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발견문학상〉
서녘의, 책 (외 2편)/박 기 섭
굳이 말하자면
나는 이미
낡은 책이다
그러니까 그 책 속의
내 시도
한물간 시다
귀 터진 책꽂이 한쪽에
낯익고도 낯선 책
날을 벼린다손 금세 또 날이 넘는,
은유의 칼 한 자루
면지에 박혀 있다
찢어진 책꺼풀 사이로
붉게 스는
좀의 길
그 활판 그 먹활자
향기는 다 사라지고
희미한 종이 재만 갈피에 푸석하다
터진 등 덧댄 풀 자국
바싹 마른
서녘의, 책
봄눈
나의 어린 신부는 흰 나귀를 타고 갔다
탱자나무 울을 지나 흙먼지 에움길을
툭 터진 괴춤 사이로 마른 뼈가 드러났다
젖은 손수건이 첨탑 위에 떨어졌다
눈물이 마르면서 다시 낯선 밤이 오고
혼자서 서녘의 불빛을 느루 셀 듯싶었다
나의 무지 끝에서 너는 늘 반짝였거늘
어찌 몰랐을까 쉬흔 해가 저물도록
다 못간 세상의 저녁에 너는 왔다, 봄눈처럼
뻐꾸기 우는 날은
뻐꾸기 우는 날은
뻐꾸기 울음터에
여남은 개 스무 개씩 돌팔매를 날려본다
돌팔매 날아간 족족
앉는 족족
너 있다
아니면 또 한나절을
꽃밭 가에 나앉아서
봉숭아 채숭아를 송이송이 헤어본다
다홍빛 분홍빛 속에
그 꽃 속에
너 있다
뻐꾸기 우는 날은
뻐꾸기 울음 따라
십 리쯤 시오 리쯤 자드락길 걸어본다
하현달 사위는 서녘
그 서녘에
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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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섭 / 1954년 대구 출생.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조집 『각북角北』『엮음 수심가愁心歌』『서녘의, 책』 외.
⸺시 전문 계간 《발견》 201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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