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21 한국경제 신춘문예 시 당선작_유실수(有實樹) / 차원선

시치 2021. 1. 1. 14:35

2021 한국경제 신춘문예 시 당선작_유실수(有實樹) / 차원선

 

 

유실수(有實樹)

 

   차원선

 

 

너의 눈 안에는 열매를 맺으려 하는

나무가 있다

 

너의 눈에 나무를 심은 사람이 저기

소각장에 앉아 있다

 

자신의 옷을 다 태우고도 헐벗은 너를

보고 있다

 

멀뚱히 있는 너와 떨어진 잎을 한데 덮는다

 

앙상해지도록

베고 누웠다

 

잔향 더미로 만든 모래시계

마른 낙엽을 주워 구덩이로 몰아넣었다

 

왜 내 얘기를 듣고 있어요?

낯선 사람인가 봐 쓸쓸하다고 하면 데려갈 텐데

 

그대로 있어요

 

반딧불이 무리지어 올리는 온도

올라가는 건물

 

빈 곳은 비어있었던 적이 없고

마지막으로 옮긴 불씨 조각이 다 자란 나무의 잎에 옮겨붙는다

 

오랫동안 그를 알았다

 

열매를 남긴 나무, 앨범에 적히고

눈 안에 마른 씨앗을 품던 자리가 바스러져 날아간다

 

몇은 땅으로 몇은 모를 곳으로

 

 

-------------

 차원선 / 본명 고보경(28). 예술가교사. 대학 졸업 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문화매개 분야 공부 중.

 

 

...................................................................................................................................................................................

 

[심사평] 황인숙, 손택수, 장이지

이미지가 눈에 생생... 기교와 비약 참신

 

 

본심에서는 네 분의 시를 다뤘다. ‘전래동화 외 네 편은 직설적인 언어로 기성세대와 맞서는 자세가 만만치 않았다. 다만 그것이 사회와 깊이 부대껴서 얻은 것은 아니어서 시야가 좁고 다소 막연해 보였다. ‘가장 내밀한 스펙트럼 외 네 편은 흡입력과 호소력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시에서 흐름을 끊는 직접 발화를 자주 사용하면서 자신의 장점을 잘 살리지 못했다. ‘어둠 외 네 편은 과감한 생략과 거침없는 반복 등 난숙한 화법으로 이목을 끌었다. 다만 논리가 시를 압도하는 지점이 가끔 눈에 띄었고, 최근 시의 스타일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침윤된 것은 아닌가 하는 혐의도 받았다. ‘유실수 외 네 편은 각각의 시마다 이미지를 극적으로 쌓아가면서 심화시켜 가는 상상력이 돋보였다. 본 적 없는 기교와 비약이지만 우리는 이 상실에 맞닥뜨린 자의 눈에 비친 낯설고 속절없이 슬픈 풍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유실수 외 네 편을 응모한 차원선 씨를 당선자로 정했다. 게임의 흐름을 바꾸지 못하면 아류가 되기 쉽다. 우리는 차씨가 익숙한 새로움을 되풀이하기보다 낯선 전환점을 만드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