀신보다 사람이 더 헛것인줄

빤히 알고 있다. 

 

 

꽃잎

 

어머니 없고 아내도 없이 홀로 앉는 밥상머리

울컥, 목이 메인다

밥 냄새 역겹고 젖 냄새 그립다

아아 언제부터인가

사람이 밥맛을 떨어뜨린 것은,

수천수만 장 붉은 입술로도 나를 꽃피울 수 없다는 듯 

꼬르륵, 배꼽 말아 쥐는

혓바닥

천길 낭떠러지보다 깊은 밥상 밑으로

툭, 목을 떨구다

-2005년 제1회 월하지역문학상 수상작

 

탁본( 拓本)

 
돼지국밥집 배불뚝이 주인사내가 파리를 쫓고 있다
불안하다 나는 파리만 날리는 오후 4시를 숟가락으로 움켜쥔다
건너뛸 뻔했던 한 끼 목숨을 꿀꺽, 제 밥그릇이라고 우기는
파리 한 마리
모르는 척 돼지국밥 우겨넣고 있는 나를 향해 식은땀 뻘뻘 흘리며 다가서는
사내, 한 끼 밥을 위해 싹싹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는
까짓 파리 목숨 하나 조이기 위해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저토록 엄숙하고 경건하겠는가?
플라스틱 파리채 하나 꽃대처럼 세우고 
엉덩이 뒤로 쭈―욱 뺀
사내
탁!

 

돼지국밥 속에 비친 눈꺼풀 사이로
오래오래 핏기 가시지 않을
탁본 한 장

 

내 목숨이 아니라고 하기엔 알리바이가 부족하다
시뻘겋게 나는 눈도 감지 못한 채 
전생을 건너온 것이다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

1.

실직 한 달 만에 알았지 구름이 콜택시처럼 집 앞에 와 기다리고 있다는 걸

2.

구름을 몰아본 적 있나, 당신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내 머리에 총구멍을 낼 거라는 확신만 선다면 얼마든지 운전이 가능하지

총각이나 처녀 딱지를 떼지 않은 초보들은 오줌부터 지릴지 몰라

해와 달, 새떼들과 충돌할지 모른다며 추락할지 모른다며 울상을 짓겠지만

당신과 당신 애인의 배꼽이 하나인 것처럼 하늘과 땅의 경계를 가위질하는 것은 주차딱지를 끊는 말단공무원들이나 할 짓이지

하늘에 뜬 새들은 나무들이 가래침처럼 뱉어놓은 거추장스런 문장일 뿐이야

쉼표가 너무 많아 탈이지 브레이크만 살짝, 밟아주면 물고기로 변하지

3.

구름을 몇 번 몰아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해나 달을 로터리로 낀 사거리에서 마음 내키는 데로 핸들만 꺾으면 집이 나오지

붉은 신호등에 걸린 당신의 내일과 고층아파트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보다 깊은 어머니 한숨소리에 눈과 귀를 깜빡거리거나 성냥불을 긋진 마

운전 중에 담배는 금물이야

차라리 손목과 발목 몇 개 더 피우는 건 어때? 당신

꽃 피우지 않고도 살아남는 건 세상에 단 하나, 사람뿐이지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건 새가 아니라 벌레야

구름이란 눈이나 귀가 아니라 발가락을 담아내는 그릇이란 얘기지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말이야 그걸 아는 나무들은 새를 신발로 사용하지

종종 물구나무도 서고 말이야 생각만 해도 끔찍해

구름이 없으면 세상이 얼마나 소란스러울까

4.

아주 드문 일이지만 콜택시처럼 와 있는 구름의 트렁크를 열어보면

죽은 애인의 머리통이나 쩍, 금간 수박이 발견되기도 해

초보들은 그걸 태양이라고 난리법석을 떨지

 

서울에 사는 소 

1

소(牛)를 키운다. 아파트 거실에서

밤마다 정육점 갈고리에 매달리는 꿈이라도 꾸는 건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몸서리치는

소.


애완 동물을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딸아이가

소를 등지고 앉아 햄버거를 먹고 있다.

우우 눈(目)으로 우는

소.


운동장만한 아파트가 고향집 외양간보다 불편한지

워워, 틈만 나면 슬그머니 집을 나가는 소.

지하 주차장이나 놀이터를 갈아엎어 아내 얼굴에 똥칠을 하는

우리 집 소는 뿔이 없다.

서울로 끌려오면서 팔아치운 논밭뙈기 그리운 날이면

사거리 맥도널드 체인점 앞에 모락모락 소똥 퍼질러 놓는다.

그때마다 난리가 난다.

어이구, 못살아 내가 못살아! 제발 집안에 편히 계세요

아내에게 사랑받는 우리집 소는 음매음매

자주 아프지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등골 빠질 만큼 실컷 부려먹은 소, 당장 도살장으로 모셔야하지만

아내는 애완동물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2

아버지 참 눈치도 없다.

