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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7 <시문학> 신인우수작품상_ 검은 금요일의 외출 (외 2편)/ 채린

시치 2017. 9. 24. 23:11

2017 <시문학> 신인우수작품상_ 검은 금요일의 외출 (외 2편)/ 채린

 

 

검은 금요일의 외출 (외 2편)

 

   채 린

 

 

 

시신경 속에서 어둠이 출렁거린다

허물어지는 풍경들이 숨어 있다

속살을 들어내며 일어서는 눈

벽 속에 숨은 얼굴이 외출을 준비할 때

흐르는 강물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가던 길 멈추고 빗소리 후려친다

첨탑에서 추락하는 놀란 종소리

붉은 신호등에 걸린 오후 세 시가

머나먼 기억 속으로 피 흘리며 잘려 나간다

순간을 삼키며 보이던 것들이 날마다 죽어가고

사라져가는 풍경들이 잔인하게 익숙해진다

무료하므로 붉은 신호등을 허공으로 던져버린다

심장의 박동소리를 들으며 날아가는 새

경계선을 넘지 못하는 나에게

너는 푸른 깃발이다

온종일 막다른 골목길을 헤매다 나를 내려 놓는다

찢어진 시간들을 이끌고 돌아온 저녁

테러리스트들의 총소리가 밤 9시 뉴스를 장악한다

검은 그림자들이 비명 속으로 마구 나뒹굴었다

기상 캐스터의 미소가 흰 구름 속으로 흘러간다.

  

 

칼춤

 

 

뼈를 세워 허공을 가르는 바람이 있다

출렁이는 심장 소리가 찰나 속으로 몸을 숨긴다.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내리치는 찬 서리

사지(四肢)를 벗어난 비루한 욕망들이 잘려나간다

핏줄에서 터진 쇠북소리가 칼끝에서 운다.

한 치 앞에서 생사를 관통한 눈빛이

죽어간 시간의 눈물로 채워진다.

과녁을 빗나간 화살처럼 뒤돌아보지 않는다.

온 몸을 다 털어낸 뒤 남은 티끌 하나로

눈부시게 비상할 그날을 기다린다.

눈썹보다 가벼운 영혼을 불러 세운다.

구겨지고 뒤틀리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솟는 피를 지혈하며 스스로를 껴안으려 한다.

때가 되면,

남은 어둠의 모퉁이를 오려 칼집에 넣을 것이다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떠난 눈먼 무사(武士)처럼

저무는 핏빛 강을 홀로 건너갈 것이다

숨소리 무리지어 나는 세상 밖으로

바람으로 펄럭일 것이다.

 

    

광대 일기

 

 

권태로운 오후가 거미줄에 걸려 파닥거린다.

손에는 빛이 허락한 그림자가 위태롭게 걸려 있다.

그림자가 어두운 얼굴을 배양할 때마다

삶과 죽음이 수시로 일직선상에서 타협을 모색한다.

허를 찌른다.

처절하고 집요하게,

사실 너의 운명은 어설픈 철학보다 견고하다.

예고 없이 꼭짓점에 안착한 목숨 하나

잔인하게 공중에서 분열된다.

뇌수가 너의 분칠을 도와주려 손 내민다.

빛이 휘어져 들어온다.

마지막 무대의 시그널이다.

게르니카가 단막으로 처리되는 순간

모든 감각들이 각설탕처럼 달콤하게 녹아버린다.

오래된 꿈 하나 흑백으로 처리된다.

어차피 꿈은 허공의 빛으로 현상될 것이다.

곡예(曲藝)줄에 걸린 마지막 풍경이 단선으로 추락한다.

비명도 없이 깃털 하나 무심히 나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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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린 / 서귀포 태생(본명 오영식  ).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mymysss@hanmail.net

 

 

           —《시문학》2017년 8월호

출처 : 푸른 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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