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 스님의 서장 대 강좌

[스크랩] 무비스님 서장 대 강좌 제 10-4 강

시치 2008. 4. 9. 00:39

 

 

            서장 대 강좌 10강 - 4

 


  회향강의에 징검다리 식으로 공부를 해도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낫지요? 그렇지요?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간화선 이라고 하여 화두를 들고 참구하는 입장에서 이야기가 되어야 되는 것이 이 서장내용의 거의 주된 흐름이고, 거의 7~80%가 화두를 참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회향을 하는 마당에서 앞에서 누누이 이야기했던 우리 인간이 本有한, 본래 있는 존귀함이라고 할까? 지고한 가치에 대한 눈뜬 이것이 한 순간에 이루어지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게 되지 않으니까 제가 늘 말하듯이 재수 있는 사람은 말 한 마디 듣고도 눈 뜨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수십 년을 참구해도 잘 안 되는데, 그래서 참구하는 방법이 사실은 후대에 와서 이렇게 개발이 된 것입니다.


  대혜스님이 하도 답답해서 이런 방법을 만든 것입니다.

그전에는 그냥 말 몇 마디 주고받으면 그것으로 끝났고, 끝 안 나면 그뿐이고요. 그랬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라도 더 건져야 되겠다. 건지려면 무슨 방법 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 최선의 방법이 화두를 참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져서, 오늘 날 우리가 화두 참구하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곳곳에서 토요 참선 회 라든지, 철야정진이라든지, 시민선방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성행하게 되고, 또 우리가 여기서 “왜 지금 간화선인가?”하는 간화선 붐을 조성하게 되고, 거기에 따라서 이런 다행한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여사인 거인에게 답함. ←이 짧은 편지 하나가 서장의 전반적인 내용을 어떻게 보면, 대표적으로 들어서 소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일부러 최후로 이 대목을 살펴보는 것으로 끝을 맺어야 되겠다고 제가 생각을 했습니다. 


  p. 226


    32. 여사인 거인에게 답함.


  천 가지 의심과 만 가지 의심이 다만 하나의 의심입니다.

우리 인생문제. 이 의심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인생사. 자식에 대한 문제든, 사업에 대한 문제든, 무슨 문제든 간에 어떤 문제를 막론하고,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온갖 문제들이 하나의 의심으로 귀결될 수가 있다. 그것은 화두 위에서 의심이 타파되면, 천 가지 의심과 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타파될 것입니다.


  우리 인간사 개개인의 장사 안 되는 문제까지, 자식이 말 안 듣는 문제까지도, 바로 이 화두하나 깨트리면 그 문제까지도 해결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화두를 제대로 깨달아 버리면, 자식이 왜 부모 속을 썩이는가? 나라는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세상은 왜 갈수록 자꾸 험해지는가? ←이런 문제까지도 이속에 다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화두를 타파하지 못하면 또 화두 위에 겨루어 나가십시오.

다른 것. 그 문제에 나아가서 거기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라 이 겁니다.

이번에 저는 대운하 문제가지고, 우리 선불교의 종주 시찰인 봉암사에서까지 그 문제를 들고 일어나는 것은 참 섭섭한 일이더라고요.

시류에 왜 봉암사까지 그렇게 동조를 하고, 이러고저러고 옳다 그르다는 소리를 봉암사까지도 그런 데에 관심을 써야 하는가? 거기가 최후의 보루인데요.

최후의 보루가 그 문제에 휘말리면 어떻게 되는가?

물론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다 뜻이 있겠지요. 또 옳은 일이겠지요. 하지만 우리 선불교. 한국불교의 최후의 보루가 봉암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거기서 그런 문제를 들고 일어나는가? 그다음에 이젠 갈 곳이 없는 겁니다. 피난처가 없어요. 더 이상 피난처가 없다고요. 거기서까지 그렇게 세상일에 왈가왈부 하면 어쩌자는 말입니까?


  만약 화두를 버리고 도리어

별도 문자 위에 가서 의심을 일으키거나,

경전의 가르침 위에서 의심을 일으키거나,

고인의 공안위에서 의심을 일으키거나,

일상의 번뇌 가운데서 의심을 일으키면 다 이것은 삿된 마군의 무리입니다. 천 가지 문제. 만 가지 문제가 오직 이 화두 하나의 문제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는 이것이 간화선입니다. 그렇게 보는 것이 간화선이라고요. 그러면 화두 하나 해결하면 대운하 문제도 그 속에 해결된다고 봐야 됩니다. 이것이 그 소리입니다. 부연 설명하면 그 얘기라고요. 자식이 말 안 듣는 문제도 이속에 다 포함되어요. 세상이 저렇게 험하고 곳곳에서 이해득실 가지고 날뛰고, 그것도 전부 이 간화선을 하는 정신으로는 그렇게 문제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고, 그 모든 문제를 화두라고 하는 이 문제에 귀결시켜서 여기에서 답을 얻자고 해야 그것이 간화선 하는 사람이라고요.

