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시

〈제7회 발견문학상〉- 서녘의, 책 (외 2편)/박 기 섭

시치 2019. 12. 31. 22:30

7회 발견문학상

 서녘의, (2)/박 기 섭

 

  

굳이 말하자면

나는 이미

낡은 책이다

그러니까 그 책 속의

내 시도

한물간 시다

귀 터진 책꽂이 한쪽에

낯익고도 낯선 책

날을 벼린다손 금세 또 날이 넘는,

은유의 칼 한 자루

면지에 박혀 있다

찢어진 책꺼풀 사이로

붉게 스는

좀의 길

그 활판 그 먹활자

향기는 다 사라지고

희미한 종이 재만 갈피에 푸석하다

터진 등 덧댄 풀 자국

바싹 마른

서녘의,

 

 

 

봄눈

  

 

나의 어린 신부는 흰 나귀를 타고 갔다

 

탱자나무 울을 지나 흙먼지 에움길을

 

툭 터진 괴춤 사이로 마른 뼈가 드러났다

 

젖은 손수건이 첨탑 위에 떨어졌다

 

눈물이 마르면서 다시 낯선 밤이 오고

 

혼자서 서녘의 불빛을 느루 셀 듯싶었다

 

나의 무지 끝에서 너는 늘 반짝였거늘

 

어찌 몰랐을까 쉬흔 해가 저물도록

 

다 못간 세상의 저녁에 너는 왔다, 봄눈처럼

 

 

 

뻐꾸기 우는 날은

 

 

뻐꾸기 우는 날은

뻐꾸기 울음터에

여남은 개 스무 개씩 돌팔매를 날려본다

돌팔매 날아간 족족

앉는 족족

너 있다

 

아니면 또 한나절을

꽃밭 가에 나앉아서

봉숭아 채숭아를 송이송이 헤어본다

다홍빛 분홍빛 속에

그 꽃 속에

너 있다

 

뻐꾸기 우는 날은

뻐꾸기 울음 따라

십 리쯤 시오 리쯤 자드락길 걸어본다

하현달 사위는 서녘

그 서녘에

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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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섭 / 1954년 대구 출생. 1990한국일보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조집 각북角北』『엮음 수심가愁心歌』『서녘의, .

 

              ⸺시 전문 계간 발견2019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