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24년 <경상일보,경남도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시치 2024. 1. 10. 20:56

솟아오른 지하/황주현

몇 겹 속에 갇히면

그곳이 지하가 된다

425분의 지상이 감쪽같이 426분의 지하에 세상의 빛을 넘겨주는 일, 언제부터 서서히 시작되었을까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아주 천천히 지상의 지하화가 도모되었을까 땅을 판 적도 없는데 다급한 말소리들은 지표면 위쪽에들 있다 조금 전의 당신의 양손과 두 볼이, 주름의 표정과 웃음이, 켜켜이 쌓인 말들이 들춰지고 있다 기억과 어둠이 뒤섞인 지상은 점점 잠의 늪으로 빠져드는데 누구도 이 어둠의 깊이를 짐작할 수 없다

몸이 몸을 옥죄고 있다 칠 층이 무너지고 십오 층이 무너졌다 그 사이 부서진 시멘트는 더 단단해지고 켜켜이 쌓인 흙은 견고하게 다져졌다 빠져나가지 못한 시간이 꽁꽁 얼어붙는 사이 아침과 몇 날의 밤이 또 덮쳤다 이 깊이 솟아오른 지하엔 창문들과 쏟아진 화분과 가느다랗게 들리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뒤섞여 있다 뿔뿔이 서 있던 것들이 무너지며 모두 하나로 엉킨다

이 한 덩어리의 잔해들은 견고한 주택일까 무너진 태양은 나보다 위쪽에 있을까 부서진 낮달은 나보다 아래쪽에 있을지 몰라 공전과 자전의 약속은 과연 지금도 유효할까? 왁자지껄한 말소리들이 하나둘 치워지고 엉킨 시간을 걷어내고 고요 밖으로 걸어 나가고 싶은데

백날의 잔해가 있고 몸이 몸을 돌아눕지 못한다

검은 지구 한 귀퉁이를 견디는 맨몸들,

층층이 솟아오르고 있다

[심사평]재난 현장을 과격하지 않고 따뜻하게 파헤쳐

 

예심을 거쳐 열 세 분의 시들이 보내졌다. 어떤 분이 되어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그중 한 분만 선()하라는 임무이니 악역인 셈이다. 읽어나가다 보면 그냥 내려놓게 되는 시들과 거듭 읽게 되는 시편들로 나뉜다. 이번에는 조금 천천히 또다시 읽어가다 하나씩 내려놓게 된다. 그 기준이란 게 있다면 쓴 분의 마음이 읽을수록 점점 더 명징하게 드러나는 시들이다. 그 글 속 마음이 우리네 삶의 맨살결이라고 불릴 만한 실감으로 다가오게 되면 끝까지 내려놓을 수 없게 된다.

올해의 당선작은 솟아오른 지하. 재난의 현장을 차분한 시선으로 파헤친다. 그러나 과격하지 않다. 견고하게 질서 짓는 문장은 문학적 수련의 깊이를 짐작케 하고 그 시선의 따뜻함은 문학의 역할에 대해서도 깊이 사유한 흔적이다. ‘솟아 오르고 있는 감염된 권력과 성장의 이면에 도사린 검은 재난(지하)의 그림자는 지금 우리의 내외면의 강렬한 은유로 읽힌다.

끝까지 견준 작품은 거울 일지외와 향기로운 못외 등의 응모자였다. 운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 쓰시리라. -장석남 시인

[당선 소감]황홀한 불면을 당분간 즐기고 싶다

​​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 시를 반역한 죄로/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김수영 구름의 파수병’)는 아직도 산정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 자신이 없었다. 날아가는 제비를 바라보며 외롭고 쓸쓸했으나 그마저도 부끄러운 저녁은 불을 켜지 못했다. 시로서 고백하고 시로서 반성하고 시로서 다시 꿈꾸는, 시와는 반역된 생활은 누추하고 게을렀지만, 때론 치열했다.

