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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앙의 여섯단계

시치 2006. 8. 24. 11:08
 

신앙의 여섯 단계


인간이 살아가면서 신앙적으로 완전히 자라게 된다면 모두 6단계를 거친다.1)


전단계 : 첫 단계 들어가기 전의 단계 아닌 단계 -- 무분별적 신앙

이것은 갓난 아기가 배가 고프면 울고, 엄마가 와서 먹을 것을 주거나 안아주면 그냥 좋아하는 것처럼, 아직 지적 능력 같은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엄마나 다른 보호자에게 가지는 무조건적 신뢰의 단계, 아직 이분법적 사고가 생기기 전 단계.


제1의 단계 : 직관적 ․ 투사적 신앙

이 단계의 신앙은 2세에서 6, 7세 사이에서 나타나는데, 이 때 아이들은 상상과 환상의 세계에 살면서 이에 걸 맞는 믿음을 키워간다. 이 때 처음으로 자의식을 갖게 되고, 죽음과 성(性)과 금기 사항 등을 알기 시작한다.


제2단계 : 신화적 ․ 문자적 신앙

이 단계는 초등학교 학생들에게서 발견될 수 있는 것으로서,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이야기, 설화, 신화나 신앙내용이나 의식(儀式)을 받아들이되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는 단계이다. 아직 이런 것들의 상징적 뜻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이 이런 이야기가 말하는 것과 같이 문자적으로 이렇게 생기고 굴러간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자기는 착한 아이이기 때문에 싼타 할아버지가 와서 선물을 많이 주고 갈 것을 그대로 믿는 것이다.


제3단계 : 종합적 ․ 인습적 신앙

이 단계는 사춘기 때 형성되는 것으로서, 자기가 지금껏 문자적으로 믿어오던 자기 공동체의 이야기나 신앙내용, 의식(儀式)이 문자적으로만 받아들여질 때의 모순을 종합해주고 자기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종합적 ․ 인습적 신앙형태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는 아직도 독립적인 사고에 의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외적 권위에 의존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에 맞추려는 획일적 사고가 강하게 나타나고, 또 주어진 이데올로기에 따라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다. 그리고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 그것을 객관적으로 성찰해보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 소위 자기 교회에서 가르쳐 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수하겠다고 애를 쓰는 열성파 사람들 대부분은 이 단계에서 주저앉은 사람들이다.


제4단계 : 개성화와 성찰의 신앙

이 단계는 20대 중반의 청년기, 경우에 따라서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에서도 형성되는데, 자기 자신의 신앙 내용이나 가치관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하고 통찰하는 단계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이 이 단계에조차 이르지 못하고 한평생을 마치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제4단계는 아주 중요한 단계이다. 자기가 지금까지 속했던 그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집단이 주는 가치관이나 신앙내용이나 이데올로기에 그대로 안주하느냐, 혹은 자기 스스로 하나의 독립적 인격체로서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고와 태도를 가질 것이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게 되면 자신과 세계를 보는 눈이 새롭게 열리고, 지금까지 검토되지 않던 상징체계가 의미 있는 것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런 의미도 아직도 ‘의식(意識)’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남아 있다.


제5단계 : 접속적 신앙

이 단계는 주로 중년기 이후에 생기는 것으로서, 이분법적 양자택일이나 이항대립적 사고 방식을 넘어서서 ‘양극의 일치’를 받아들이게 되는 단계이다. 우리가 계속 말하는 ‘이것이냐 저것이냐(either/or)’의 ‘냐냐주의’에서 ‘이것도 저것도(both/and)’의 ‘도도주의’를 깨닫는 단계, 변증법적 사고, 대화적 태도, 역설적 논리를 이해할 수 있는 단계이다. 빛이 파장도 되고 입자도 된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한 가지 사물의 양면을 동시에 볼 줄 아는 마음이다. 자기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선입관으로 사물을 보는 대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마음이다. 내 편이냐 네 편이냐, 내가 어디에 속했느냐에 따라 각각 다른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 까지나 진리 자체가 전해 주는 것에 따라 소신을 가지고 말한다. 여기 제5단계는 의식(意識)의 영역을 넘어선 단계라는 면에서 앞에 나온 제4단계와 구별된다. 5단계에서는 의식과 무의식이 통합되는 단계이다. 진리란 단순한 일차방정식 같은 것이 아니라 다차원적이라는 것, 사물이 서로 얽히고 어울려 있다는 것, 교리나 상징체계 등은 어차피 궁극 실재에 대한 부분적 표현일 뿐이라는 것, 자기의 종교를 포함하여 모든 종교가 궁극실재와 비교할 때 상대적이라는 것, 따라서 모둔 종교가 서로 대화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것 등등을 발견하게 된다. 무엇보다 종교적 상징이나 의례가, 그것이 나의 것이든 다른 사람의 것이든, 깊이 이해될 때 진정으로 새로운 의미를 전해준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제6단계 : 보편화하는 신앙