그것이 선입니다. 선의특징은 거기에 있습니다.


  첫째 화두를 드는 자리에서 알아채려고 하지 말며, 또 알음알이로 헤아리지 마십시오.

다만 유의하여 헤아릴 수 없는 곳에 나아가서 의심하면,

마음이 갈 곳이 없는 것이 늙은 쥐가 소뿔에 들어가 문득 넘어지고 끊어지는 곳을 만나는 것과 같아질 것입니다.

온갖 문제. 세상문제. 무엇 때문에 무슨 자연 파괴다. 뭐다. 뭐다. 도덕성 문제. 정직성 문제. 진실성 문제등등 물론 많지요. 그렇지만, 이 선불교. 불교의 최후의 보루가 또 선불교입니다. 불교의 완성이면서 최후의 보루가 선불교입니다. 한국에서는 선불교의 최후의 보루는 봉암사입니다. 그렇다면 이 정신. 간화선의 근본정신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차가 있어서는 안 는 겁니다. 그 오차가 없어야 된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쥐를 잡는데 큰 물소 뿔 안에 냄새나는 좋은 먹을 것을 하나 떨어뜨려놓으면, 쥐가 냄새 맡고 거기로 들어간다는 겁니다. 들어갈수록 차츰차츰 좁아지니까 들어갈 때는 쉬웠는데, 들어가서는 옴짝달싹 못하는 겁니다. 마지막 미끼는 저~안에 있고요. 머리는 아직도 끝까지 닿지 않고요. 고소한 냄새가 풍기니까 욕심은 계속 미끼에 가 있고, 들여 밀려니까 머리가 받쳐서 못 들어가지만, 들어가려고 계속 머리를 들이밀고, 들이밀고 하다가 결국은 거기서 죽는다는 겁니다. 이것이 쥐 잡는 틀입니다. ←이런 식으로 인생을 몰아가는 겁니다. 이것이요.


  간화선법이라는 것이 인생을 몰고 가는 겁니다.

죽든지 말든지 그냥 그것입니다. 아주 냉정하게 이야기 하자면 인생을 그렇게 걸고 하는 것이 간화선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시시한 아마추어들이 함부로 덤빌 일이 아니라고요.

전문적으로 하는 수좌들도 그저 시간이나 보내고, 가서 시간이나 채우고, 철 채우고, 앉았던 시간 채우고, 죽비 치면 앉고, 방선죽비 치면 일어나는 이런 허수아비 식으로 해서는 꿈에도 못 봐요. 꿈에도 못 보는 겁니다.

화두 하나에 올인 해야 됩니다. 인생 다 걸어야 된다고요.


  이보십시오. 이것이 그런 이야기 아닙니까?

천 가지 문제 만 가지 문제가 오직 화두 하나에 달려있다. 이것이 간화선의 정신입니다.

늙은 쥐가 소뿔에 들어가 문득 넘어지고 끊어지는 곳을 만나는 것과 같아질 것입니다. 옴짝달싹 못하는 겁니다. 내 모든 인생을 거기에 다 걸고, 거기에서 해결을 보자는 것이지요. 


  또 마음이 만약 시끄럽거든 다만 어떤 문제로서 마음이 시끄럽던 간에, 이 간화선 하는 사람은 다만 ‘개는 불성이 없다’는 화두를 의심할 뿐입니다. 만약 이 無字를 꿰뚫으면, 부처님의 말씀과 조사의 말씀과 모든 노숙의 말씀과 천 가지 만 가지로 다른 것을 일시에 꿰뚫어서 남에게 묻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한결같이 남에게 묻되,

   부처님의 말씀은 또 어떠하며,

   조사의 말씀은 또 어떠하며,

   모든 노숙의 말씀은 또 어떠한가 하면, 영원히 깨달을 때가 없을 것입니다.


  정치를 어떻게 하든, 운하를 10개를 파든 100개를 파든, 자연을 훼손을 하든 만들든, 화두납자. 참선납자는 그런 데에 관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급인생을 사는 사람이 무슨 세상사 정치 어떻게 하고, 자연 파괴 어떻게 하고, 그런 데에 관심 하는 것은 딴 사람 몫입니다.