너무 치열해서 자주 허기졌던 불혹의 변두리에서 시도 굶었다. 시와 각방을 쓴 20년의 세월이 통째로 훅 직선으로 지나갔다. 어둡다기보다 캄캄한 저녁은 몸 뉘기에 바빴다. 사방 흙벽이 조금씩 햇빛의 두께만큼의 유리창으로 갈아 끼워지는 동안 몸은 고단한 필체로 시()를 써댔을까. 오래 굶었는지 시는 군불을 때면 혓바닥으로 춤추는 굴뚝의 연기처럼 반응했다. 그렇게 다시 짓는 사람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바짝 들어간 힘을 빼고 키 낮은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며 골방의 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시의 골방은 불면으로 환해서 바깥 풍경들이 그대로 내게 들어와 목판화 속처럼 돋을새김 되곤 할 것이다. 이 황홀한 불면을 당분간 즐기고 싶다.

오랜 식구 같은 화성문협문우들과 시의 꼬인 덤불을 쉽게 풀어주신 윤석산 시인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풍산초 43기 벗들과 지겹도록 어깨동무하고 있는 안동 경안고 문우회와 맥향문청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경상일보 신춘문예를 열어주신 분들과 솟아오른 지하에 따뜻하게 손잡아 주신 심사위원들께 두고두고 영원히 진심으로 감사한 맘 아끼지 않겠습니다. 불러 본 기억이 없는 내 이름도 불러 봅니다. “주현아 고맙다.”

                                                                                                           황주현:경북 안동 출생, 화성문인협회, ‘동인

 

2024년 경남도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

화살표의 속도는 / 황주현

 

걷고 달리고 날아가는 속도다 화살표는 정지해 있으면서도 계속 이동 중이지만 뒷걸음질 치는 기능이 없다

 

화살표에서는 왜 짐승의 울음소리가 날까

 

궤적에서 공격성이 자란다 사활을 건 뾰족한 모양이 머리인지 입인지 코인지 궁금해 한 적 없지만 그것이 가끔 말을 하거나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기도 한다

 

화살표는 계속 어디론가로 날아가고 도망가고 사라지려 한다 몇몇 동물들은 그런 표와 비슷한 외모를 노력 끝에 얻었지만 지금은 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다

 

화살표를 발명한 사람들

혹은 진자운동처럼 00 사이에거 태어나고

그 사이를 무한 반복한다

 

꼬리에 두느냐 머리에 두느냐를 고민하는 동안은 이미 한참이나 날아 온 거리다 어떤 사람에게선 이미 녹이 슬거나 그 끝이 뭉툭해진 화살표가 무더기로 발견되고 또 어떤 사람에겐 마치 새싹처럼 이제 막 돋는 일도 있다

 

빗나가는 과녁을 가진 것들도 많겠지만

명중이라는 끝을 두고 있다

공중에 초록을 박아 넣고 이리저리 여진을 앓고 있는

저것들, 혹은 그것들

 

지금도 화살표를 가로 막거나 되돌려 놓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단체가 있을지도 모른다 화살표를 조종하는 또 다른 화살표를 개발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지만

 

여전히 화살처럼 관통하는 날이다

 

 

 

심사평:일상적 언어로 깊은 울림의 사유 이끌어내

 

경남도민신문 신춘문예 응모작 가운데 예심을 통과해서 올라온 작품은 일정한 수준에 이른 작품이 많았다. 신춘문예 작품의 성향과 경향을 대변했던 난해하고 실험적인 작품보다는 독자와의 소통도 염두에 둔 작품이 많았다.

 

전체 응모자 263명이 보내온 작품 1338편 중 1차 예심과 2차 예심을 거쳐서 올라온 작품은 모두 26편이었는데 최종 후보작은 세 편이었다. 황주현의 화살표의 속도’, 00밑줄의 강도’, 00국수광합성이다.

 

00밑줄의 강도에서는, 강조하기 위해 그어놓은 밑줄이 가지는 힘을 얘기하고자 했다. 유의미한 밑줄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부정이거나 함정일 수도 있다. 그것을 피하려다가 낭패하거나 좌절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사회가 강제하는 규범이나 프로파간다가 그 밑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밑줄의 순작용과 함께 그 모순과 부작용을 그려내려고 한 작품이다. 자유연상에 기초하여 이질적인 소재와 관념을 유연하게 넘나드는 언어사용이 돋보인다. 구어체의 자연스러운 사용도 화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시적 진술들이 하나의 유의미한 질문으로 완성되거나 어떤 유기적 의미망으로 입체화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직소퍼즐 윌리를 찾아라에서 너무 많은 윌리가 아닌 것을 소거해야만 윌리에 이를 수 있는 것처럼, 시의 중심에 닿기 전에 너무 많은 허들을 지나야 한다. 개인적 언어사용이 독자와의 소통에 장애가 되지 않는 지점을 잘 찾아내면 충분한 성장의 가능성이 보인다.