이 단계는 극소수의 사람만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서, 자아를 완성한 이른바 성인(聖人)의 경지이다. 어떤 외적 걸림이나 거침이나 울타리에 구애되지 않는 자유와 무애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랑과 자비와 껴안음의 사람, 그러면서도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정의와 공평함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다.  -- 간디, 마틴 루터 킹, 테레사 수녀, 틱낫한, 달라이 라마 등 (한국에서는 혜공, 혜숙, 대안, 원효 같은 분들)


파울러의 주장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모든 사람이 이 여섯 단계를 다 거치는 것이 아니라고 한 사실이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는 어느 단계에서든지 더 이상 발달하지 않고 그대로 주저 앉고 말 수가 있다. 신앙의 여정에서 대부분의 북미 기독교인은 사실 제2단계나 제3단계에서 성장을 멈춰버린다고 했다. 교회의 권위를 절대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는 단계로 일생을 끝내는데, 사실 이 단계에 있는 사람을 교회는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교회로서는 권위에 도전하는 자주적 사고나 기존 질서와 가치에 도전하는 그런 믿음 같은 것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제도적인 교회, 제도적인 신학의 한계이다.

신앙은 발전하는 것이라고 본 이런 기본적인 견해를 피력한 대표적인 사람으로, 동양에서도 당나라의 종밀(宗密, 780 ~ 841)같은 사람이 있다. 그는 천당 지옥 같은 내세의 인과응보 사상이 주관심이 된 믿음을 ‘인천교(人天敎)’라 부르고 이를 가장 저차원적인 형태의 믿음이라 분류한 다음 신앙이 거기서 점점 발달하여가야 한다는 생각을 명쾌하게 논하고 있다. 종밀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이런 생각은 옛날부터 많이 있어 왔다.

이제 함석헌 선생의 말씀을 인용하며 이것을 마치고자 한다.

“신앙은 생장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 생장은 육체적 생명에서도 그 특성의 하나이지만, 신앙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그는 개체적으로나 종족적으로나 다 자람이 있다. 신앙에서 신앙으로 자라나 마침내 완전한 데 이르는 것이 산 신앙이다.”


※욕구단계설


욕구는 행동을 일으키는 동기의 요인이 된다. A. H. Maslow는 인간의 욕구는 병렬적으로 열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낮은 단계부터 그 충족도에 따라 높은 단계로 성장해간다고 주장했다. 이를 욕구단계설, 혹은 욕구 5단계설이라고 한다.

  5단계는 ①생리적 욕구(자고 싶거나, 먹고 싶어하는 등 인간이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 욕구), ②안전의 욕구(생명의 위험에 처한 때에, 이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욕구), ③귀속·애정의 욕구(사람에게 좋아하는 감정이나 사랑을 받고 싶어하거나, 집단에 소속되고자 하는 욕구), ④자존(존경)의 욕구(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존경받고 싶어하는 욕구), ⑤자기실현의 욕구(자아를 실현하고자 하고, 보람되게 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Maslow는 낮은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높은 단계의 욕구는 행동으로는 연결되지 않으며, 이미 충족된 욕구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사견) 불교적으로 보면 ⑥ 자기 초월욕구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듯 하다.

※ 규봉종밀의 원인론(原人論) -- 화엄경원인론이라고도 한다.

일심을 갖춘 모둔 중생들의 근원을 추구함.


불교의 옅은 교리로부터 깊은 교리에 들어가는 데에 대략 5가지 등급이 있다.

