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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시치 2022. 7. 16. 01:30

형가

한글 번역문

[  ]

형가는 위()나라 사람이다. 그의 선조는 제나라 사람으로, (뒤에 형가가) 위나라로 옮겨가자, 위나라 사람들은 그를 경경()이라고 불렀고, 연()나라로 가자 연나라 사람들은 그를 형경()이라고 불렀다.

형경은 독서와 검술을 좋아해, 그 솜씨로 위원군()에게 유세했으나 위원군이 (그를) 쓰지 않았다. 그 후 진()나라가 위()나라를 쳐서 동군()을 설치하고 원군의 친족을 야왕()으로 옮기게 했다.

형가는 일찍이 떠돌아다니다 유차()를 지나게 되었을 때 갑섭()과 검술에 대해서 논했는데, 갑섭이 성을 내며 그를 노려보았다. 형가가 나가버리자, 어떤 사람이 형경을 다시 부르라고 말했다.

갑섭이 말하기를 “얼마 전에 내가 그와 검술을 논하다 걸맞지 않은 것이 있어서 내가 그를 노려보았소. 시험 삼아 가보시오, 그는 떠나버렸을 것이오. 감히 머무르려고 하지 않을 것이오.”라고 했다. 사람을 시켜 (형가가 머물렀던) 주인에게 가보게 하니, 형경은 이미 수레를 타고 유차를 떠나고 없었다. 사자가 돌아와서 이를 아뢰자, 갑섭이 말했다. “당연히 떠났을 것이오. 내가 지난번에 그를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으니 말이오!”

형가가 한단()에서 떠돌아다닐 때, 노구천()이 형가와 장기를 두었는데, (장기판의) 길을 다투다가 노구천이 성내어 그를 꾸짖자, 형가는 아무 말없이 달아났고, 그리하여 다시 만나지 않았다.

형가는 연나라로 가서 연나라의 개백정과 ‘축()’을 잘 타는 고점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형가는 술을 즐겨 날마다 개백정, 고점리와 연나라의 저자 거리에서 술을 마셨다. 술이 얼큰해지면 고점리가 ‘축’을 타고 형가는 그 소리에 맞추어 저자 가운데서 노래를 부르며, 서로 즐기기도 하고 뒤 이어 서로 울기도 했는데, 마치 옆에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형가는 비록 술꾼들과 사귀었지만, 그의 사람됨은 침착하고 글 읽기를 좋아했다. 그가 제후들에게 떠돌면서 모두 현인이나 호걸 장자와 사귀었다. 그가 연으로 가자, 연의 은사() 전광()선생 역시 그를 잘 대우했는데,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아서였다.

얼마 뒤에, 마침 연나라의 태자단()이 진()나라의 인질로 있다가 달아나 연나라로 돌아왔다. 연나라의 태자단은 일찍이 조()나라의 인질이 되었는데, 진나라의 왕 정(, 훗날 진시황)은 조나라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단과 사이가 좋았다.

정이 즉위해 진나라의 왕이 되자, 단은 진나라의 인질이 되었다. 진나라의 왕이 연나라의 태자단을 잘 대우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단은 원망하고 도망쳐 돌아왔다. 돌아와서 진나라의 왕에게 보복하려고 했으나, 나라가 작고 힘으로 할 수 없었다. 그 후 진나라는 날마다 산동() 지역으로 출병해 제·초·삼진()을 치면서 제후국의 땅을 조금씩 잠식하면서 장차 연에 이르려고 하자 연나라의 왕과 신하가 모두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했다.

태자단이 그것을 걱정하고 그의 스승 국무()에게 물었다. 국무가 대답해 말하기를 “진나라의 영토는 천하에 고루 미쳐 한·위·조나라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감천()·곡구()의 견고함이 있고, 남쪽으로는 경하()·위하()의 비옥함이 있으며, 파()·한중()의 풍요로움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농()·촉()의 산이 있고, 왼쪽에는 관()·효()의 험준함이 있습니다. 백성들은 수가 많고 병사들은 패기가 넘치며, 무기와 장비도 넉넉합니다. 진나라가 쳐들어올 뜻이 있다면, 장성()의 남쪽과 역수()의 북쪽은 안정될 수 없습니다. 어찌 능멸을 당했다는 원한으로 진나라 왕의 노여움을 사려고 하십니까?”라고 말했다.

