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몽쇄언(꿈과 인생)

[스크랩] 술몽쇄언(꿈과 인생>평등/平等

시치 2007. 11. 2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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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경기도 광주시 남한산 남한산성 장경사 가는 길. 장경사는 인조 2년(1624)남한산성 축조할 때 승군의 숙식과 훈련을 위해 건립된 호국사찰입니다.
    평등平等 평등이라 함은 치우침이 없고 기대는 일도 없으며, 물物도 없고 아我도 없음을 말함이다. 즐겨 하고 성내고 하는 변화가 없으며, 꿈이니 깸이니 하는 환상幻相도 없다. 혼미하여지거나 또는 무기성無記性도 아니면서 여여불변如如不變하는 것이다. 물아物我의 차별이 있다면 사람의 법法에 환혹幻惑된 것이고, 치우치는 데가 있다면 경계에 환혹된 것이며, 즐겨 하고 성내고 함이 있다면 정식情識에 환혹된 것이고, 사념思念함이 있다면 몽각夢覺에 환혹된 것이다. 환상幻相이란 변하는 것이고, 변하면 평등이 아니다. 평등이라는 것은 이理의 근본이다. 平等者 無偏無倚 無物無我 無喜怒之變 無夢覺之幻 非昏散非無記 而如如不變 有勿我則爲人法之幻有偏倚則爲境界之幻 有喜怒則情識之幻 有思念則爲夢覺之幻 幻者變 變則不平等 平等者理之本也 불교에서는 평등을 소중히 여긴다. 우주만유의 진여眞如의 본체는 평등하다고 설명한다. 평등이라 함은 치우치지도 않고 기울지도 않으며 물아物我의 차별도 없다. 즐거워하고 성내고 하는 변덕도 없으며, 꿈이니 깸이니 하는 환상幻像도 없는 것이다. 그 평등의 본성은 혼미하여져 흩어지거나, 선善도 악惡도 아닌 성질인 소위 무기성無記性도 아니다. 그리고 항상 참되고 한결같고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깨달음에 있어서 평등각平等覺을 얻으면 그것이 바로 정각正覺인 것이다. 만약 물物이니 아我니 하는 차별의 인식이 있다면 그것은 벌써 평등은 아니다. 차별이 평등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물아物我의 차별이라는 것은 인간의 인식에서 오는 환각幻覺일 뿐이다.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어진다는 것도 대경對境의 존재에 대하여 차별 의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매화를 난초보다 더 사랑한다거나 정취情趣가 국화보다 대나무에 더 기울어진다는 것은 벌써 매화니 난초니 국화니 대나무니 하는 가상假相에 환혹幻惑하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미 평등은 아닌 것이다. 즐겨 하고 성내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감정이 있다는 것은 집착하는 정식情識의 환각에서 오는 것이다. 이미 평등관은 아니다. 무엇을 사념思念한다는 것은 몽각夢覺의 환상 속의 일일 뿐이다. 환幻이란 것은 변하게 마련이다. 변하는 것은 평등이 아니다. 평등이라고 하는 것은 우주만유의 항구불변하는 법칙의 근본인 것이다. 불교가 탐구하고 있는 궁극의 경지는 진여眞如. 평등의 본체를 깨닫고 증득證得하는 것이다. 여기 옛 시 한 수를 옮긴다. 나무마다 나무마다 새 잎이 나고, 꽃이란 꽃은 다투어 옛 가지에 피네. 고향 천 리 반가운 소식 오늘에야 분명히 알았구나. 樹樹皆生新歲葉 花花爭發去年枝 故鄕千里喜消息 今日明明的的知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無相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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