애완 동물을 사랑하는 아내가 헬스클럽에서 돌아왔는지 모르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거실 소파에 소똥 퍼질러 놓고 있다.
     -<2005년 제 1회 월하지역문학상 수상작> 

 

지리산 고로쇠 나무 

 

동란 때 동네 우물가에 터지던 수류탄처럼

울음보가 터졌다

어이구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어르고 달래 보지만

막무가내다


늙으면 외롭고 쓸쓸하다고

도시에 먹고 살려면 맞벌이해야 한다고 큰 놈 작은 놈 해마다 줄서더니

어제는 딸년 까지 찾아와 던져 놓고 간

네 살배기 손자


지리산 꼴짝 박둘선 할머니 젖가슴에 매달려있다.

풀꽃 한 송이 자라지 않는 절벽에 매달려

딸깍, 숨을 삼켜 버릴 듯

자지러진다.


어미야 안되겠다 이번 주말엔 꼭 내려 오거라.

최신형 휴대폰을 수류탄처럼 움켜쥔

젖동냥 나서고 있다.


 

 사랑은 미치는 것이 아니다 

 

눈이 맑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눈물이 맑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맑은 눈동자에 마음을 담그고

그 맑은 눈물샘에 온몸을 담그고

 

맑은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물새알이 되고 싶었습니다

왜가리며 기러기며 아름다운 새떼들

옷걸이로 걸린 하늘을

청둥오리처럼 품어보고 싶었습니다

 

비가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눈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빗물로 스며들어 백년을 살고 싶었습니다

눈물로 스며들어 천년을 살고 싶었습니다

 

사랑은

미치는 것이 아니라 지치는 것이었습니다

한없이 지쳐 서로 사무치는 것이었습니다

 

 고향집에 숨겨둔 야한 비디오가 있다

 

  마을버스도 들어오지 않는 외딴 마을 그 옛날 양반이 살았다는 고래 등 같은 기와집 부엌문 옆구리에 매달려 덜거덕거리는 집 서넛 밤마다 말없이 울다가 풍각쟁이 우리 아버지 늙은 과부 치마 밑으로 손 집어넣듯 길과 길이 만나 헐떡이는 둔덕 밑으로 굴 하나 파 외지사람들 불러들이는 다리 밑에 가면 삼십 촉 알전구 하나 매달리지 않은 굴다리 밑에 가면 소젖 출렁거리며 돼지불알 덜렁거리며 구름 가는 거 바람 가는 거 몇 안 되는 영감들 정자나무 밑에 앉아 밤꽃냄새 풍기는 거 염소처럼 살다 죽은 영감 찾아 살금살금 발소리 죽인 할멈 마른 꽃무더기처럼 떠내려가는 거 밑도 끝도 없이 다 보이고 서울로 돈 벌러 간 사촌누이 어린 송아지 같은 사내 하나 양복 입혀 끌고 온 날이면 온 마을 사람들 한 방에 모아놓고 돼지머리 눌리는 앞산 달덩이가 내 살을 다 만져본 하숙집 아줌마 궁둥짝 같은 밤이면 반짝, 머리를 열고 가로등을 켠다 미래는 아직도 불통이고 추억이란 명함 들고 먼별에서 찾아온 영혼마저 반기지 못하는 누추한 꿈이 그 옛날 어머니, 핏덩이 막내 주워왔다고 농弄치던 굴다리 밑으로 몸 굴려 나는 가만히 멀어진 첫사랑을 쑥, 꽃 한 송이로 낳는 야한 비디오 속의 눈물이 된다

 

청동물고기



  어머니가 올려붙이던 뺨따귀 모양이다


  얼얼하게 매달린 하나, 둘, 세 마리……,  달 켜자 기우뚱 기울어지는 요사채 나무 기운다 덩달아 숲 기울고 산 기운다. 나무와 나무 사이 수심 가득하던 고요 한순간 깨진다 달빛 구워낸 둥근 쟁반 위로 털 빠진 오리새끼 서너 마리 왔다가고 끙끙 연못이 체온을 올리고 있다
 

  산란을 꿈꾸는 건 물고기가 아니다
  물이다
  고기는 잠들었다


  물과 고기 사이를 머뭇대던 窓 하나 꺼졌다 별 하나 꺼졌다 뿔뿔이 흩어졌던 식구들 둥글게 모여 앉아 밥상이다 보름달이다 고기반찬 없이도 푸짐했던 두레밥상이다 수없이 갈라 터졌던 발꿈치 사이 자냐? 자냐? 먼 길 달려오시는 버선발 어머니, 수제비 뜨시고 덜컹덜컹 아버지 고물자전거 온다 바람 온다 물결 온다


  달 하나 깬다 
  

 

 

출처 : 말더듬이의 편지
글쓴이 : 체스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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