① 인천교(人天敎) = 유교, 도교, 기독교 : 초심자를 위하여 부처님께서 삼세의 선악 인과를 말씀하신 것. → 인과응보. 인간이나 천상에 나려고 노력함. 주체(理)와 대상(事)을 배타적이고 통하지 않는 것으로 긍정. 예) 나↔대상물, 이승↔저승, 사바↔극락, 인간세상↔천당

② 소승교(小乘敎) : 오온(색, 심)이 공한 이치는 드러내었지만, 그 근원인 무의식의 세계 즉 마나식, 아뢰야식을 들어내지 못했다. → 현재 자신의 탐, 진, 치만 없애려고 노력함. 주체는 부정하지만 근원적으로 대상물의 본질이 있다고 봄(원자론적임)

③ 대승법상교(大乘法相敎) = 대승권교(權敎, 방편) : 근원을 드러내었지만 아직도 주관(아뢰야식)의 관점에만 중점을 두고 있다. → 자신의 근원에만 집착함. 주체긍정=즉 초월적인 자아가 있다고 봄. 대상물의 본질은 부정.

④ 대승파상교(大乘破相敎) : 대승 ․ 소승의 모든 잘못 된 집착을 모두 파하여 진여의 세계를 드러냄. → 일체가 모두 공하다고 하면 그 공하다고 하는 아는 것은 무엇인가. 이 파상교는 집착하는 망정만을 쳐부술 뿐이요, 참으로 신령한 성품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주체, 대상 모두 부정→모든 것이 인연으로 생기는 것일 뿐이다.

⑤ 일승현성교(一乘顯性敎) : 일체 중생은 모두 본각진심(本覺眞心)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끝없는 옛적부터 오면서 상주하고 청정하며, 밝고 밝아 어둡지 않고 분명하게 비추어 항상 아나니 그를 불성(佛性)이라고 말하기도 하며, 또한 여래장이라고도 한다. 주체와 대상이 모두 서로 무애하고 조화롭게 상입하여 존재한다. 상즉상입(相卽相入) 상입 : 인드라망비유, 상즉: 씨앗과 나무의 비유.

그런데 끝없는 옛적부터 망상(妄想)이 그 진심(眞心)을 가리워서 스스로 깨달아 알자 못하고 범부의 바탕만을 잘 못 알고 있기 때문에, 몸에 집착하고 업을 지어 나고 죽은 괴로움을 받는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大覺) 그것을 가엾게 여기시어 “일체가 모두 공(空)했다”  고 말씀하시며, 또 “신령스러운 본각 진심은 그 청정하기가 모든 부처님과 똑 같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화엄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불자여, 어느 한 중생도 여래의 지혜를 갖추고 있지 않은 이가 없건마는 망상(妄想) 집착 때문에 그를 증득하지 못한 것이니 만일 그 망상을 여의면 일체지(一切智)와 자연지(自然智)와 무애지(無碍智)가 곧 나타나게 되리라” 하시고, 하나의 티끌이 대천경책(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일을 써 놓은 경)을 싸고 있는 비유를 드시었다. 티끌은 중생에 비유함이고, 경책은 부처님의 지혜에 비유함이다.

그 다음에 또 말씀하시기를 “그때에 여래께서 법계의 일체 중생을 널리 관찰하시고 이러한 말씀을 하셨다. “기이하고 기이하다. 이 모든 중생이여, 여래의 지혜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어찌 미혹하여 보지 못하는가? 나는 마땅히 그들을 성도(聖道=팔정도의 수행)로써 가르쳐 주어 그들로 하여금 망상을 영원히 떠나게 하고 저절로 자신의 몸속에서 여래의 광대한 지혜를 얻어 보게 하여 부처님과 더불어 조금도 다름이 없게 하리라“고 하셨다.


수행 : 얻고 이루는 것이며 찾는 것이 아니다. 버리고 쉬고 깨어있고 마음챙겨 알아차림이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그 경이로운 것들과 만날 때 그것들은 저마다 최고의 화려한 모습(諸法實相)을 드러낸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자신의 고통과 마주할 때, 우리는 이미 그것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예) 아이가 거실에서 운다.→엄마가 두팔로 다정하게 껴안는다→엄마의 사랑과 애정의 마음이 전달→울음을 거침.

깨어 있는 마음은(잡념이 없는 마음, 무심, 무념의 경지) 그대가 고통스러울 때마다 그대를 보살펴 주는 엄마와 같다.

분노와 증오의 마음은 사랑이 결핍된 마음이다. 자신에게 사랑을 주어야 한다.

외로움은 닫힌 마음이다. 자신을 세상에 열어두지 않고 고립시킨 것이다. 모든 것은 무한히 열여 있다. 그대 자신의 마음을 열라. 온 대지와 숲과 공기와 우주가 다 너의 벗이다.


1) 파울러,『신앙의 단계』하버드 대학을 거쳐 지금 에모리 대학교수로 있음.


출처 : 옥련암
글쓴이 : 산빛노을(원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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