 

00국수광합성도 심사위원들의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광합성은 식물이 그 생명을 에너지를 얻기 위해 햇빛을 매개로 한 화학반응이다. 마찬가지로 화자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얻는데 여기서는 국수가 그 매개로 등장한다. 분열된 자아를 하나로 화해시키는 작용을 한다. 국수는 일종의 치유를 위한 레시피이다. 전체적으로 매끄러운 흐름을 유지하면서 화해라는 메시지가 성공적으로 드러나지만, 한편 그 점이 이 작품의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비격식체인 해요체종결어미라든지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순조롭게 화해에 이르게 하는 방식이 긴장감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함께 제출한 무지개 고래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시가 품고 있는 따뜻함이나 안온한 정서가 매우 잘 드러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적이지 않다는 점은 신인에겐 흠결일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황주현의 화살표의 속도에 심사위원들의 집중적인 관심이 모였다. 도로 위나 공사장 벽 지하철 계단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화살표에서 간단하지 않은 사유를 이끌어내는 힘이 만만치 않다. 화살표 그 자체는 움직이지 않지만 움직이게 한다. 걷거나 뛰거나 날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문명을 가리킬 때는 공격성을 가진 짐승이 된다. 그 속성으로 보아 욕망이라 이름해도 좋을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문명, 혹은 욕망의 기표라 해도 무방하다. 계속 움직여야 하는 생래적 운명 때문에 사라지거나 멸종하기도 한다. 그러나 없음0과 없음0 사이에서 무한 재생산된다. 뒷걸음질 치는 기능이 애초부터 제거되어 있는 이 화살표로부터 반성 없는 문명의 운명을 생각하게 된다. 여전히 화살처럼 관통하는 날이다. 정작 아픔에 대해서 말한 바 없지만 치명적인 관통상으로 우리는 앓고 있다.

 

작위적 언어 조합으로 생경한 이미지를 창출하는 대신 관절이 유연한 일상적 언어로 깊은 울림의 사유를 이끌어낸다. 한 줄기로 꿰어지는 서사가 없어도 느낌과 의미의 입체적 재구성에 문제가 없다. 통찰의 힘이 느껴지는 시다.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도 고른 질을 유지하고 있다. ‘우산이라는 계절, 가령 우산이라는 발명된 문명의 도구가 거꾸로 본래 있었던 계절을 환기하고 인간의 의식과 언어를 규정하기 이르게 된다는 내용이다. 본말이 전도된 모순적인 현상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황주현의 작품은 실험적인 시들이 가지고 있는 소통을 소홀히 여기지 않으면서 깊은 의미의 울림을 가진 시를 쓸 역량으로 평가된다. 이에 심사위원 전원은 화살표의 속도를 당선작으로 선정하기로 하였다.

심사:강희근(위원장),복효근(심사평), 박우담, 김성진, 채수옥

 

 

당선소감:고교 문예반 활동으로 글쓰기 시작

 

당선입니다라는 수화기 너머 목소리에 그다음 말을 놓쳤다.

그 짧은 찰나는 시의 연과 연 사이만큼 가늠하기 어려운 여백이었고 행간에 던져진 쉼표의 행렬 같은,

 

살면서 이렇게 준비 안 되는 일도 생기다니.

살면서 또 이렇게 기습적으로 벅찰 수도 있다니.

끈질기게 시()를 놓지 않은 시간에 대한 시()의 의리 있는 화끈한 화답이었다.

신춘이 지구의 온난화를 부추기고 있는 것인가.

뜨겁다 못해 얼어붙은 몇 날 며칠 내 몸에 더운 꽃들이 피었다 지기를 반복했다.

봄의 화살이 너무 일찍 당도했다.

