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진보

[스크랩] ◆ 陳情表

시치 2007. 2. 13. 00:49

 

 

 

 

                          陳情表

                                                                     李密

      臣以險 , 夙遭愍凶, 生孩六月, 慈父見背, 行年四歲, 舅奪母志,

      祖母劉閔臣孤弱, 躬親撫養, 臣少多疾病, 九歲不行, 零丁孤苦,

      至于成立. 旣無叔伯, 終鮮兄弟, 門衰祚薄, 晩有兒息,

      外無朞功强近之親, 內無應門五尺之童. 煢煢  孑立, 形影相吊,

      而劉夙 疾病, 常在牀 , 臣侍湯藥, 未嘗廢離. 逮奉聖朝,

     沐浴淸化, 前太守臣逵, 察臣孝廉, 後刺史臣榮, 擧臣秀才,

     臣以供養無主, 辭不赴, 會詔書特下, 拜臣郞中, 尋蒙國恩,

     除臣洗馬, 猥以微賤, 當侍東宮. 非臣隕首所能上報. 臣具以表聞,

     辭不就職, 詔書切峻, 責臣逋慢, 郡縣逼迫, 催臣上道, 州司臨門,

     急於星火. 臣欲奉詔奔馳, 則以劉病日篤, 欲苟順私情, 則告訴不許,

    臣之進退, 實爲狼狽. 伏惟聖朝以孝治天下, 凡在故老, 猶蒙矜育,

    況臣孤苦特爲尤甚. 且臣少事僞朝, 歷職郞暑, 本圖宦達, 不矜名節.

    今臣亡國之賤 , 至微至陋, 過蒙拔擢, 豈敢盤桓, 有所希冀.

    但以劉日薄西山, 氣息奄奄, 人命危淺, 朝不慮夕. 臣無祖母,

    無以至今日, 祖母無臣, 無以終餘年, 母孫二人, 更相爲命,

    是以區區不能廢遠. 臣密今年四十有四, 祖母劉今九十有六,

    是臣盡節於陛下之日, 長, 報劉之日, 短也. 烏鳥私情, 願乞終養,

    臣之辛苦, 非獨蜀之人士, 及二州牧伯所見明知. 皇天后土實所共鑑,

    願陛下矜憫愚誠, 聽臣微志, 庶劉僥倖, 卒保餘年, 臣生當隕首,

    死當結草. 臣不勝怖懼之情, 謹拜表以聞.


   ☞ 解釋

      저는 불행하게도 일찍이 부모를 잃어, 생후 6개월 된 갓난 아이

       때 아버님과 사별하였고, 나이 네 살 때 외삼촌이 수절하려는

       어머니의 뜻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조모(祖母) 유씨(劉氏)께서

       제가 고아가 되고 몸이 약한 것을 불쌍히 여기시어,

       몸소 어루만지며 키워주셨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 병이 많아서

       아홉 살이 되어도 걷지 못하였고 외롭고 쓸쓸하게 홀로

      고생하면서 성인(成人)이 되었습니다. 가문이 쇠퇴하고 박복해서

      늦게 서야 자식을 두었으니, 밖으로는 기복(朞服)이나 공복(功服)

      을 입을만한 가까운 친척도 없고, 안으로는 문 앞에서 손님을

      응대할 어린 시동(侍童)하나 없습니다. 홀로 외롭게 살아가면서

      내 몸과 그림자가 서로 위로할 따름인데, 조모(祖母) 유씨(劉氏)

      도 일찍이 병에 걸려 늘 자리에 누워 계셨습니다. 저는 탕약을

      달여 올리며 한 번도 곁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지금의 조정을 받들게 되면서 맑은 교화(敎化)를 온 몸에 입고

      있습다. 전의 태수(太守)인 규(逵)는 저를 효렴(孝廉)으로서

      발탁하였고, 후에 자사(刺史)인 영(榮)은 저를 수재(秀才)로

      천거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모의 공양을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사퇴하고 부임하지 않았는데, 마침 조서(詔書)가 특별히

      내려져서 저를 낭중(郎中)으로 임명하였고, 얼마 안 있어 나라의 

      은혜를 입어 저에게 세마(洗馬)의 벼슬이 내려졌습니다.

      외람 되게도 미천한 몸으로 동궁(東宮)을 모시게되니, 제가 목을

      바친다해도 그 은혜를 다 보답할 수 없을 겁니다.

      저는 사정을 모두 아뢰는 표(表)를 올리고, 사퇴하여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다시 조서(詔書)를 내리시어 절실하고도

      준엄하게 제가 책임을 회피하고 태만함을 책망하고, 군(郡)과

      현(縣)에서는 다그쳐서 제가 길을 떠나도록 재촉하며, 주(州)의

      관리들도 문 앞에 와서는 성화같이 서두르고 있습니다.

      제가 조서(詔書)를 받들어 빨리 달려가고 싶지만, 조모 유씨의

      병환이 날로 위독하고, 구차하게 사사로운 정을 따르고자

      하소연해도 들어주지 않으니, 제가 벼슬길에 나아가야 하는지

      물러가야 하는지 참으로 낭패(狼狽)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지금의 조정은 효도로서 천하를 다스려서

      모든 노인들이 동정을 받아 양육되고 있습니다. 하물며 저는

      외롭고 고달픔이 남보다 더욱 심하니 말할 것도 없습니다.

      또한 저는 젊었을 때, 위조(僞朝)인 촉(蜀)나라를 섬겨 낭서(郎署)

      에서 근무하였습니다. 본래 출세하기를 바랐을 뿐, 명예나 절개도

      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지금 저는 망국의 천한 포로로서,

      지극히 미천하고 지극히 비루한데도 과분하게 발탁되니, 어찌

      감히 주저하며 바라는 것이 있겠습니까. 단지 조모 유씨가 마치

      해가 서산에 지려는 것처럼 숨이 끊어지려고 하여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우니, 아침에 저녁 일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조모가 없었더라면 오늘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며,

      조모께서는 제가 없으면 여생을 마칠 수 없을 터이니, 조모와

      손자 두 사람이 서로 목숨을 의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臣) 밀(密)은 금년에 나이 44세이고, 조모 유씨는 금년에

      연세가 96세입니다. 그러니 제가 폐하께 충성을 다 할 날은 길고,

      유씨께 은혜를 보답할 날은 짧습니다.

      까마귀가 어미 새의 은혜를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조모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만이라도 봉양하게 해 주십시오.

      저의 괴로움은 촉(蜀)의 인사(人士)들만이 아니라, 양주(梁州)와

      익주(益州) 두 주(州)의 장관들도 훤히 아는 것이며,

      천지신명께서 실로 모두 보고 있는 것입니다.

      원하옵건대 폐하께서는 어리석은 저의 정성을 가엾게 여기시어

      저의 작은 뜻을 들어주십시오. 제가 바라는 것은 조모 유씨께서

      다행히 여생을 끝까지 보존하게 된다면, 제가 살아서는 목숨을

      바쳐 충성하고, 죽어서는 결초보은(結草報恩)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두려운 마음을 이기지 못해, 삼가 절하며 표(表)를 올려

      아룁니다.

 

 

 

 

 

 




출처 : 파란하늘
글쓴이 : 강순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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