단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소?”라고 하자, “깊이 도모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얼마 뒤에, 진나라의 장군 번오기()가 진나라의 왕에게 죄를 짓고 연나라로 망명하자, 태자는 그를 받아들여 살게 했다. 국무가 간하기를 “아니 됩니다. 저 포악한 진나라의 왕이 연나라에 대해 원한을 쌓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오싹해지기에 족합니다. 또 번장군이 연나라에 있다는 소문을 듣는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이는 ‘고기를 굶주린 호랑이가 다니는 길목에 던져놓는 것’으로 화를 반드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록 관(, 관중)·안(, 안자)이 살아 있다고 해도 대책을 세울 수 없을 것입니다. 태자께서 빨리 번장군을 흉노()한테 보내어 구실을 없애도록 해주십시오. 서쪽으로는 삼진()과 맹약을 맺고, 남쪽으로는 제·초나라와 연합하며, 북쪽으로는 흉노의 선우()와 친교를 맺으십시오. 그런 뒤에 비로소 진나라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태자가 말했다. “사부의 계책은 너무나 오랜 시간을 요합니다. 마음이 어지러워 잠시도 견딜 수가 없습니다. 단지 그뿐만이 아니라, 저 번장군은 천하에서 궁하고 어렵게 되어 나에게 몸을 의탁했습니다. 나는 강한 진나라의 협박 때문에 슬프고 가련하게 된 친구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 흉노에게 보낸다면 그것은 진실로 저의 명이 끝날 때입니다. 스승께서 다시 고려해주십시오.”

국무가 말했다. “무릇 위태로운 일을 행하고 편안함을 구하려 하거나, 화를 만들면서 복을 구한다면, 계책은 얕아지고 원망은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 명의 새 친구와 교제하기 위해서 국가의 커다란 피해를 돌보지 않는다면, 이는 이른바 ‘원한을 쌓아 화를 조장하는 것’이 됩니다. 기러기 털을 화로의 숯불 위에 그슬린다면, 당연히 한순간에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또한 독수리나 매처럼 사나운 진나라가, 원망이 가득해 흉포한 노여움을 터뜨린다면, 어찌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연나라에 전광()선생이 계시는데, 그의 사람됨은 지혜가 심원하고 용감하고 침착하니, 함께 의논할 만합니다.”

(그러자) 태자가 말했다. “스승의 주선으로 전광선생과 사귀고 싶었는데, 그럴 수 있겠습니까?” 국무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국무가 나가서 전광선생을 만나보고 말하기를 “태자께서 선생께 나랏일을 의논하고 싶어 하십니다.”라고 했다. 전광이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마침내 태자를 만나러 갔다.

태자는 전광을 나아가 맞이하고 뒤로 물러서면서 전광에게 길을 인도하더니, 무릎을 꿇고 (전광이 앉을) 자리를 털었다. 전광이 자리에 앉자, 좌우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윽고) 태자는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의견을 청했다. “연나라와 진나라는 양립할 수 없으니, 선생께서 유념해 주시기를 바라오.” (그러자) 전광이 말하기를 “신이 듣기로는, 준마가 기운이 왕성할 때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리나, 노쇠하면 둔한 말도 그것을 앞선다고 합니다. 지금 태자께서는 제가 왕성할 때의 일만 들으시고, 저의 정력이 이미 다 사라진 것은 모르십니다. 비록 제가 감히 나랏일을 도모하지는 못하지만, 저와 잘 지내는 형경()이 쓸 만합니다.”라고 했다. 태자가 말했다. “선생을 통해서 형경과 교제를 맺고 싶은데, 가능하겠소?” 전광은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즉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나갔다.