 

화살표는 지나온 시의 계절 쪽으로 좌회전, 우회전, 돌아가시오로 끊임없이 방향을 틀고 있었다. 나의 심상은 오래도록 한곳에 정차하지 못했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나를 끌고 다니고 가끔은 몰아붙이고 또 가끔은 던져두고 사라지곤 했다.

행방이 묘연한 시의 궁핍이 어딜 가서 진득하게 노숙할 수 있었겠나.

치열하게 먹고 사는 일로 나의 화살표는 시의 마을엔 자주 연착이었지만 어김없이 안개 걷힌 맑은 새벽에 당도하여서는 또 환한 출발이 되곤 하였다.

 

신춘문예라는 네 글자는 고유명사도 아니고 형용사도 아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떨려서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싱싱한 동사다. 포장 안 된 자갈밭과 함부로 꽃 피지 않는 모래밭을 맨발로 뛰어가고 있다.

어느 시인의 말씀처럼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쓰면아직은 쓸만한 무소의 심장이다, 그 심장을 심심치 않게 놀릴 생각에 마음이 바빠진다.

 

신춘을 활짝 열어 주신 경남도민신문과 화살표의 속도에 따뜻한 손을 잡아 주신 심사위원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지금까지 삼시세끼 꼬박 밥을 갖다 바치는 내 안의 해인 순흥 안씨 미경!,

최고로 미안하고 고맙다.

윤서, 정후는 나의 예측의 별이다.

 

꽉 찬 배추 속구배이 같은 시퍼런 지원군인 나의 칠 남매 형과 누나들, 이 모든 나의 가족이 진정 내겐 영원한 신춘임을 자랑하고 싶다. -황주현

 

[인터뷰]

시는 세상을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 공감의 속도가 짧은 시를 쓰고 싶어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경기도 수원에서 자영업(생활용품 전문할인점 다팜 아울렛대표)을 하고 있는 황주현입니다. 화성문인협회 회원으로, 그리고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신춘문예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소감이 어떠신지.

당선 연락을 받고 한 3일간은 믿기지 않았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신춘문예를 도전했습니다. 목표는 최종심에 한곳이라도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후년에 딱 한 번만 더 도전할 요량으로 욕심을 비웠습니다. 일주일쯤 지나니 당선이 현실적으로 와 닿았습니다. 누군가에게 당선 소식을 전하고 싶은데 참는 게 쉽진 않았습니다. 어떤 좋은 일이든 행운이 늘 몇 몫을 한다는 생각과 결과는 겸손하게 받아들이자는 지론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에 감사했습니다.

 

-당선작인 본인의 시에 대해 간단히 소개 바랍니다.

당선작 화살표의 속도는 주위에 숱하게 있는 화살표 얘기입니다. 화살표를 통해서 무의식의 세계가 늘 습관과 통념으로 길들여진 의식의 세계를 지배하는 일상의 한 단면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매장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화살표가 어떤 장소와 위치와 경로를 통제하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객분은 화살표를 본능적으로 믿고 따르고 있지만 이면에 화살표를 부정하고 의심하고 거슬러 가는 특이한 현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현상들을 발견하면서 화살표가 우리들의 일상에 투철한 기능과 역할이 분명 있지만, 역으로 화살표에 철저히 구속된 나약한 인간의 한 단면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요.

세상의 모든 기호나 문자는 인간의 편리성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입니다. 그러나 그 도구들은 단순히 그들만의 보편적인 역할에 그치질 않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진화하고 발전합니다. 그 진화와 발전의 속도만큼 그것을 활용하는 인간의 기능과 판단과 인지는 좁아지고 상실되어 가고 있다는 현실을 자각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시를 처음 쓴 게 언제였나요?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경북 안동에 소재한 경안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문예반 특활활동을 하면서 글쓰기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안동 시내 여섯 개의 남자고등학교 학생으로 이루어진 학생문학써클 맥향에 가입하면서 공부보다는 글쓰기에 재미를 붙인 것 같습니다. 정기적인 시화전과 낭독회, 그리고 학교 교지 편집위원을 하면서 글 쓰는 친구들과 어울렸고 그때 함께 했던 선후배들이 지금 문단에서 열심히 자기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이영광 시인, 피재현 시인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대략 발표하거나 보관하고 있는 시가 몇 편 정도나 되나요? 그중 대표적인 시나 특별히 아끼는 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네 좀 더 기다림이 필요하거나 수시로 들여다보고 정을 붙일 시들은 30여 편 됩니다. 그리고 나름 탈고된 작품을 첫 시집으로 엮어도 무방한 작품들은 100여편 되고요. 특별히 애정이 가는 시는 올해 예천내성천 전국문예공모전 대상작인 고평역 가는 길과 경북문예공모전 최우수작인 경북선 물소리 배차 시간표입니다. 경남도민신문 신춘당선작인 화살표의 속도도 이제 저의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시를 쓸 때 주로 영감은 어디에서 찾고 시상(詩想)은 어디서 얻는 편인가요.