사실은 통탄할 일입니다. 운하가 파지는 것이 통탄할 일이 아니고, 그 문제를 문제시 하는 간화선의 보루. 최후의 보루인 봉암사에서까지 그 문제를 문제시 한다는 이 사실이 제가 보기에는 통탄할 일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거기서 아니 해도 되잖아요. 그것 좀 보호됐으면 좋겠어요. 최후의 성역으로 보호됐으면 좋겠어요. 그 동안 신도들을 초파일 날 하루 외에는 받아들이지도 않는다고 그렇게 산문폐쇄 해서 수행자들끼리만 딱 산다고 그렇게까지 해놓고, 스스로 세상의 정치를 거기서 앉아서 끌어들여요? 이것은 앞뒤가 안 맞잖아요?


  봉암사를 제가 어릴 때 좋아해 가지고 거기 가서 산판하고 사는 어떤 대처승들. 우리가 작당해서 쫓아내고 제2정화를 거기서 한 것이지요. 그래가지고 오는 날 선방을 만든 겁니다.

그 때 우리가 정화한 스님들이 “우리가 영원히 뼈를 봉암사에 묻자.” 이렇게 결의를 했었습니다.

옛날 신라 때 구산선문으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그 정신. 그래서 오늘 날, 우리 종단에서 정한 종립선언 아닙니까?

평소에 신도도 안 받고 초파일 날 하루만 개방하는 걸로 국가에서도 허락을 해주고, 종단에서도 그렇게 하고, 종단에서 상당한 지원을 하며 보호되어온 곳인데, 어떻게 돼서 거기서 정치적 바람이 들어가서 그러고 있는지 참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운하를 100개를 파도 안타까운 일이 아니고, 봉암사라고 하는, 간화선최후의 보루가 무너지고 있다는 이 사실이 안타까운 것입니다. 이 서장을 보십시오.

간화선 제일지침서가 서장 아닙니까? 이렇게 해놨잖아요. 이것이 간화선을 하는 모든 정신입니다. 세상의 일체 천 가지 문제. 만 가지 문제는 오로지 화두 하나로 올인 하라 이겁니다.


  오늘 서장강의 10회에 걸쳐서 회향을 하면서 쓴 소리도 좀 하고, 마음에 있는 소리도 좀 하고, ‘이것이 禪機. 선의 기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들. 좀 이해해 주시고 간화선의 정신은 나는 못 해도, 최소한도 간화선의 정신은 이런 것이구나. ←이렇게 우리가 이해한다면 서장공부를 부족하지만, 부족한대로한 의미와 보람이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또 그 동안 제가 서장강의를 이렇게 하노라고 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의 견해이고, 서장을 대혜스님의 마음에 들게 시원스럽게 제대로 해석을 했는지 그것은 저도 상당히 의문입니다.


  대혜스님이 칭찬을 하실지 꾸중을 하실지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입니다만, 어쨌든 이 좋은 가르침을 가지고 우리 불자님들과, 또 여러 스님들과 이런 좋은 시간을 10회에 걸쳐서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 말세에 아주 무량대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감사합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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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 큰 스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1년에 걸쳐서 먼 거리를 마다하시지 않고, 여기까지 오셔서 저희에게 명품불교. 최상의 선불교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희는 선불교가 어떤 내용인가를 이때까지 의심을 가졌었습니다만, 명쾌하게 명품 선불교는 “평상심이 도이다. 우리 모두가 문수보살이고, 보현보살이고, 또한 부처이다.” 하는 시원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스님께서 저희에게 “이 시간이 기다려진다.”

여러분들 모두 스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근기를 가지고 있으셔서 여기 오시는 것이 기다려지시고, 이런 좋은 만남을 가진 것이 너무 즐거우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저희를 ‘제자로서 인가해 주시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저 나름대로 해봅니다.


  여러 불자님들도 아마 그런 생각을 하셨고, 또한 스님의 말씀을 열심히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고 스님께서 저희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려우시지만, 저희 제자들이 원한다면 오셔서 저희에게 또 더 좋은 가르침을 주시리라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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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1년을 작년 6월부터 한 달에 한 번, 횟수로는 10회이지만, 우리 일상생활 24시간을 모두 이끌어 주십니다. 중국 선적지 순례를 저희들을 이끌어 주시느라고 건강이 더 안 좋아지셔서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곧 바로 다음 달부터 무비 큰 스님의 강좌를 또 들었으면 굉장히 좋겠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어서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진행합니다.” 이 말씀을 이 자리에서 드릴 수가 없지만, 다음 강의는 금강경으로 무비 큰 스님께서 우리들을 가르쳐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제 예상으로는 두 달 정도는 쉬셔야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이것을 약속받는 의미에서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큰 스님께 삼배 올립시다.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_()_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_()_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_()_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_()_


           성불 합시다. _()()()_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대원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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