태자가 문까지 배웅을 하며 경계의 말을 했다. “제가 말한 것이나 선생이 말한 것은 나라의 큰일이니, 선생께서 누설하지 말아주십시오!” 전광이 고개를 숙이고 웃으며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전광은) 몸을 굽히고 가서 형경을 만나서 말했다. “내가 당신과 친하게 지냄은 연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소. 지금 태자가 내가 한창이던 시절의 일만을 들었을 뿐, 내 몸이 이미 미치지 않음을 모르고, 황송하게도 내게 하교해 ‘연나라와 진나라는 양립할 수 없으니, 선생께서 유념해 주시오.’라고 하셨소. 나는 마음속으로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지 않고, 당신을 태자께 추천했으니, 당신이 왕궁으로 가서 태자를 뵙기를 바라오.”

형경이 말했다.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이에) 전광이 “내가 듣기로, 덕행이 있는 자는 일을 행함에 남에게 의심을 품게 하지 않는다고 했소. 지금 태자께서 내게 ‘말한 것은 나라의 큰일이니, 선생께서 누설하지 마시오.’라고 했소. 이는 태자가 나를 의심한 것이오. 무릇 행할 때 남의 의심을 받는 것은, 절개 있고 의협심 있는 행동이 아니오.”라고 말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형경을 격려하려 한다고 하면서 말하기를 “그대가 어서 빨리 태자에게 가서 전광은 이미 죽었다고 말하여 일이 누설되지 않았음을 밝혀주시오.”라고 하고는 이내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형가상진시황 암살 사건의 주역 형가

형가가 곧 태자를 뵙고 전광선생은 이미 죽었다고 말하며 전광의 말을 전했다. 태자는 두 번 절하고 무릎을 꿇고, 무릎걸음으로 나아가며 눈물을 흘리더니, 잠시 후에 말했다.

“내가 전광선생께 말하지 말라고 경계한 것은 큰일을 이루고자 했기 때문이었소. 지금 전광선생이 죽음으로써 누설하지 않음을 밝혔는데 (그것이) 어찌 나의 마음이었겠는가!”

형가가 자리에 앉자, 태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전광선생은 내가 어질지 못함을 모르고, 내게 그대를 만나 감히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니, 이것은 하늘이 연을 불쌍히 여겨 나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오. 지금 진나라는 이익을 탐하는 마음이 있어, 그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소. 천하의 땅을 다 빼앗고 천하의 왕들을 신하로 삼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않을 것이오. 이제 진나라는 이미 한()나라의 왕을 사로잡고, 그 땅을 전부 거두었소. 또한 군사를 일으켜 남쪽으로는 초나라를 치고, 북쪽으로는 조나라까지 임박했소. 왕전()이 수십만 대군을 거느리고 장()과 업()으로 갔으며, 이신()은 태원()과 운중()으로 출병했소. 조나라는 진나라를 지탱할 수 없어 반드시 (진나라로) 들어가 신하가 될 것이고, (조나라가 진나라로) 들어가 신하가 되면 그 화가 연나라에 미치게 되오.

연나라는 작고 약해 여러 차례 전쟁으로 곤궁을 당했는데, 이제는 온 나라를 헤아려도 진나라를 감당할 수 없소. 제후들이 진나라에 복종하고, 감히 합종하려는 자가 없소. 나의 개인적인 계책으로는, 천하의 용사를 얻어 진나라에 사신으로 파견해, 커다란 이익을 미끼로 내세우는 것이 좋을 듯하오. 진나라의 왕이 탐욕스러우니 그 형세는 반드시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 것이오. 만일 진나라의 왕을 위협해, 제후들에게서 빼앗은 땅을 모두 돌려주게 한다면, 이는 조말()이 제환공에게 했던 바와 같이 가장 좋은 일이 될 것이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를 찔러 죽여야 하오. 저 진나라의 대장들은 밖에서 군사를 통솔하고 있어 내부에서 난이 발생한다면, 임금과 신하가 서로 의심을 하게 될 것이니, 그 사이에 제후들이 합종한다면, 반드시 진나라를 깨트릴 수 있소. 이것이 나의 가장 큰 바람이나, 이러한 사명을 맡길 만한 사람을 모르고 있으니, 오직 형경()이 유념해주기 바라오.”

