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 /손택수

시치 2019. 6. 2. 22:58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 /손택수

 

 

 

연탄이 떨어진 방, 원고지 붉은 빈칸 속에 긴긴 편지를 쓰고 있었다

살아서 무덤에 들 듯 이불 돌돌 아랫도리에 손을 데우며, 창문 너머

금 간 하늘 아래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 전학 온 여자아이가

피아노를 치고

 

, , , , , , , 다 눈이 내리던 날들

 

벽돌 붉은 벽에 등을 기대고 싶었다 불의 뿌리에 닿고 싶은 하루하루

햇빛이 묻어 놓고 간 온기라도 여직 남아 있다는 듯 눈사람이 되어,

눈사람이 되어 만질 수 있는 희망이란 벽돌 속에 꿈을

수혈(輸血)하는 일

 

만져도 녹지 않는, 꺼지지 않는 불을

 

새벽이 오도록 빈 벽돌 속에 시(詩)를 점화하며, 수신자 불명의

편지만 켜켜이 쌓여가던 세월, 그 아이는 떠나고 벽돌집도 이내

허물어지고 말았지만 가슴속 노을 한 채 지워지지 않는다 내 구워낸

불들 싸늘히 잠들고 비록 힘없이 깨어지곤 하였지만

 

눈 내리는 황금빛 둥지 속으로 새 한 마리 하염없이 날아가고 있다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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