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

독창 毒瘡/김명인

시치 2008. 8. 15. 10:46

독창 毒瘡/김명인

 

치명(致命)에 들려서라도 돌파하고 싶었던

연애가 있었다 하자. 그 찌꺼기까지

기꺼이 받아 마실 어떤 비굴함도

뱃바닥으로 끌고 가면서

할 수 있다면 나, 독배(毒杯) 끝까지 놓고 싶지 않았다

아편에 저린 듯 자욱한 몽롱을 헤쳐 나왔지만

문제는 난파한 뒤에도 오랫동안 거기 계류되어 있었다는 것

이명처럼 흔들어서 나를 깨운 것은

누구의 부름도 아니었다

한 구덩이에 엉켜들었던 뱀들

봄이 오자 서로를 풀고 구덩이를 벗어났지만

그 혈거 깊디깊게 세월을 포박했으니

이 독창은 내가 내 몸을 후벼 파서 만든 암거(暗渠)!

서로에게 흘려보낸 저의 독으로

마침내 지우지 못할 흉터를 새겼으니

 

허물 벗은 뱀은 제 허물이라도

벗은 허물 다시 껴입을 수 없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