한참 후에, 형가가 말하기를 “이는 나라의 큰일입니다. 신은 어리석고 재주가 없어 그러한 사명을 맡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태자가 앞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사양하지 않기를 굳게 청했고, 그런 뒤에 (형가는) 허락했다.

그리하여 형가를 높여 상경()으로 삼고, 상등 관사에 머물게 했다. 태자가 날마다 관사로 가서 태뢰(, 소·양·돼지)가 갖추어진 음식을 접대하고, 진기한 물건들을 간간이 주었다. 또한 수레·말·아름다운 여인 등을 보내 형가가 하고자 하는 바를 마음대로 하게 하면서 그의 마음을 사려고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형가는 떠날 뜻이 없었다. 진나라의 장군 왕전이 조나라를 쳐부수어, 조나라의 왕을 사로잡고, 그 영토를 모두 거두어들인 뒤, 북쪽으로 진격해 땅을 빼앗으며 연나라의 남쪽 경계까지 이르렀다. 태자단이 두려워하며 비로소 형가를 청해 말하기를 “진나라의 군대가 조만간 역수를 건너오면, 비록 오래도록 선생을 모시고 싶더라도, 어찌 그럴 수 있겠소?”라고 했다.

형가가 말했다. “태자의 말씀이 없었더라도, 신이 알현하려고 했습니다. 지금 진나라로 가더라도 믿음이 없으면 진나라의 왕에게 가까이할 수가 없습니다. 저 번장군은 진나라의 왕이 황금 1천 근과 만 호의 식읍()을 내걸고 찾고 있습니다. 만일 번장군의 목과 연 독항()의 지도를 얻어 진나라의 왕에게 바친다면, 진나라의 왕이 기뻐하며 반드시 신을 만날 것입니다. 그때에 신이 비로소 (태자께) 은혜를 갚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태자는 “번장군은 곤궁에 처해 나에게 귀의했는데, 내가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덕행이 있는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짓은 차마 하지 못하겠으니, 선생께서 다시 고려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형가는 태자가 차마 번장군의 목을 베지 못할 것을 알고, 마침내 개인적으로 번장군을 만나서 말했다. “진나라가 장군을 대우함은 참으로 잔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종족은 모두 죽거나 노비가 되었습니다. 지금 장군의 목에다 황금 1천 근과 만 호의 식읍을 내걸었다고 들었습니다. 장차 이를 어찌하시렵니까?”

(이에) 번오기는 하늘을 쳐다보며 크게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매번 그것을 생각하면 언제나 골수에 사무치도록 괴롭습니다. 그러나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형가가 말하기를 “지금 한마디 말로 연의 근심을 없애고, 장군의 원수를 갚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했다.

번오기가 앞으로 나가서 말했다.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그러자) 형가가 말했다. “장군의 목을 얻어 진의 왕에게 바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진나라의 왕은 반드시 기뻐해 저를 만나볼 것입니다. (그때) 제가 왼손으로 그의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그의 가슴을 찌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장군의 원수를 갚고 연나라가 당한 모욕도 씻을 수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번오기가 한쪽 옷소매를 걷어 붙여 어깨를 드러내고, 한손으로 팔을 움켜쥐고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이는 내가 밤낮으로 이를 갈며 속을 썩이던 것이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가르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태자가 이 소식을 듣고 달려가서 시체에 엎드려 통곡하며 매우 슬퍼했으나, 이미 어쩔 수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번오기의 목을 상자에 넣어 봉했다.

당시 태자는 일찍이 천하에서 예리한 비수를 구하던 중 조()나라의 사람 서부인()의 비수를 얻었는데, 황금 1백 근을 지불했다.

