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

목 (外1편)/박서영

시치 2009. 9. 14. 12:39

  

 

                                   - 박서영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당신의 목덜미를 만졌다

 당신의 얼굴은 한때 아름다운 장화를 신었고

 장화는 점점 주름살이 늘어나 밑창부터 늘어지기 시작했다

 

 경주박물관 뒤편 목 잘린 불상들 앞에서 이렇게 속삭인 적 있다

 얼굴이 장화를 신고 어딘가 가버렸다고,

 갑작스레 달려온 햇빛이 당황해 꿀처럼 목둘레에 엉켜 붙어 있었다

 사람들이 기도하는 심정으로 꿀을 한 숟갈씩 퍼갔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당신의 목덜미를 만졌다

 관棺 뚜껑이 닫히기 전에 내가 마지막에 해야 할 일

 목 뒤 감첬던 주름살과 약점들

 지상의 눈꺼풀 속으로 침몰해버린 사랑들

 지상을 떠나야만 맛볼 수 있는 안락함들

 

 심장이 목을 통과해 얼굴에 당도할 때 낯빛으로 알 수 있었던 것들

 얼굴에서 본 심장의 빛깔!

 긴 목을 통과해서 별, 꽃, 나무, 달이 뜬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들이 어느 날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몸의 지옥을 견디는 가느다란 목

 얼굴이 피 묻은 장화를 신고 어딘가 가버렸다

 

 

 

                       『현대시』 2009년 9월호

 

 

  평일의 극장

 

                                 - 박서영 

 

 

 

 십 년 동안 사귀었는데 아무 것도 손에 넣지 못했다

 얼음처럼 녹고 흘러내리고 지나간 마음들

 눈송이처럼 사라져버린 대화對話

 잡으려고 한 적 없으니 사라진 건 당연하다

 때때로 내가 내 목을 조르는 꿈을 꾼다

 내 손이 스카프처럼 그대의 목을 조를 수도 있으리라

 관람객 없는 평일의 극장에서 잠깐 졸았을 때

 지나가버린 것은 청춘

 남은 것은 패배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나갔는지

 깜박하는 사이 시체들이 골짜기에 버려지고

 깜박하는 사이 꽃밭이 태어나는 평일의 극장 안

 프라하와 아우슈비츠, 박쥐와 마더

 맨 뒤 구석자리가 나의 영토일 것

 그곳에서 예의를 버리고 그대의 입술에 키스한다

 가장 나중까지 남아서

 누군가 나를 들어내 버릴 때까지

 

 

 

                      『현대시』2009년9월호

 

 

 

            - 1968년 경남 고성 출생.

               1995년『현대시학』등단.

              시집<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천년의시작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