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 毒瘡/김명인
치명(致命)에 들려서라도 돌파하고 싶었던
연애가 있었다 하자. 그 찌꺼기까지
기꺼이 받아 마실 어떤 비굴함도
뱃바닥으로 끌고 가면서
할 수 있다면 나, 독배(毒杯) 끝까지 놓고 싶지 않았다
아편에 저린 듯 자욱한 몽롱을 헤쳐 나왔지만
문제는 난파한 뒤에도 오랫동안 거기 계류되어 있었다는 것
이명처럼 흔들어서 나를 깨운 것은
누구의 부름도 아니었다
한 구덩이에 엉켜들었던 뱀들
봄이 오자 서로를 풀고 구덩이를 벗어났지만
그 혈거 깊디깊게 세월을 포박했으니
이 독창은 내가 내 몸을 후벼 파서 만든 암거(暗渠)!
서로에게 흘려보낸 저의 독으로
마침내 지우지 못할 흉터를 새겼으니
허물 벗은 뱀은 제 허물이라도
벗은 허물 다시 껴입을 수 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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