장인에게 칼날에 독약을 묻혀 사람에게 시험해보게 하니, 피를 한 방울만 흘려도 즉시 죽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래서 짐을 챙겨 형가를 진나라에 보내려고 했다. 연에는 진무양()이라는 용사가 있었는데, 13세에 살인을 했기에, 사람들은 감히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이에 태자는 진무양을 형가의 조수로 삼았다. 형가에게는 기다려 함께 가려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멀리 살았으므로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형가의 행장이 다 꾸려졌다. 한참이 지나도 형가가 출발하지 않자, 태자는 그가 시간을 끈다고 여기며, 형가가 마음이 바뀌어 후회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그래서 다시 청해 말하기를 “날이 이미 다했는데, 형경께서는 무슨 다른 뜻이 있소? 진무양을 먼저 보내게 해주시오.”라고 했다.

형가가 성을 내며 태자를 질책하며 “태자께서는 어찌 무양을 보내려고 하십니까? 가서 돌아오지 못하는 풋내기입니다. 하물며 비수 한 자루를 들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강한 진나라에 들어가는 와중에, 제가 머무르고 있는 까닭은 제 길벗을 기다려 함께 가고자 해서입니다. 지금 태자께서 시간을 끈다고 하시니, 그럼 하직하고 떠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마침내 출발했다.

태자와 이 일을 아는 빈객들이 모두 흰 의관()을 하고 그를 배웅했다. 역수가에 이르자 도조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형가는 길에 올랐다. 고점리가 축을 타고, 형가가 화답해 노래를 불렀는데, 변치()의 소리를 내자,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바람소리 쓸쓸하고, 역수는 차갑구나.

장사가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다시 우성()으로 노래하니 그 소리가 강개해, 사람들이 모두 눈을 부릅떴고 머리카락이 관()으로 치솟았다. 그리하여 형가는 수레를 타고 떠났는데, 끝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역수연나라와 진나라의 경계

마침내 진나라에 도착한 형가는 천금이나 되는 예물을 진왕의 총신() 중서자() 몽가()에게 주었다. 몽가는 형가를 위해서 진나라의 왕에게 먼저 말했다. “연나라의 왕이 참으로 대왕의 위엄을 두려워해 감히 군사를 일으켜 우리 군대에 항거하지 못하고, 나라를 들어 진의 신하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각 제후국의 행렬에 동참해서, 진나라의 군현()처럼 공물과 부세를 바치어, 선왕의 종묘()를 받들어 지킬 수 있기만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두렵고 떨려 감히 대왕께 직접 아뢰지 못하고, 삼가 번오기의 목을 베어 연나라의 독항의 지도와 함께 바치려고 상자에 넣어 봉해 왔습니다. 연나라의 왕이 궁정에서 증정 의식을 거행하고, 사자를 보내어 대왕께 자초지종을 아뢰도록 했으니, 대왕께서 그에게 명령을 내리소서.”

진 왕이 이를 듣고 매우 기뻐해 조복()을 갖추고, 구빈(, 임금이 예의를 갖추어 맞이해야할 점잖은 아홉 손님. 즉 공(), 후(), 백(), 자(), 남(), 고(), 경(), 대부(), 사()를 말함)의 예를 베풀어, 연나라 사자를 함양궁()에서 만나기로 했다. 형가가 번오기의 목이 든 함을 받들고, 진무양이 독항의 지도가 든 갑을 받들고 차례로 나아갔다. 어전의 계단 밑에 이르자 진무양이 안색이 변하며 겁에 질려 벌벌 떨자, 여러 신하들이 이를 괴이하게 여겼다.

형가가 진무양을 돌아보고 웃고는 앞으로 나아가 사과하며 말하기를 “북방 오랑캐 땅에 천하게 살던 사람인지라 아직까지 천자를 뵌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떨며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이 사람의 무례를 용서하시고, 어전에서 사신의 임무를 마치게 해 주소서.”라고 했다.