딱히 어떤 상황이라기보다 일상에서 언제든 무시로 오는 것 같습니다. 시선이 오래 머물거나 다시 뒤돌아보게 되는 어떤 지점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 살아가면서 잔상으로 남아 있거나 표현하지 않았던 날것들이 많습니다. 그럴 땐 즉시 핸드폰에 한 줄이든 두 줄이든 아니면 한 단어라도 메모해 저장합니다. 아주 강하게 나를 건드리고 놓아주지 않는 어떤 무거운 감정이 솟을 때는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한 편의 시가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시들은 완성도는 좀 덜하지만 투박한 그대로가 좋아 그냥 그대로 탈고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시를 쓰는 데 있어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그리고 기억에 남는 분의 시가 있다면 누구였을까요?

영향을 주신 분은 제가 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의 부재는 뭔가를 긁적이게 했습니다. 뭔가 긁적인다는 행위는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글쓰는 습관이 만들어졌고 자유롭고 조금은 각별한 나만의 세계를 만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셨던 윤석산 시인님은 오래도록 제게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는 아버지 같은 분이십니다. 최근에 가장 기억에 남는 시편들은 8년 만에 낸 안도현 시인님의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 둘 수 있게 되었다에 수록된 거의 모든 시들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시를 쓰는 일이 자신에게 가장 큰 힘이 된 순간은 언제인가요.

살다가 넘어졌을 때입니다. 용케 그때 가져다 썼습니다. 먹고 사는 일에 치여 한 20여 년 동안 시를 외면했지만 늘 시는 제 언저리를 맴돌아 주었습니다. 제게 있어 시의 덕목은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시란 어떤 것일까요.

먼저 놀라운 사유의 발견이 있는 시입니다. 생소한 경험이지만 낯설지 않은 시입니다. 내 얘기가 아니었지만 내 안으로 들어와 똬리를 트는 시, 그런 시의 중심에는 늘 사람이 내려다 보거나 올려다봅니다. 결국,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시라는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 좋은 시라는 것은 제가 쓰고 싶은 시이기도 합니다.

 

-시인에게 시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시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거울 앞에 서면 매번 다른 내가 그곳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거울 속으로 빠지기고 하고 겹겹의 거울 속에 나를 기록하기도 합니다. 표정으로 쓰는 일기 같은요. 단 하루도 세상은 같은 날이 없습니다. 매번 다른 날씨들은 세상의 표정을 읽습니다. 시는 낮고 높고 쓸쓸하고 무겁고 어둡고 차가운 곳에 유난히 오래 머물다 갑니다. 그런 날은 세상의 거울이 아주 두꺼워야겠지요.

 

-시인 등단을 꿈꾸는 많은 예비 시인들이 있습니다. 그분들께 선배로서 조언해 주고 싶은 점이 있다면?

이 질문에 대해서는 그다지 할 말이 없습니다. 전 늦깎이 신춘신인이고요. 이제 막 시작입니다. 함께 손잡고 가는 거죠. 제 경험으로 비추어보아 굳이 한 말씀 드린다면 끝까지 시를 손에서 놓지 마세요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나요.

공감의 속도가 짧은 시를 쓰고 싶습니다. 시 한 편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는 시보다는 공감대의 평수가 좁은 다락방 같은 시, 그리고 다시 그 시를 만났을 때 조금 더 오래 머물러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 결국 독자가 함부로 주인이 되는 시를 쓰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형하선기자·사진/이용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