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시

질마재문학상-김추인

시치 2020. 10. 5. 23:26

오브제를 사랑한 / 김추인
-매혹을 소묘하다

바람을 지운다

소리를 지운다
창을 설핏 열어 빛을 소환한다
하오의 잔광이다
동쪽 문은 유리의 캠버스
물의 입자들이 캠버스 위에서 응결되는 중이고 보얗게 채색되는 중이고 무거워진 몇 개

물방울들 중력 쪽으로 가파르게 하강하며 긴 발자국을 남긴다 물의 족적 물의 붓질

 

캠버스 위 몇 개의 길고 투명한 금줄들은 스크레치 기법일 것이다 샤워실에선 더 촘촘해

진 김, 아지랑이

시계 소리는 화면 밖에서 똑딱이게 두어라

소녀가 뭍에서 오고 있으니

 

젖은 살내,
<타올을 든 소녀>*쪽으로 쏠리는 펄럭이는 후각들
팔 하나가 불쑥 액자 속으로 들어가 몸을 반쯤 가린 무명 타올을 벗겨내며 빛을 조금 더 불러 앉힌다

 

전라의 소녀
어디선가 휘리릭 ~날아오는 입바람 소리들

아니다 역시 셀렘은 은밀하고 순연해야...과한 것은 금기, 팔에 걸치고 있던

무명 타올을 그녀에게 돌

려준다 무채색으로 일어서는

<타올을 든 소녀>

 

아직 더운 김 날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고독과 허무의 잿빛,잿빛은 언제 봐도

눈이 부시다 제 본성의

색감으로 소녀를 감고 도는 추상의 오브제들도 빛난다 움직이는 수증기며 시

계 소리 그리고 유리를 달

리는 물의 발자국들이

세상의 덧칠된 시간을 지우며
존재의 물음을 던지고 있다
절대 미감의 영속성에 대하여

* 권옥연 화백의 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