그러자 진 왕이 형가에게 말했다. “진무양이 가지고 있는 지도를 가져오라.” 형가가 지도를 받아들어 진 왕에게 바치니, 진 왕이 지도를 펼쳤다. 지도가 다 펼쳐지자 비수가 보였다. (그러자) 형가는 왼손으로 진 왕의 옷소매를 붙잡고, 오른손으로는 비수를 쥐고 진 왕을 찔렀다. 미처 비수가 몸에 닿지 못했는데, 진 왕이 놀라서 몸을 당겨 일어서자, 소매가 잘라졌다. 진 왕이 칼을 뽑으려고 했으나, 칼이 길어 뽑지 못하고 칼집만 잡았다. 너무나도 황급한 데에다 굳게 꽂혀 있었으므로 즉시에 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형가가 진 왕을 추격하자, 진 왕은 기둥을 돌며 달아났다. 여러 신하들이 모두 놀랐는데, 졸지에 일어난 일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진나라의 법에 의하면, 전상(殿)에서 왕을 모시는 신하들은 한자나 한 치의 조그만 무기라도 몸에 지닐 수 없었으며, 여러 낭중()이 무기를 가지고 전하(殿)에 늘어서 있었으나, 왕이 부르지 않을 때에는 전상으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너무도 다급해, 아래에 있는 병사들을 부를 틈이 없었으므로, 형가가 진 왕을 쫓아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신들은 황급했고,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맨손으로 모두 형가를 내리쳤다. 이때 시의() 하무저()는 받쳐 들고 있던 약주머니를 형가에게 던졌다. 진 왕이 기둥을 돌며 달아나기만 할 뿐 황급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자, 좌우에 있던 신하들이 말하기를 “왕께서는 칼을 등에 지십시오!”라고 했다.

진 왕이 칼을 등에 지고, 마침내 칼을 뽑아 형가를 쳐서, 그의 왼쪽 다리를 끊었다. 형가는 쓰러진 채 비수를 당기어 진 왕에게 던졌으나, 적중시키지 못하고 구리 기둥에 맞혔다. 그러자 진 왕은 다시 형가를 쳐서 여덟 군데나 상처를 입혔다. 형가는 스스로 일이 실패했음을 알고 기둥에 기대어 웃으며, 양쪽 다리를 벌리고 앉아 꾸짖어 말했다. “일이 실패한 까닭은 진 왕을 사로잡아 협박해, 반드시 약속을 받아내어 태자에게 보답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때 좌우의 많은 신하들이 몰려가서 형가를 죽였다. 진 왕은 오래도록 불쾌해 했다. 그런 뒤에 공을 논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상벌을 내렸는데, 각기 차등을 두었다. 하무저에게 황금 2백일()을 주며 말하기를 “무저가 나를 사랑해, 약주머니를 형가에게 던졌다.”라고 했다.

이로써 진 왕은 크게 노하여 더욱 많은 군사를 동원해서 조나라로 보내고, 왕전의 군대에 조서를 내려 연나라를 치게 했다. 열 달 만에 계성()이 함락되자 연 왕 희(), 태자단 등은 모두 정예 병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달아나 요동()을 지켰다. 진 장군 이신()이 급히 연 왕을 추격하자, 대왕() 가()는 연 왕 희에게 곧 서신을 보냈다.

진나라가 특별히 연 왕을 추격하는 까닭은 태자단 때문입니다. 지금 왕께서 단을 죽여 진 왕에게 바친다면, 진 왕은 반드시 노여움을 풀고 용서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연나라의 수명이 연장되고, 사직()은 다행히 계속 제사를 받들게 될 것입니다.

그 후에도 이신이 단을 추격하자, 단은 연수() 가운데 있는 섬에 몸을 숨기었고, 연 왕은 사자를 보내 태자단의 목을 베어 진에 바치고자 했다. 진나라는 다시 병사를 보내 연나라를 쳤다. 5년 뒤, 진나라는 마침내 연나라를 멸하고 연 왕 희를 사로잡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형가 [荊軻] - 한글 번역문 (사기 : 열전(번역문), 2013. 5. 1., 사마천,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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