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꽃이다 감히 피어 본 꽃들이다 불까 말까 한 바람에도 당장 떨어지고 있다 살아생전 절대 안정 절대로 절대 안정이다 오늘 나는 절대 안정 중인 꽃이 다섯 송이 나란히 길에 앉아(할머니들이다) 열심히 감을 먹고 있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식당 아저씨가 배달 가는 길에서 오토바이 거울에 얼굴 비추며 여드름 짜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도 목격했다 그 다음에 버스 정류장 벤치에서 열심히 엎드려 팔굽혀펴기하는 젊은이를 봤다 이 절대 안정 기간 중의 몰두의 계절, 유별난 몰두의 꽃들이여, 몰두의 가을이여 장자의 나비들의 날개치는 소리는 클랙슨 소리 못지않게 소란스럽기도 하고 거리에는 약도 독도 많겠지만 열중하는 그대들에게는 무용지물 그대들의 절대 안정 기간을 방해하는 이가 없도록 살아 계세요, 몰두하면서 시끄럽게 신나게 -사이토우 마리코, [살아 계세요]
위의 시는 놀랍게도 최근 [입국]이란 이름의 한국어 시집(번역이 아님)을 내고 있는 꽤 젊은 일본 여성시인의 것이다. 그의 약력에 의하면 그가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년 안팎의 시간에 지나지 않는데, 어떻게 그것도 매우 뛰어난 한 권 분량의 시집을 엮을 수 있었는지 잘 납득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아무튼 놀라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일반 회화 언어라면 몰라도 언어 중의 언어인 시어를 이렇게 한국어로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 자신이 [광합성이란 시를 쓰고 있기도 하지만, <녹색식물이 빛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흡수된 이산화탄소와 수분의 유기 화합물을 합성하는 일, 탄소 동화작용의 한 형식>으로 풀이되는 그런 언어의 광합성을 그의 시편들은 이룩해 내었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앞의 시에서 우리는 짙은 가을을 읽는다. 가을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나타내는 말히 단 한 번 나올 뿐이지만, 이 시를 이끌고 있는 가을 감성은 가을을 노래한 어떤 시보다도 깊고 넓게 가을에 물들어 있다. 아니, 우리의 삶에 그대로 밀착되어 있다. 그 투사의 시선과 가담의 몸짓이 마침내 하나의 시적 공간을 빈틈없이 채워 내보이고 있다. 이 시는 우선 가을이라는 계절이 지니고 있는 조락의 일차적 이미지와 우리의 삶이 지니는 시간적인 유한성, 그리고 유약함을 하나로 엮어 놓고 있다. <불까 말까 한 바람에도 당장 떨어지고 있다>는 시행이 바로 그것이다. 이 시행의 주어는 바로 우리들, 모든 삶이다. 여기서는 피었다 지는 꽃으로 상징되고 있지만, 그 내면적인 의미로서의 객관적인 상관물은 가을날의 낙엽에 더 가까운 것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정도의 영상과 관계맺기는 전혀 놀라울 것이 없는 흔한 형태의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시적 상승과 확대는 그 다음에서 나타나고 있다. <살아생전/절대 안정/절대로 절대 안정이다>에서 보이는 병상 용어의 도입이 바로 그것이다. <절대 안정>. 우리가 문병차 병원에 들렀을 때 흔히 볼 수 있는 환자의 침상에 걸려 있는 붉은 글씨의 경고판 말이다. 이 말은 단번에 우리들 인간이 지닌 생명의 유한성과 유약성을 위기의 극한으로까지 끌어올리고 있으며, 아울러 그 용어를 통해 삶 속의 절제와 극복의 의지를 강력하게 제시해 놓고 있다. 다시 그 다음 단란의 구체적인 전환에 이르러 우리는 이 <절대 안정>의 세계를 가시적으로 확인케 됐다. 뿐만 아니라 그 제시된 상황들이 우리 삶 속의 모습 그대로의 것들이어서 실감을 자아내고 있다. 또 해학적이리만큼 읽는 우리들을 자유롭게 풀어 주고 잇다. 할머니들은 길가에 앉아 감을 열심히 먹고 있으며, 식당 아저씨는 배달 가는 길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그 거울을 비추어 여드름 짜기에 몰두하고 있다. 한 젊은이는 버스 정류장 벤치에서 열심히 엎드려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다. 모두가 살아 있는 모습들이다. 하찮은 삶의 모습들인 것 같으나 무엇인가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들이다. 그렇다. 이 <몰두>라는 말이 중요하다. <절대 안정>이란 말을 이 시인은 놀랍게도 <몰두>라는 말로 관계짓고 있다. 꼼짝도 하지 않고 두 손 놓은 채 살얼음 건너듯 조심조심 하는 것이 <절대 안정>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모습, 저마다 무엇인가에 몰두하는 모습을 바로 <절대 안정>의 세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각에는 모순이 있어 보이지만,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다. 우리들 인간의 유한성, 그 위기감에 주눅이 들어 있는 모습이, 이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들마저 하다못해 감이라도 열심히 먹고 있는 그 <몰두>가 <절대 안정>의 세계가 아니겠는가. 가을이 깊었다. 이 가을의 조락의 이미지에만 갇혀 어떤 이는 혼자서 깊은 우수에 빠져 있을지도 모르고, 또 어떤 이는 가까운 이의 문상을 다녀오는 밤길에서 문득 삶의 무상함으로 하여 가슴 가득 고이는 슬픔을 어쩌지 못해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 낯선 한 일본 여성시인이 해석하고 있는 가을의 의미는 얼마나 싱싱하고 당당한가. 그는 마지막으로 말하고 있다. ,그대들의 절대 안정 기간을 방해하는 이가 없도록/살아 계세요, 몰두하면서/시끄럽게/신나게>. 그렇다. <시끄럽게/신나게>라는 말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이 깊은 가을에 우리 모두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한 번 짙게 보여 보자. 시끄러울 정도로 신나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